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부터 상처 입은 아기들을 아십니까

[서평] 미국 입양엄마 낸시 베리어의 <원초적 상처>

등록 2013.02.25 14:54수정 2013.02.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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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초적 상처> 표지

<원초적 상처> 표지 ⓒ 뿌리의집

책 <원초적 상처>는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됐고, 이후 미국 전역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입양 관련 베스트셀러다. 어떤 입양인들은 이 책을 '입양인의 바이블'이라 부른다. 나는 이 책을 '입양부모를 위한 필독서'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은 그동안 설명할 길이 없거나 모르고 있었던 입양인들의 심리 상태를 쉬운 글로 풀어쓴 것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1993년에 출간됐지만 지난 20년 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꾸준히 인쇄됐다. 동시에 프랑스어·스페인어 등 6개 언어로 변역 출간됐다.


특별히 저자 낸시는 자신이 낳은 딸과 입양 딸을 함께 키웠던 엄마이자 심리상담가다. 이 책은 입양아를 키우면서 축적된 엄마로서의 경험과 식견을 심리상담가의 학문적 전문성과 임상적 지혜로 혼합해 만들어낸 책이다. 저자는 전 초·중등학교 교사였고, 현재는 미국에서 입양을 둘러싼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저술가이자 강사다.

저자는 1969년 출생 후 3일 된 첫 딸을 입양했고, 1971년 둘째 딸을 출산했다. 저자는 처음에는 입양 딸을 친딸처럼 키우는 것은 별문제가 없을 것이며 '조그만 아이가 뭘 알겠어?'라고 생각했다. 당시 만약 누군가가 저자에게 입양 딸을 키우는 것이 친딸을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녀는 다른 열성적인 입양모들처럼 웃으면서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죠? 이 조그만 아기가 무엇을 알겠어요? 저는 딸을 사랑으로 키울 것이고, 훌륭한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줄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입양모인 저자는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저 없이 믿었다. 그러나 입양 딸을 키우면서 그녀는 자신이 딸에게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만큼 딸이 자신의 사랑을 수용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저자는 처음에 딸의 행동과 태도가 입양과 관련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 저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학생을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며 통찰력 있는 훌륭한 교사라는 평을 들었다.

저자는 입양한 딸을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위탁 보호한 적이 없었다. 낸시 부부는 딸 입양을 간절히 원했다. 부부가 첫째 딸을 무척 사랑했음에도 막상 그 딸은 큰 고통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낸시는 이런 입양 딸의 반응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친모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입양인들과 입양 가족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친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기들을 위한 최고의 대책이라고 여겨졌던 입양이 입양아의 고통과 입양 부모와의 갈등 문제 등을 결코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저자가 다른 입양인들과 입양가족들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매우 가슴 아픈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신이 입양 딸의 친모의 자리를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저자는 자신이 입양 딸의 고통을 결코 덜어줄 수도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낸시는 입양 딸의 특별한 점을 감지했고, 결국 그 점을 보다 더 깊이 연구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임상심리학 석사학위 과정을 밟아 1986년 석사논문으로 '원초적 상처 : 입양아의 유산'을 썼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91년 열린 미국입양의회학회에 참가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석사논문을 보강해 일반 독자, 특히 입양인과 입양부모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 책이 바로 <원초적 상처>다.

그 후 입양 관련서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으로 낸시는 1993년 미국 입양평등권협의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책상'을 받았고, 2003년엔 미국입양의회에서 수여하는 '애마 빌라디 인도주의상'을 받았다.

이 책 출간 이후 저자는 아동이 자신을 낳은 친모와 떨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으로써 겪는 엄청난 고통과 그로 인해 그 후 아동의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정신적 외상, 그 치유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입양 문제나 아동 유기·상실의 문제를 다루는 교재로도 미국 대학교에서 넓게 쓰이고 있다. 자신이 미국 입양인이며 <덧없는 환영들>의 저자인 제인 정 트랜카는 이 책이야말로 "입양인들의 무의식 세계와 삶의 여정에 깃들었던 우울증·자살충동·애착결핍·정서불안·정체청 혼란의 근원인 '원초적 상처'의 핵심을 찌른 책이며, 그래서 많은 입양인들과 입양부모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나침판과 같은 책"이라고 역설한다.

입양아, 특수시설에 갈 확률 일반아보다 10배 이상 높아

이 책의 핵심 개념은 '원초적 상처'다. 저자 낸시는 아이는 자신의 출생을 기억하고 입양과정에서 친모와 이별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성장해서도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근원적인 상처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입양인 원초적 상처의 증상을 제때에 감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법에 대해 명쾌하게 역설하고 있다.

입양 아동이 심리치료를 받는 비율은 일반 아동보다 훨씬 높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나양육정보원(Parenting Resources of Santana)의 1985년 통계에 따르면, 당시 입양아동의 수는 동년배 일반아동의 2~3%에 불과했다. 하지만 치료센터·소년원·특수학교 등에 있는 입양 아동의 수는 일반 아동의 30~40%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입양 아동이 치료센터나 특수시설에 갈 확률은 일반 아동보다 10~15배가 높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입양아의 청소년 비행·성문란·가출의 확률도 일반아보다 훨씬 높다. 학교에서도 학업과 교우 관계 양쪽 모두에서 일반아보다 입양아들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치료받은 적이 있는 입양아에게서 충동·도발·공격·반사회성과 같은 비교적 일관된 징후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모든 것의 원인은 입양아들에는 친모와 결별함으로써 생기게 된 '원초적 상처'가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보통 신생아들을 접할 때 어른들은 항상 그 아이들이 이제 막 새로 생겨난 것처럼 대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 신생아가 사실은 지난 열 달 동안 친모 몸속에서 몸·마음·감성으로 친모와 상호 교감하며 친밀하고 경이로운 경험을 쌓은 끝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그동안 어른들은 태아였던 아기들의 경험이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세계에 대하여 제대로 보고, 듣고, 감지하는 기회를 놓치고 살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생아의 경험에는 친모 자궁 속에서 형성된 모자간 유대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많은 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도 친모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은 단지 아동의 출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궁에서 시작해 출생 후 유대감 형성기 내내 이어지는 육체·심리·정신적 연속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아이가 친모로부터 입양 등으로 격리되면서 친모와 아동사이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 중단될 경우, 포기와 상실의 경험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입양아들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것을 '원초적 상처'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기, 무감각한 존재 아니다

저자는 그동안 어른들이 전통적으로 아기들에 대해 알던 것들은 잘못 알았던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어른들은 이제까지 아이들의 능력을 잘 몰랐고 과소평가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아기들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인 아기들은 예상외로 원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저자가 보여주는 것이다.

"아기들은 그들이 알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이 안다. 태어난 지 몇 분 뒤면, 본 적도 없는 엄마의 얼굴을 사진에서 골라낼 수 있다. 새로 발견된 사실은 신생아들이 우리와 같이 감각을 갖고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자지러진 울음엔 진정성이 있다. 아기들은 무감각 한 존재가 아니다. 지금까지 무감각했던 것은 바로 우리다."

이렇게 저자는 아기가 자신의 탄생을 기억할 뿐 아니라 친모가 입양으로 갑자기 사라졌던 것도 기억한다고 설명한다. 아이는 자신과 연결돼 있었고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해야 할 엄마의 부재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이 아기들의 감정과 감각에 정서불안·애착관계 결핍 등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저자는 예를 들어 보여준다.

입양기관이나 일시적 혹은 여러 가정을 전전하는 위탁양육으로는 아이들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진 지는 오래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항시적 양육자(permanent caregiver), 즉 친모가 없으면 아이는 관계지속성·정서함양·자극 등 정상적 심리발달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부족해지고 아이의 애착은 더욱 어렵고 유대감 형성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또한 아이에 대한 양육자 수가 늘어나면 아이는 애착형성이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점점 무감각해진다는 것을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럴 경유 입양아가 잘 크는 것은 고사하고 극단적인 경우엔 죽기까지 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항시적인 양육자를 만나는 것이며 그 기간은 빨리 만날수록 더 좋다고 한다.

엄마의 부재,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 미쳐

저자는 또한 가까운 미래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집단은 어린이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진단한다. 직장 여성에 대한 수요와 힘들게 구한 직장에서 일하려는 여성의 바람이 아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여성들은 분명 자기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아이를 낳거나 입양할 때는 그 아이를 양육하고 돌볼 책임이 생긴다. 내 의견으로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면 아기의 정서적 건강이 위태로워진다. 이것은 거의 항상, 부모가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아이를 보살필 일차적 책임을 아빠보다 엄마 쪽에 지운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중략) 유아기에는 다른 누구도 어머니 자리를 진정으로 채울 수 없고,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중략)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이런 선택 중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냐 하는 것도 있다."

희생이 부족한 시대에 입양아를 위해 기꺼이 희생의 길을 선택한 입양 부모들에게 입양엄마이자 심리상담가인 낸시 베리어가 심혈을 기울여 쓴 <원초적 상처>를 강력히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원초적 상처 : 입양가족의 성장을 위한 카운슬링>(낸시 뉴턴 베리어 | 뿌리의 집 | 2013.02. | 1만5000원)

원초적 상처 - 입양가족의 성장을 위한 카운슬링

낸시 뉴턴 베리어 지음, 뿌리의 집 옮김,
뿌리의집, 2013


#원초적 상처 #입양 #뿌리의집 #제인 정 트랜카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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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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