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보안법의 나라 교사다"

'통일학교 사건'(2006년) 네 해직교사의 눈물의 증언이 말하는 것

등록 2013.03.03 10:13수정 2013.03.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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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시간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아 온 네 해직교사를 위한 위로의 기도를 하는 교사들 ⓒ 윤지형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 2월 21일 검찰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결성 혐의를 적용해 박미자 전 수석부위원장 등 네 명의 전교조 교사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같은달 26일 전교조 부산지부 강당에서는 이른바 '통일학교 사건'(2006년, 국가보안법 제7조 고무·찬양 등 위반)으로 해직(2009년)된 네 교사(한경숙, 김은주, 정지영, 양혜정)의 '내가 겪은 국가 보안법과 국가폭력'이라는 증언의 행사가 열렸다.

'통일학교'란 2005년 10월 전교조 부산지부 산하 통일위원회(위원장 한경숙)가 개최한 교사 대상 '남과 북의 근현대 역사 인식을 비교·검토하기 위한' 학술 세미나로서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시점인 2006년 7월 <조선일보>·<동아일보>가 돌연 그 자료집에 이적성이 있다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사건화'가 되었다.

그후 1심 재판부는 세 교사에 더해 부산지부 전 통일위원장이었던 김은주 교사까지 국가보안법(찬양·고무등) 위반이라며 유죄 판결(2009년 1월)을 내렸고, 이에 부산교육청은 즉각 네 교사를 해임 징계했었다. 그리고 사건화 된 지 7년째인 올 2월 15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대법원은 네 교사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법정 다툼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2006년 당시부터 통일학교 사건은 <조선>·<동아>를 필두로 한 일부 언론의 '전교조는 친북, 종북, 주사파' 집단이라는 식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강압적 압수수색 및 여중학생에 대한 불법적 탐문 수사, '짜맞추기식 수사'가 의심되는 등 검·경의 무리한 과잉수사가 문제가 되었다.

평화통일 소망하면 이적행위가 되는 나라  

'나는 국가보안법의 나라 교사다'란 제목의 걸개그림을 배경으로 증언에 나선 네 해직 교사는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아픔을 토로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소박하게 평화 통일을 소망해 온 자신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파괴했던가를 50여 동료 교사들 앞에서 증언하며 다들 목이 메었다.

이날 네 교사는 하나 같이 자신들이 관련된 통일학교 사건이 결과적으로 전교조와 동료 교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는 부채 의식과 자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받았던 말 못할 고통도 함께 털어놓음으로써 행사에 참여한 동료 교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어느 순간 우리를 덮칠 국가보안법이란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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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숙 교사 "왜 우리는 북에 대해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알아서도 안 되는가? 평화통일이 꿈인 나를 덮친 것은 국가 폭력이었다." ⓒ 윤지형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이 해방 후 이름만 바뀌어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우리 모두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다 어느 순간에 우리를 덮칠 수 있는 유령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된 이후 참 많이 억울하고 두렵고 외로웠지요. 하고 싶은 말을 전처럼 선뜻 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같은 것도 생긴 것 같고요. 하지만, 이젠 학교로 돌아갈 희망도 버려야 할 상황이지만, 저의 간절한 바람은 국가보안법이 없는 나라, 전쟁의 위협이 없는 나라, 평화 통일된 조국일 따름입니다."(한경숙)


"나를 북의 간첩으로 보듯 하던 교육 관료를 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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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교사 "다시금 통일과 평화의 꽃을 피우겠습니다." ⓒ 윤지형


"조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첫 아이를 낳았지요. 경찰이 제가 가르치는 여중학생들을 여름 방학 때 몰래 불러내어 탐문 조사를 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경악했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본 가택 압수 수색, 강압적 수사, 천편일률적인 재판, 해직 모든 것도 견딜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 교육청의 징계 과정에서 마치 북의 간첩이라도 보는듯한 교육 관료들의 시선과 고압적인 언행은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정지영)

가슴이 아파 해직된 학교 앞을 지나지도 못하고

"통일학교, 이 말은 저의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듭니다. 경찰의 갑작스런 가택 압수수색에 충격을 받았던 어머니. 난생처음으로 가장 큰 불효를 했지요. 저는 국가보안법 사범이 된 후로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보니 '내가 사라져 버렸구나'는 느낌이 들었고 한동안은 제가 떠난 학교 앞을 가슴이 아파 지나가지도 못했지요. 이젠 복직의 꿈도 접어가고 있고요."(양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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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그렁그렁한 양혜정 교사 "해직되고 나니 내 존재가 사라졌구나, 싶더라구요." ⓒ 윤지형


이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공안 당국의 이메일 도용과 사건 조작 의혹을 다시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앞으로 진실 규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김은주 교사의 증언이었다.

"이제야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제 경우는 국가 기관이 개인의 이메일을 도용하여 증거를 조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제 주장을 받아들일 재판부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혹 다른 세 분 선생님의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될까 염려되어 그 주장을 제대로 못했지만 저는 지금부터라도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럼으로써 제 어린 아들에게도 엄마가 떳떳한 교사였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김은주)

다음은 그와 관련한 김교사의 증언의 다른 일부이다.

IP 확인 안된 '이적표현물' 유일한 증거로 채택한 검찰, 그대로 인정한 법원

"통일학교 자료집의 이적성에 대한 조선·동아일보의 대대적인 왜곡 과장 보도가 나간 후인 2006년 8월 16일 낮 2시경 수사 당국은 가택 수색을 통해 제 이메일을 압수하고 거기에서 제 사건의 유일한 증거가 된 14개 파일(이적 표현물)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파일을 이메일로 받은 적도 보관한 적도 없었기에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그렇게만 말했지요.

그런데 2007년 7월 17일 검찰의 기소와 함께 재판이 진행되면서 저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이메일에 로그인 하여 14개 파일을 전송한 컴퓨터의 IP 주소 확인을 요구하는 저와 변호인에게 검사는 그것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면서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저를 기소한 유일한 증거물의 출처를 확보하지 않았다니! 결국 IP 주소를 확보하기 위해, 아니 도용과 조작을 증명하기 위해 제가 백방으로 뛰었지요.

우리 집 컴퓨터 망인 KT 텔레콤에도 물어보고 ㈜다음에도 문의했지요. 그런데 ㈜다음에서는 로그인 기록은 3개월 만 보관하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남편은 압수당했다 돌려받은 컴퓨터를 찜찜하다며 완전 포맷을 해 버린 상태였고……. 참 우스운 일이죠. 정작 완벽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검사는 팔짱을 끼고 있고 피고인인 제가 그것이 증거가 못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으니 말이에요. 아무튼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받아들였지요. 그 정체불명의 자료들로 하여 저는 국가보안법 범법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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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교사 "사건 조작을 폭로하고 기억과의 투쟁에 나서렵니다." ⓒ 윤지형


이 같은 김교사의 증언은 중세의 마녀 재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21세기에도 '마녀 사냥' 가능케 하는 국가보안법

어느 날 종교 재판 수사관은 길 가는 한 여인을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마녀라는 제보(증거)가 있다.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라. 그걸 못한다면 너는 마녀다." 애초 마녀란 존재하지 않기에 마녀임도 마녀 아님도 증명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 한 것임에도 말이다.

그날 행사에 참여한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녀 사냥과 다름없는 '통일학교 세미나'라는 사건 아닌 사건이 대대적 사건이 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위헌적인 악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젠 자괴감, 부채감을 떨어버리고 평화통일과 국보법 폐지 운동에..."

고통 받고 있는 네 해직교사의 마음을 위로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한 마음을 모은다는 의미의 '촛불의 시간'이 끝나자 교사들은 하나 둘 증언의 자리를 떠났다. 새 정부 들어서도 전교조에 대한 마녀 사냥 식 공격과 압박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21일 검찰이 네 명의 전교조 네 명의 교사들에게 이적단체 결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개시한 것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학교 사건'의 당사자이며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네 해직 교사들의 표정은 행사가 끝난 다음엔 밝아 보였다. 그들에겐 그 같은 증언의 자리가 필요했고 또 그것을 소망했음에 틀림없다. 김은주 교사는 말했다.

"저는 제 사건을 정확하게 명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재판 과정에는 물론이고 이제까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억울하다는 생각에 고통스럽게 사로잡히곤 했죠. 그러나 이 증언의 자리를 통해 비로소 통일학교 사건의 본질을 명확히 안 것 같고 명명도 할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일 뿐이라는 것을요. 저는 이제 기억과의 투쟁에 나서렵니다."

한경숙, 정지영, 양혜정 세 교사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젠 부채의식이나 자괴감을 떨어버리고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애초 우리가 하고자 한 평화 통일을 준비하는 활동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간 우리의 아픔과 싸움을 함께 하면서 우리를 지켜주고자 한 고마운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까요."
#전교조 #국가보안법 #최보경 교사 #평화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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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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