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와 달이, 태양이 그리고 엄마 쥐알이. 몸색이 까만 녀석은 달이, 하얀 녀석은 태양이, 엄마를 닮아 잿빛을 띠는 녀석은 별이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박미경
"이야~응, 이야~ 응." "야응, 야응""새끼 고양이들 또 화장실 들어갔나 보다. 쥐알이 또 화났나 보다"
쥐알이(아기 고양이들의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낮으면서 조금은 화가 난듯 또 약간 조바심이 섞인 듯한 목소리다. 아기고양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내는 목소리다. 우리집의 경우, 아기 고양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 쥐알이의 목소리가 그렇다.
보름쯤 전 새벽 무렵, 한참 곤히 자고 있는데 둘째 아들 녀석이 키득키득 웃으며 나를 깨웠다. 녀석은 아기고양이 중 가장 먼저 태어난 달이를 수건에 감싸 안고 있었다. 달이는 물에 흠뻑 젖은 채 수건에 싸여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고, 엄마 고양이 쥐알이가 아들 녀석의 곁을 바짝 쫓으며 양양 거리고 있었다.
사연인 즉 아들 녀석이 방에서 컴퓨터와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텀벙텀벙 물소리와 함께 아기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달려가 보니 세 녀석 중 가장 먼저 태어난 달이 녀석이 물에 흠뻑 젖은 채 떨고 있었다는 것.
아마도 화장실 변기통에 빠졌거나 아이들 목욕 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요량으로 남겨 둔 물이 담긴 욕조에 빠진 모양이라고 했다. 화장실 한쪽에 작은 그릇을 놓아두고 녀석들의 물통으로 사용했는데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물통의 물을 비우고 한쪽에 치워뒀던 게 화근인 듯했다.
수건으로 감쌌다고는 하지만 달이 녀석을 말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새벽이라 드라이기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달이(여성)는 세 녀석 중에서도 가장 앙칼진 성격을 가진 녀석이었다.
아들 녀석은 수건에 있기 싫다며 앵알앵알 거리는 달이를 달래며 수건으로 연신 물기를 닦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달이는 아들녀석의 손길을 거부하더니 거실 한쪽에 놓은 보금자리로 들어가 버렸다. 보금자리라고 해봐야 네모난 바구니에 호랑이무늬 무릎 담요를 깔아 놓은 게 전부지만.
쥐알이는 그런 녀석의 뒤를 쫓아 들어가더니 연신 혀로 온몸의 물기를 닦아줬다. 놀랐을 녀석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만한 자식 물어오는 엄마 고양이이후 쥐알이는 아기고양이들이 화장실 근처에라도 갈라치면 낮으면서 앙칼진 목소리로 겁을 주며 위협했다. 그래도 화장실로 들어가는 녀석은 목덜미를 물고 데려오기도 했다. 세 녀석 중 가장 덩치가 큰 태양이를 물고 올 때는 가관이다.
유일하게 아들인 태양이는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났는데도 제 어미 쥐알이의 덩치와 비슷하다. 쥐알이가 워낙 작은 체형인 탓도 있지만 태양이 녀석이 먹거리를 엄청 밝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사료통에 머리를 넣고 있는 게 태양이다. 조그마한 덩치에 저만한 녀석을 물고 오는 쥐알이 모습이라니...
하지만 쥐알이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우리들 역시 아이들이 위험한 곳에 가면 가지 못하도록 우선 입으로 말리고, 그래도 안되면 쫓아가서 데리고 오니까. 아마 쥐알이도 그런 마음인 것 같다. 자기가 돌봐야 할 아기가 위험한 일을 당했던 곳, 그곳에 자꾸 가려는 아기들. 녀석 입장에서는 앙칼지게 말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 녀석을 위해 결국 우리는 화장실 한쪽에 놓아뒀던 고양이들의 물통을 거실 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오가는 우리들의 발길과 새벽이면 거실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는 녀석들의 발길에 물통이 채이면서 거실 한족은 늘 물바다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이 거실에 놓인 물통을 애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들은 툭하면 화장실에 달려가 세면대 위에 올라가 수도꼭지를 향해 물을 내놓으라며 앙앙거렸다.
며칠 후, 고양이들의 물통은 다시 화장실로 옮겨졌고, 한동안 조용하던 쥐알이는 연신 앙칼진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향하는 새끼들을 나무라고 물어오고 있다. 언제나 저 녀석들이 어미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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