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졸복 입었을 뿐인데... '미친존재감' 발산

대구 중구 자율방범대 '은빛순라군'의 야간순찰을 따라가다

등록 2013.03.19 10:40수정 2013.03.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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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를 지키는 순라군 순라군 복장을 갇춘 어르신들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남대호


'순라군'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순라군'이란 조선시대에 궁중과 도성 안팎을 야간 순찰하던 군인을 일컫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순라군이 다시 대구에서 부활하였습니다.


은빛순라군은 2009년부터 대구시 중구청에서 운영해오고 있는 자율방범대입니다. (사)대한노인회 대구중구지회 소속 어르신들이 조선시대 포졸복을 입고 중구 밤거리를 순찰하는데요, 어두운 골목길이나 공원 구석 등 치안취약지역을 돌며 '청소년 탈선행위 예방' 및 '노약자와 여성 안전 귀가'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5년째인 베테랑 은빛순라군 어르신들을 18일 저녁에 만나 함께 중구 일대를 돌며 야간 순찰에 동행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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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순라군 3인방 대구 중구 동성로일대를 책임지는 은빛 순라군 어르신들 ⓒ 남대호


쇼윈도에는 형형색색의 봄을 입은 마네킹들이 즐비해있고, 동성로 길거리에는 한껏 멋을 낸 대구 멋쟁이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하얀색 저고리에 붉은색 혹은 파란색 괘자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쓰신 세 분의 은빛순라군 어르신들이 동성로에 등장하니 그 모습은 가히 '미친 존재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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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밤의 존재감 어르신들의 늠름한 뒷모습 ⓒ 남대호


은빛순라군은 대구 중구에만 있는 유일무이한 특별 방범대원입니다. 모두 70세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주 월·수·금, 한 달에 10회 이상 그리고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두 시간가량 동성로 일대를 순찰합니다. 주로 구석지고 후미진 골목을 중심으로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들 풍물패로 착각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 탈선행위를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일도 녹록지 않은 것이지요. 또 지나가는 사람마다 왜 그렇게 관심을 갖고 쳐다보는지, 타인의 시선을 감내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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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 은빛 순라군에게는 나무패와 휴대용 전조등이 지급된다. 나무패는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서로 부딪히게 되면 큰 소리가 난다. 예전 조선시대에서 도둑을 몰아낼때 사용한 이 장비가 지금 시대에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큰 소리가 되길 바란다. ⓒ 남대호


하지만 5년째 반복하다보니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상인들이 인사를 해주기도 하고 실제로 2·28기념공원이나 국채보상운동공원에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일도 줄어들어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한 외국인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일이 많아 문화사절단의 역할로도 자리매김을 하니 고단함보다는 뿌듯함이 더 크시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어른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자면 "인자는 도가 터뿌리서 뻔치가 늘어가꼬 부담시럽지 않다 아이가(이제는 도가 트고 뻔뻔함이 늘어서 부담스럽지 않다)"라며 사람들의 시선에도 자유로워지게 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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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꼼꼼한 걸음 도심의 치안사각지대에도 깊숙히 들어간다. ⓒ 남대호


이렇게 5년 동안 순라군으로 변신한 어르신들도 도복만 벗으면 영락없는 동네 친근한 할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사회 은퇴가 점점 본격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만 늘어났을 뿐 어르신들의 열정은 아직 반도 못찬 듯합니다. 그래서 집에만 있을 순 없다던 이들은 이렇게 밤 늦게 은빛순라군으로 동네를 지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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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좀 취하게 동성로 일대를 구석 구석 순찰한 후 벤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 남대호


활동비가 많은 것도 아니며, 늦은 밤 순찰을 돈다는 건 위험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내 손으로 지킨다는 파수꾼의 마음은 어르신들의 걸음에 투영되었습니다. 마지막 포인트 공원을 끝으로 은빛순라군의 하루 활동이 이로서 끝이 났습니다. 장장 2시간을 걸은 은빛순라군 어르신들의 느릿하지만 힘 있는 발걸음은 지치지 않는 듯합니다. 은빛순라군 어르신들과 함께한 멋진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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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는 우리가 지킨다!! 구호를 하면서 포즈를 잡아주는 은빛 순라군! ⓒ 남대호


#은빛순라군 #동성로 #순라군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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