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CCTV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가

[주장] 박근혜 정부가 CCTV에 목을 매는 진짜 이유

등록 2013.03.15 09:54수정 2013.03.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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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학교폭력에 대한 유서를 남기고 경북 경산에서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1학년 최아무개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 경북경찰청 제공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정책이나 법안이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을 단순화해 보자. 먼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의 여론이 전국적으로 순식간에 형성된다. 곧이어 찬반 의견이 꽤 갈리는 사회적 사안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때 뜨거운 여론의 지지를 받는 의견이 그 몸집을 급격하게 불린다. 이를 틈타 정부나 국회에서는 관련 정책이나 법률을 일사천리로 처리한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여기저기 널려 있다. 2008년의 조두순 사건은 이른바 '화학적 거세 법안'을 도입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전국 지자체에 방범용 CCTV 증설 열풍을 불러온 2009년의 강호순 사건도 있다. 2012년의 우위엔춘(오원춘) 사건은 112 위치추적법안을 마련하는 구실이 되었다. 정부 당국은 치안 불안에 떠는 시민들의 감정을 악용하여 사회적 논란이 거센 법안들을 신중하게 검토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통과시키기에 급급했다.

지금 학교 CCTV 설치 확대에 관한 박근혜 정부의 조치가 정확히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발단은 지난 11일 경북 경산에서 일어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죽은 학생이 공책에 남긴 유서에 '(CCTV 카메라의) 화질이 안 좋아 판별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없애려면 CCTV를 더 좋은 걸로 바꿔 설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 놓기까지 했다. 당국의 대응이 유례없이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일어나고 있는 배경이다.

'CCTV 만능론', 결코 만능이 아니다

첫 번째 대응은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현재 50만 화소의 CCTV 카메라는 학교폭력을 잡는 데 무리가 있으므로 100만 화소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재정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4대 사회악(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척결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였다.

하지만 과연 CCTV 설치가 학교폭력 사건을 잡아낼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라. 그 어떤 학생이 CCTV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곳에서 폭행을 저지르겠는가. 그가 조금 넋이 빠진 얼간이 가해자라면 모를까 상식적인(?) 가해자라면 결코 CCTV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국이 이렇게 구체적인 화소 수까지 들먹이며 교체를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선 국민들 앞에서 생색 내기에 좋다. 한번 시작하니 일을 화끈하게 처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른바 4대 사회악이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사안들이어서 관련 정책 도입이 가져오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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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설치 대수 ⓒ 신수빈


그런데 문제는 지금 전국을 휩쓸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CCTV 만능론'이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거의 미미하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도 없다. 영국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영국은 CCTV 정책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CCTV 천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한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CCTV에 목을 매는 진짜 저의는 무얼까. 냉혹한 감시자 이미지를 갖는 CCTV 카메라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어떤 규율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지금 하나의 '눈'이 보고 있으니 네 멋대로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금지 명령과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규율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사회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루 평균 수십회 CCTV에 노출되는 우리의 일상

오늘날 우리는 곳곳에 설치된 CCTV 카메라에 하루 평균 수십 회가 넘게 자신의 모습이 찍히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관련기사). 터미널이나 공항과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시내버스와 아파트 주차장, 병원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도깨비 눈 같은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 CCTV를 의식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행동을 일정한 규격에 맞게 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의미하는 'opticon'이 결합한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제안한 이 개념은, 원형으로 된 일종의 감옥 건축 양식을 뜻한다. 그것은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다수의 수용자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제에 기초한다. 어원속의 "모두를 본다"라는 의미도 그런 맥락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은 후대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 철학자인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그 유명한 <감시와 처벌>이란 저서에서 현대적인 규율 사회의 상징어로 이 말을 쓰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마크 포스터(Mark Poster, 1941~2012)는 '슈퍼 파놉티콘'이라는 새로운 합성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이는 피감시자의 자발적 협조에 의해 이루어지는 감시 구조를 가리킨다.

이번 자살 사건과, 이에 뒤따른 일련의 CCTV 관련 조치를 접하면서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을 떠올린 이가 나뿐만은 아니리라. 나는 박근혜 정부가 마크 포스터류의 슈퍼 파놉티콘까지를 염두에 두면서 CCTV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그들만의 효율적인 감시 체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 모두 '홀롭티시즘'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우리 모두가 '홀롭티시즘(Holopticism)'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홀롭티시즘은, 파리의 겹눈, 곧 수백 개의 홑눈이 겹쳐져 붙어 있는 복안(複眼) 구조를 의미하는 '홀롭틱(Holoptic)'에서 나온 말이다. 홀롭티시즘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체가 소수의 권력에 감시를 당하는 '21세기판 빅 브라더'의 반의어이다.

복안 구조를 이루는 수백 개의 홑눈 각각은 힘 없고 미약한 개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 하나의 겹눈이 되면, 각각의 개인이 최고 권력자나 주류 언론을 견제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갖게 된다. 우리 모두가 사회 주류나 지배 세력에 대항하고 그들을 감시하는 CCTV 카메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집단지성이야말로 권력자의 압제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아니겠는가. CCTV 만능주의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이 우울한 시기를,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며 건너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CCTV #파놉티콘 #홀롭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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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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