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춘추관.
권우성
새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기자실에 '점령군'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선 자리를 차지한 쪽과 빼앗긴 쪽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치열한 '자리 다툼'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25일 아침 일찍부터 종합편성TV채널 기자들이 춘추관 1기자실에 각 사별로 서너 명씩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부터다. 하루 전까지 이 기자실은 지정석으로 운영돼왔는데, 기존의 좌석배분을 무시하고 종편 기자들이 자리를 잡아버린 것.
출근해보니 자리를 뺏긴 기자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고, 이내 좌석과 관련한 소동이 이어졌다. 자리를 뺏긴 기자들은 기존의 좌석 배치를 무시하고 자리를 차지한 기자에게 항의하고, 자리를 차지한 기자들은 '기존의 좌석배치는 무의미하다'고 반박하면서 기자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와중에 기자실 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자리를 차지한 한 종편TV 기자가 항의하는 기자에게 큰 소리로 "오늘부터 자유석이야!"라고 외친 것. 이 기자는 가방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하루 만에 다시 평화..."새벽 6시 30분에 나왔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중앙 일간지와 통신, 방송, 인터넷신문 등은 1층의 1기자실과 제2브리핑실에 자리를 배분하는 게 기존의 자리배치다. 이 중에서 1기자실이 주요 언론사들이 주로 쓰고 있고 청와대 관계자들의 '백그라운드 브리핑' 같은 것도 1기자실에서 주로 이뤄진다. 1기자실이 선호 대상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를 취재하는 기자는 등록기자, 상주기자, 풀취재기자로 나뉜다. 상주기자와 풀취재기자가 좌석을 배정받고 있는데, 풀취재기자는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직접 취재가 가능하다는 점이 상주기자와 차이점이다. 대통령 일정은 풀취재기자들 중에서 1, 2명이 대표로 취재,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공유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할 수 있다. 대통령과 그 배우자에 대한 경호·보안 목적상 풀기자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이전 대통령 시절까지 1기자실 좌석은 이 풀취재기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인터넷신문 풀취재기자가 1개 사만 1기자실에 남고 나머지는 제2브리핑실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1기자실 좌석은 풀취재기자에게 우선 배정됐다. 종편채널은 출범 뒤 풀기자단에 들지 못했고, 줄곧 제2브리핑실에 좌석을 배분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각 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대거 교체됐고, 이 와중에서 자료실에 있던 종편TV 기자들이 1기자실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난 25일 오전 청와대 기자실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 1기자실이 넘쳐나자 제2브리핑실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루 전의 '자리다툼' 때문인지, 1기자실에 기존의 자리 매체의 기자들도 26일 오전엔 급히 출근해 자리부터 잡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자리를 잡기 위해 오전 6시 30분에 기자실로 출근했다는 한 기자는 "다른 기자는 새벽 4시 40분에 나오기도 했다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좌석선점 경쟁은 이날 오전 일시적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신임 최상화 춘추관장이 '새로운 춘추관 운영규정이 마련될 때까지 기존의 좌석 배치를 따라달라, 기존에 좌석이 배정되지 않은 언론사 기자는 2층의 제1브리핑실을 이용해달라'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풀기자단 가입 둘러싼 해묵은 갈등의 연장선사실 이런 자리다툼은 종편TV 출범 이후 1년을 넘게 계속된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풀기자단에 들지 못한 종편 채널들은 꾸준히 풀기자단 가입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종편기자단의 풀기자단 가입은 두 번 좌절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기자단 투표에서 한 번, 그리고 풀기자단 규약을 개정해 가입요건이 대폭 완화된 상황에서 한 달여 만에 다시 치른 기자단 투표에서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7월에 있었던 풀기자단 투표에서 가입 요건은 풀기자단 재적의 90%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었고, 그 뒤 개정된 규약은 풀기자단 재적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완화됐다. 그러나 규약을 개정하고도 풀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한 것이다.
풀기자단 가입 투표 전 청와대는 풀기자단을 하나 더 만드는 걸 추진했다. 기존의 풀기자단과 별도로 종편TV 등으로 별도의 풀기자단을 구성해 이들이 대통령에 대한 취재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시키다시피 한 종편TV의 취재제한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주려고 한 것.
그러나 이 계획에 대한 기존 풀기자단의 반발과 종편TV기자들과 기존 풀기자들 사이의 감정 악화로, 청와대는 이 같은 계획을 포기했다. 결국 풀기자단에 들지도 1기자실에 앉지도 못한 종편TV기자들은 대통령이 바뀌고, 대부분의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교체되는 시기에 1기자실 선점을 시도했던 것이다.
"후발 매체 차별하나" vs "일간지랑 같이 가면서 무슨 후발 매체"종편TV에선 '후발 매체라는 이유로 대통령에 대한 취재에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매체의 규모나 영향력을 봐서라도 청와대 풀취재가 가능해야 맞다', '기존의 풀기자단에서 무슨 권리로 대통령을 취재할 권리를 막느냐'고 주장해왔다.
종편TV의 청와대 풀기자단 가입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같은 미디어그룹에 속하는 <○○일보>와 TV○○은 취재내용과 보도내용을 공유하고 있어 사실상 '한 몸'인데, TV○○까지 풀기자단에 가입하게 되면 타사보다 2배의 취재혜택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 '각종 정부 혜택 속에 출범한 종편TV를 후발 매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특히 기존 방송사들의 반대가 거세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춘추관 운영규칙이 어떻게 개정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춘추관 운영규칙을 통해 좌석배분에 대한 방침을 바꾸거나 풀기자단 운영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이목도 춘추관 운영규칙 개정내용에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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