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한마리로 시작되는 '목장주의 꿈'

송아지 릴레이 분양 받은 박정훈씨 "잘 키우겠습니다"

등록 2013.03.19 15:59수정 2013.03.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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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이른 아침상을 막 마주했는데 휴대전화가 급히 울린다. 낯선 목소리에 억양은 투박스럽다.


"저... 지역발전인가 하는 데 일 보시는 분 맞지요?"
"아, 예. 그렇습니다만..."
"오늘 송아지 가져가신다고 했다는데 말입니다. 그게... 우리 송아지가 눈 주변에 심한 버짐이 생겨서 괜히 그냥 다른 소 있는데 갔다가는 병 옮길 수도 있고 해서 전화 드렸는데요."

오늘(19일) 오전 9시 예정돼 있는 릴레이식 한우 장려사업 송아지 전달식에 '참석'할 송아지 주인 오아무개씨였다. 이미 한 달 전에 행사 예정을 알렸고, 그제도 직접 관리하는 부모님을 통해 확인을 했는데 당일 아침에 이런 '변고'를 알려오니 답답한 노릇이다.

가축의 버짐이란 피부·피모 등에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가 감염돼 나타나는 질병으로 대개 영양상태가 좋지 않거나 환경이 불결한 곳에서 나타나고, 다른 가축에게 옮기기도 한다.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연고를 가축약품 판매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오아무개씨의 경우 가축 관리를 고령인 모친에게 맡기고 막노동을 하는 처지라 적절히 조치하지 못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

횡성 한우로 유명한 이곳 안흥에도 크고 작은 한우 사육농가가 많다. 뛰어난 브랜드 가치로 인해 최근 전국적으로 소 값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횡성에서 만큼은 아직 소 사육이 인기가 있다.

대를 이어 이어지는 무료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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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목장주의 꿈에 격려의 박수를. 송아지 전달식을 한 후 기념촬영을 한 농가와 관계자들. ⓒ 성락


이런 이유로 안흥면 주민복지 등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안흥면지역발전협의회는 2008년부터 축산업 의지가 높지만 형편상 한우를 입식하지 못하는 영세한 주민을 선정, 암송아지를 무상으로 분양해주고 이 농가에서 생산된 암송아지 한 마리를 환원 받아 또 다른 농가에게 분양해주는 릴레이식 송아지 장려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장려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송아지를 분양받은 농가는 3년 이내에 암송아지 한 마리를 환원함으로써 의무를 다하게 되고, 어미 소는 자신의 소유가 된다. 이 사업을 통해 수년 간 마릿수를 늘려 어엿한 목장주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농가들이 나타나면서, 연간 2~4마리씩 이어지고 있는 이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경쟁도 사뭇 치열하다.

이번의 경우 분양할 송아지는 두 마리이지만 16개 마을 리장들을 통해 신청자를 접수한 결과 여섯 농가가 신청해 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심사 또한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안흥면지역발전협의회 이사 10명이 한자리에 모여 신청농가의 최소한의 한우사육 기반(축사, 사료포, 농기계 보유여부 등), 영농의지, 성실성,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꼼꼼히 심사해 최종 대상자를 선정했다.

"일단 어쩔 수 없지요. 오늘 분양받기로 한 농가에는 연락을 취할 테니 한 달 가량 잘 치료를 하시고 상태를 봐가며 다시 일정을 잡겠습니다."

결국 두 마리의 송아지를 전달하기로 했던 오늘 계획은 한 마리로 축소됐다. 오전 9시, 면사무소에 송아지를 환원하는 진원섭(58)씨 농가와 분양받을 박정훈(53·강원 횡성 안흥 소사리)씨 농가, 그리고 심사를 맡았던 협의회 임원들도 도착했다. 송아지 주인 진씨는 2년 전 이 사업 최초 대상자였던 이아무개씨가 환원한 송아지를 분양받아 오늘 다시 다른 농가에 송아지를 환원하게 됐다. 송아지 3대 릴레이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한우 사육, 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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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인을 만나는 암송아지. 박정훈씨의 꿈, 생후 6개월 된 한우 암송아지 입니다. ⓒ 성락


"이 녀석이 어찌나 말썽꾸러기인지, 겨우내 풀어놨더니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남의 밭에 쌓아놓은 콩깍지도 제 것인 냥 먹어치우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체격도 좋고 건강상태도 아주 좋으니 데려다 잘 키우세요."

아쉬운 듯 송아지 자랑을 쏟아내는 진씨의 수다에 송아지를 분양받을 박정훈씨는 트럭에 실려 낯선 환경에 두리번거리고 있는 송아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씨는 영세하지만 평소 부지런한 농업인으로 주위에 알려져 이번 심사 대상자 중 최고 수로서 전정됐다.

"잘 키우고, 또 건강한 송아지를 생산해서 또 다른 농가가 한우 사육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의무를 다해야지요. 감사합니다."

송아지 전달증서가 수여된 후 소박한 소감을 밝히는 박씨에게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송아지 릴레이 장려사업이 시작된 후 열다섯 번째 한우 농장주의 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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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농가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사업 대상자에 선정. ⓒ 성락


농촌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좀 나은 품목이라 여겨졌던 축산업도 쇠고기시장 개방이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다 해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까마득한 옛날 옛적 이야기이지만 웬만한 암소 한 마리로 자식들 대학 교육까지 시켰던 시절이 있다. 새끼 잘 낳는 암소 한 마리가 농가의 보물 1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크게 변했다. 축사에 송아지 한 마리 덩그러니 매여 있으면 "돈도 안 되는데 귀찮게 웬 청승이냐"는 손가락질이 쏟아질 판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한우 농장주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리고 그러한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이다. 이것도 저것도 죄다 안된다고 아우성치며 이 품목 저 품목 바꿔보고, '쇠귀에 경 읽기'인 정부에 대책을 외쳐본들 결국 제자리인 상황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자조적 '한우 릴레이 장려사업'은 그 의미가 더하다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성락님은 재단법인 안흥면지역발전협의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송아지 #한우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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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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