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후와이찟 마을 초입
이영란
뚜이가 기특하고 또 사공의 마음도 어여뻐 흐뭇하게 미소를 흘리며 배에 오르는데 또 다른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어, 이게 누군가? 우리의 목적지 후와이찟 마을의 이장님이다. 강나루 마을에 사는 친척집에 왔다가 다시 그 친척과 꼬마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흔들거리는 조각배에 몸집이 큰 사람은 혼자 앉아도 좁을 판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는 둘씩 쪼그려 앉았는데 아빠와 여섯 살 난 아들, 이장님은 셋이 꼭 안은 듯이 붙어 앉았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
메콩을 거슬러 오르기 전에 기름을 넣으려고 배가 건너편 강나루의 주유선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 돌리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 이장님 목소리는 뒤쪽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많이 보고 싶었다, 이번엔 토끼 아가씨(지난 여름 과학창의재단 후원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할 때 함께 온 전북대 학생이다. 라오스 어린 학생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우리도 별명을 만들어 썼다)는 안 오느냐, 특히 우리 집 아기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그때 하룻밤 이장님 댁에서 묵으면서 토끼 학생이 집안의 꼬마들과 정말 잘 놀아주었다), 여전히 마을 학생들은 '곰 세 마리' 노래(내가 라오스어로 번역해 준 것을 열심히 외우고 연습해서 그 학생들의 공연은 어른들한테도 인기 만발이었다)와 율동을 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한다 등등. 이장님의 회고가 끝없이 이어진다.
정 깊은 라오스 사람들, 게다가 전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두메산골의 이장님은 순진무구 그 자체다. 이야기를 할수록 기억이 생생해 지는지 눈시울까지 붉히신다. 그래, 나도 그랬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
2007년 1월 나는 처음 라오스에 왔다.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것이다. 지리교사를 꿈꿨고,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그다지 적지 않은 지역을 여행했기에 웬만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수도 이름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라오스는 웬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단원으로 선발되면 한 달 동안 합숙훈련을 한다. 이때 파견되는 국가에 대한 공부를 한다. 애초 내가 지원했던 나라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콩고민주공화국이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곳의 비상한 정치사회 환경을 고려해 유엔평화군 대피방송을 놓치지 않도록 라디오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파견을 일주일 앞두고 콩고의 상황이 진짜 비상해졌다. 나의 파견지는 라오스로 바뀌었고 그때서야 나는 라오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라오스 사람들의 특별한 사회연대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