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1일 오전 충남 보령 한화리조트에서 당무위원회 회의를 했다. 민주당은 보령에서 1박2일간 워크숍을 열어 대선 패배에 대한 원인을 진단하고 당의 진로를 모색했다. 왼쪽부터 김동철 위원, 박기춘 원내대표, 문 위원장, 설훈 위원.
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민주당은 지금이 최대 위기이자 마지막 기회일까. 정답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쥐고 있다. 이번 대선은 만약 야당이 승리를 거뒀어도 반쪽 승리였다. 제 1야당이라는 자부심은 어디로 가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안 전 교수에게 매달리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어줄 판국인데도 당 안에서는 파벌에 따른 갈등만 더욱 커졌다. 야권 통합을 외치며 통합진보당을 끝까지 껴안으려 했지만 그것은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통합을 계속해 외칠수록 민주당의 색을 잃었고 종북이란 탈을 쓴 한 패거리로 낙인찍혀갔다. 냉철한 판단과 전략으로 철저히 대선을 준비하기 보다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을 떠올리며 문재인 전 대선후보와 안 전 교수는 막판까지 이상동몽(異床同夢) 하고 있었다.
결국 안 전 교수가 자진사퇴 후 미국행을 택했지만 그 영향력으로 봤을 때 다시 돌아와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매일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2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안철수 전 교수의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직접적인 정치가 아닌 정책연구 활동만으로도 민주당에는 위협적이다. 이미 젊은 층 지지자들은 상당히 안 전 교수 쪽으로 넘어갔고 자칫하면 남은 지역의 지지기반 마저 무너질 수 있으니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한데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과 진보세력들은 문 전 후보가 얻은 48%의 지지를 야당의 큰 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48%의 표 상당수는 지난 정부를 질타하고 새로운 한국 정치를 원하는 의미였으며 그 중심에는 안 전 교수가 서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믿고 또 믿어 준 지역기반의 표가 컸다.
그러나 대선에서 패배하자 기존 주류들은 마치 문 전 후보를 포함한 친노세력의 잘못인 것 마냥 공격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안 전 교수까지 끼워넣었다. 실제 사람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꽤 오랫동안 시간을 거치며 당의 지지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는데도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변화를 꾀하기 보다 구식 정치 그대로 회초리투어를 시작하고 엎드려 사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화-노무현의 기적'만 떠올려선 안돼
이렇게 민주당이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인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민주당은 아직도 1970~80년대 민주화와 2000년대 노 전 대통령 당선의 기적만 떠올린다. 원로 인사의 말처럼 NL-PD 따지느라 정작 중요한 변화는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과거의 향수에 빠져있는 동안 새누리당은 보수들도 놀랄 만한 변화들을 시도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과 손수조 현 미래세대위원장 카드였다. 보수당이 당의 이름과 색을 바꾸고 젊은 정치인을 앞세우리라 누가 생각했었는가. 하지만 최대의 위기에서 나온 변화의 시작은 박근혜 정부 출범까지 연결됐다.
이 가운데 정작 변화해야 할 민주당은 진보라는 이름만 내걸고 각자 자신의 몸 사리기에 바빴다. 국민의 편에 선 정치는 말 뿐이고 현실은 적당한 여당과의 타협만이 있었다. 소위 당의 간판이라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얼굴 비추기 바빴고 패배하면 지도부만 물갈이 된 채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정작 국민을 위한 국회는 없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서민을 위한 국회가 아니라 특권층을 위한 국회가 되는 데 동참했다. 민주당이 내리막을 타는 것은 서민들의 국회에 대한 불신과 정확히 비례한다. 권력에 타협한 기존 뉴스 대신 다른 매체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처럼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는 중심에 서야 할 민주당의 자리에는 어느새 나꼼수가 있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정치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 변화의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지식수준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이제는 등 뒤에서 실시간으로 언론과 국민이 정치권을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처럼 특권을 위한 불합리한 정책을 낸다거나 여당과 정부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는 등 야당의 제 기능을 못하면 순식간에 그 정보는 공유된다.
데이터가 남기 때문에 과거처럼 잘못을 지울 수도 없다. 그것들이 쌓이면 지금의 위기가 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원래 그랬으니 그렇다 쳐도 민주당은 그럼 뭐하고 있느냐"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더 빠르게 변화하여 행동하고 깨끗하게 국민 편에 서서 일하지 않으면 나꼼수보다 못한 야당이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당이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 '안보와 쇄신'아직 민주당에게는 기회가 남아있다. 이것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정치권의 대 변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 열망을 민주당이 기회 삼아 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전제조건은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정신이다. 이것은 어쩌면 안철수 전 교수에게 먼저 필요했다. 만약 안 전 교수가 대선 막판이 아닌 지난해 여름이 오기 전 5년의 시간을 국민과 함께 희생한다는 정신으로 미리 사퇴를 하고 잘못된 정책과 국가행정을 지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면 민주당은 이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미지근한 결단은 많은 지지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민주당에게는 기회가 생겼다. 안 전 교수가 돌아와 다른 살림을 펴도 이번에 제대로 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짜 야권의 힘을 모으는 경쟁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전당대회에서 새 인물로 지금과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