'알통크기 정치신념 좌우' 보도한 MBC, 논문 제대로 봤나

18일 <뉴스데스크> 보도는 논문의 일부 내용만으로 내린 결론

등록 2013.02.19 16:01수정 2013.02.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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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BC 뉴스데스크. '팔뚝이 굵을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논지의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 '팔뚝이 굵을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논지의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 MBC 보도화면


18일 저녁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에서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을 좌우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진보-보수 체질 따로 있나'라는 제목의 리포트는 "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라는 자막과 함께 "소득이 꽤 높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산층"인 두 남성의 알통 둘레를 잰 후, 알통이 굵은 사람은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알통이 가는 사람은 복지정책에 찬성한다는 인터뷰를 방송했다.

이어 기사의 근거가 된 해외 실험 결과를 언급하며 "알통이 굵은 남자들 다수가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유리한 이념을 선택한 반면, 알통이 가는 남자들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인터넷에서는 관련 보도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트위터와 각종 포털게시판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는 "팔뚝 굵기와 정치성향이 무슨 상관이냐", "보수들은 다 몸짱이라고 포장하는 거냐" 등 해당 기사의 논리에 비판을 제기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런데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 뉴스가 실험을 통해 연구된 사례를 담은 논문을 근거로 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하는 듯했다. 과연 기사의 토대가 되었다는 논문에는 '팔뚝 굵기에 따라 정치성향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는 걸까?

MBC가 언급한 논문은 사회 과학 연구 네트워크(SSRN, Social Sience Research Network)에 게재되어 있으며(논문 보기), 오르후스 대학에서 정치과학을 연구하는 마이클 피터슨 교수(Michael Bang Petersen)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관련 논문은 MBC가 뉴스에서 밝힌 대로 지난해 10월 20일, 영국의 경제신문 <이코노미스트>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관련기사 : <남성의 근력, 신념에 영향을 준다(A man's muscle power influences his beliefs)>). 당시 기사에서 설명했듯 이 논문의 주요내용은 실험을 통해 "근력이 강한 남성이 '부의 재분배'에 대해서 부정적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는 것이다.

왜곡된 논문... '팔뚝 굵기' 아닌 '경제적 지위'가 관건


미국, 아르헨티나, 덴마크 3개국에서 1500여 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은 남성들의 이두박근 근력을 측정한 뒤에 '부유층이 가난한 사람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것'에 얼마나 동의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알아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실험에서는 한 가지 차이점을 추가로 질문했다. 바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묻는 것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남성들은 팔의 근력 측정과 부유층인지 아닌지에 대한 대답, 그리고 '복지정책'에 대한 찬반의견을 말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부유하고 팔의 근력이 강한 남성은 '부의 재분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가난하고 팔의 근력이 약한 남성은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MBC가 인용하지 않은 부분이 이어진다. 바로, 가난하면서 팔의 근력이 강한 남성은 '복지정책'에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a  마이클 피터슨의 실험 중 실험결과 부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남성은 근력에 상관없이 복지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마이클 피터슨의 실험 중 실험결과 부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남성은 근력에 상관없이 복지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 마이클 피터슨 논문 발췌


MBC의 보도 요지인 '팔뚝 굵기가 정치성향을 가른다'는, 실험의 요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실험방식에 있어서도 MBC처럼 팔의 굵기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력을 측정하는 실험이었으며, 그 결과 역시 MBC가 보도한 내용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실험의 결과와 이를 통한 피터슨의 주장은 바로 "출신 국가나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부유하면서 근력이 강한 남성은 자신의 입장에 의거하여 주장한다. 반면, 가난한 계층의 남성은 주장하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는 경향이 덜하다"는 것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부유한 계층의 남성은, 자신의 재산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분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본인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남성들을 '보수층'이라고 주장한다면, 실험결과와 피터슨의 결론은 '보수층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라는 말이 되는 셈이다.

팔뚝 굵기와 정치 성향의 상관관계는 논문 어디에도 없어

그리고 여성의 경우에는 근력이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의견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여성들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주요 실험대상이 남성이었던 만큼, 피터슨은 이 문단의 마지막에 "여성의 육체와 정치적 견해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더 실험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알통 굵기가 정치신념을 좌우한다'는 말은 애초에 실험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장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실험이 이두박근의 둘레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실험결과 역시도 "팔의 힘이 더 세거나 팔뚝이 더 굵으면 보수적"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MBC는 논문을 더 자세하게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피터슨이 쓴 글은 '더욱 강하고 부유한 남성일수록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을 뿐, 보수적 성향과 굵은 팔뚝의 상관관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만든 MBC의 보도. 해당 기자는 논문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못한 듯하다. 특히 '인간을 어느 하나의 특징으로 쉽게 규정짓지 않고, 본능에만 충실하기보다는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의도를 담은 다음의 마지막 부분을 말이다.

인류는 부정할 수 없이 복잡하고 특이한 동물이며,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다른 요인들이 대중정치에 접근하는 각각의 방식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중정치의 갈등은 원시인 시절의 낙인(본능)을 견디며 의사를 결정하려는 인류 행동양식의 또 다른 중요한 영역으로 보인다.
#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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