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한할머님'은 무슨 뜻?

한글학회 간사이지회 제19차 연구 발표 모임

등록 2013.03.25 10:16수정 2013.09.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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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학회 간사이지회 회원들이 발표자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박현국


23일 오후 오사카 히라카타시 시민회관 3층에서 한글학회 간사이지회 제19차 연구 발표 모임이 열렸습니다. 비록 많은 회원이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한글에 뜨거운 열정을 가진 회원들이 모여서 연구 발표 모임을 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원 세 분이 발표를 하셨습니다.

먼저 한남수 회원은 이진규 선생님이 쓰신 <인민한글교본>이라는 책에 대해서 발표하셨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1950년 3월 도쿄 중앙출판사에서 등사판으로 박아낸 것으로 97쪽입니다. 

일제 강점기엔 우리말을 쓰거나 배울 수 없었지만 집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우리 동포들이 쉽게 우리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이 책입니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치적 혼란기에 이런 책을 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이 책은 자모, 홀소리, 닿소리, 단문, 연습, 인사법, 동요와 시, 속담, 수수께끼, 문학작품, 문법, 어휘, 한자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최근 한남수 회원은 이 책을 우연히 도쿄 외국어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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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수 선생님이 발표하신 <인민한글교본> 첫 장과 마지막 장입니다. ⓒ 박현국


두 번째 발표는 김리박 지회장님이 하셨습니다. 일본 사람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일찍이 고사기전이라는 책에서 한자말을 일본 토속어로 바꾸어서 표기하였습니다. 지회장님은 발표에서 고사기전에 나오는 표현을 우리 고유 말로 바꾸어 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자말이 아니고 우리말을 찾아서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옥새(玉璽)는 임금 찍음, 삼종(三種)은 세 가지나 세 갈래, 만천추(萬千秋)는 긴긴 나달, 장추(長秋)는 긴 나달이나 긴 해달, 천운(天雲)은 하늘 뜬 구름, 천하(天下)는 온 누리나 온 나라, 멸(滅)하다는 모조리 죽이다나 모조리 없애다 등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 가운데 반 이상이 한자말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래 우리말이 있었을 터인데 한자말에 치여서 우리말이 없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죄나 법과 같은 말도 원래 우리말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디 언니나 아우라는 말은 동성끼리 썼고, 동생이라는 말은 이성끼리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우를 동생이라고 하고, 사내들의 언니를 형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소학언해에 한할머님(증조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어머니, 할머니, 한할머니, 한한할머니로 이어졌을 터인데 증조모라는 한자말 때문에 한할머님이라는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또한 아들에서 한아들(손자), 한한아들(증손자), 한한한아들(고손자) 등으로 이어졌을 터인데 손자에 밀려 우리말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글자가 없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이웃나라 글자인 한자를 빌려 쓴다고 하지만 우리말이 있는데도 한자말에 휘둘려온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입니다.

1443년 만들어진 훈민정음이 450년이 지난 갑오경장(1894) 때에 이르러 나라글로 정식으로 인정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 말 속에 있는 한자나 일본어, 영어 찌꺼기를 없애는 일도 하루아침에 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올곧은 마음과 우리말 사랑과 우리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설화에 대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2년 전 설화 현지 채록 결과를 중심으로 왜 산외 지역을 선정했으며 채록 과정에서 만난 제보자, 설화 내용 등 산외면 설화의 종합적인 상황에 대해서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한글학회 간사이지회 제19차 연구 발표 모임은 많은 회원이 참석한 것은 아니지만 한글에 관심이 있는 한국 사람과 일본인 회원들이 참석하여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여 우리 말,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북돋워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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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회 모임을 마치고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박현국


참고문헌> 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487호, 2013.3.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글학회 #한글학회 간사이지회 #인민한글교본 #정읍시 산외면 설화 #김리박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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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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