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 그림같은 봄, 여기 있었네

봄기운 만연한 북한강변, 정다운 오일장도 볼거리

등록 2013.04.03 15:09수정 2013.04.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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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속에서도 북한강변에 한 폭의 그림같은 봄이 오고 있다. ⓒ 김종성


긴 겨울이 마침내 끝을 보이고 있다. 무거웠던 옷차림이 가벼워지니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져 좋다. 한낮의 봄볕이 따사로운 기분 좋은 나날, 남녘에선 매화꽃·산수유 꽃이 화사하게 봄을 알려오고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일교차가 커 봄이 올 듯 말 듯 주춤거리기만 한다. 덩달아 봄맞이 자전거 여행을 떠나려는 내 마음도 주춤주춤.

그런 내 마음을 다잡게 한 건 대문 앞에 서 있는 애마 자전거. 겨우내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버렸는지 바퀴에 바람이 다 빠져 버린 모습이 처연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쌓인 먼지를 닦고, 체인에 기름칠도 하고, 바퀴에 빵빵하게 바람도 채우니, 강바람을 쐬며 봄 길을 바람같이 달리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봄날의 첫 자전거 여행은 북한강변으로 정했다. 2010년 경춘선이 복선 전철화되면서 서울과 춘천을 오가던 기찻길이 폐선됐고, 그 기찻길을 활용해 몇 달 전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양평 사이의 옛 중앙선 기찻길이 남한강 자전거 도로가 된 것과 비슷한 길이다.

경사진 언덕길이 없는 평탄한 남한강 자전거길과 달리 북한강 자전거길은 여러 개의 언덕길이 있어 오르막길은 힘들게 오르고, 내리막길은 짜릿하게 내리 달리는 변화무쌍한 길이다. 강변은 물론 차도 옆, 마을 사이, 터널 등 다양한 길과 풍경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변화무쌍한 북한강변길에서 마주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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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애마를 북한강변으로 데려다준 중앙선 전철 창 밖의 초록빛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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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따스한 강바람과 햇볕속에서 봄이 옴을 느낀다. ⓒ 김종성


수도권 전철 중앙선 열차를 타고 운길산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북한강이 흐르고 강변에 자전거길이 나 있다. 애마 자전거를 거치해둔 전철의 큰 창문으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초록 풍경이 반갑다. 참고로 중앙선 전철과 경춘선 전철은 평일에도 맨 앞뒤 칸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사람들과 자전거로 만원 전철이 되는 주말과 달리 평일에는 햇살마저 느리고 여유롭게 비쳐온다.  

꽃샘추위의 시샘으로 아직 완연한 봄날은 아니지만 북한강변길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살랑살랑 친근하게 부는 강바람에서 아련한 봄 내음이 맡아진다. 짧아서 더 아쉬운 봄날이지만 역시 자전거 여행하기에는 제일 좋은 계절. 곧 이어질 무더운 여름날을 떠올려 보면 햇볕과 바람이 한결 부드럽고, 땀이 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애마와 부지런히 이 계절을 달려야겠다.


'오르막에서 길은 자전거 바퀴를 타고 몸으로 흘러 들어온다'던 작가 김훈의 표현은 정말 생생하게 공감된다. 가뿐하게 달리던 강변길에서 처음으로 언덕 오르막길을 마주쳤다. 심하게 경사진 언덕길은 아니지만 겨우내 쉬었던 다리와 심장은 야트막한 오르막도 힘겨운 나머지 '헉헉' 입으로 거친 숨소리를 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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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부드러워진 강바람을 쐬며 달려가는 북한강변길. ⓒ 김종성


오르막에 이어 다시 내려올 때의 내리막길은 짜릿하고 상쾌하기도 하지만 언덕길 위에 힘들게 올라서서 바라보는 북한강 풍경은 눈이 탁 트이고 시원해진다. 같은 풍경인데도 경춘선 기차를 타고 지나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크게 실감하게 되는 게 있다. 바로 '속도는 풍경을 바꾼다'는 것이다. 같은 풍경이라도 걸을 때와 자전거 탈 때가 다르고, 기차를 탈 때와 차를 탈 때가 또 다르게 다가온다. 1~2인용의 작은 어선들이 강 위를 떠다니는 모습도 평화롭기만 하다.

북한강은 주변의 산세와 강물이 무척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강이다. 같은 강물인데 유장하고 여성적인 느낌의 남한강변과는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가 강변에는 스피드를 즐기는 수상 스키 가게들이 강변 카페보다 많다. 여름도 아닌데 성미 급한 몇몇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강물 위를 달리며 수상 스키를 즐기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출렁출렁 강물에서 파도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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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기차안을 잠시 컴컴하게 했던 터널속을 이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 김종성


강변길·오르막길·차길·마을길을 달리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길이 떡하니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갔을 때 몇 번씩 기차 실내를 컴컴하게 했던 터널이 나타난 것이다. 국내외에서 며칠간 자전거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터널 속 공포를 한 두 번씩 경험해봤을 게다. 급한 경사의 산길이 도저히 엄두가 않나 하는 수 없이 택한 터널.

온갖 차량들이 귀청을 뚫을 듯 굉음을 지르며 내달리는 어두컴컴하고 시커먼 동굴 속은 자전거 라이더에게 잊기 힘든 지옥을 맛보게 한다. 북한강변에선 그 터널이 이채롭게도 자전거길로 변신을 했다. 물론 기차가 지나갈 때와 달리 조명시설을 달아 안전하고 환해진 터널길이다. 산의 몸통을 뚫어 만든 터널 속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따스한 봄볕을 쬐며 달리느라 등허리에 맺힌 땀이 다 말랐다. 게다가 터널 밖으로 환하게 나서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되는 행운까지 얻었다.  

가평읍 동네에 도착 전 마주친 터널은 600m 정도의 긴 동굴로, 지나다 보면 절로 고독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고요한 동굴 속, 들리는 소리라곤 '촤르륵 촤르륵' 애마 자전거의 체인 소리뿐. 독거남이니 고독 자체가 두려운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고독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고독이 주는 완벽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자전거 여행이 아닐까 싶다. 홀로 남거나,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일이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북한강변에서 만난 정다운 청평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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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향이 향긋하게 느껴지는 소박한 청평 오일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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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들려오는 트로트 노래소리가 오일장터를 흥겹게 한다. ⓒ 김종성


경춘선 기차가 지나갔던 자전거길답게 이름만 들어도 청춘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역들을 지나쳐 달려간다. 대성리역·청평역·가평역·강촌역... 아직도 역의 모습이 오롯이 기억되는 대성리역을 향해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그러려니 예상은 했지만 소박하고 아담했던 역은 크고 현대화된 전철역으로 바뀌어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 같은 골목길 동네를 찾아 갔건만, 온통 아파트가 들어선 뉴타운으로 변모해 버린 것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할까.

추억 속 기차역과 민박집·강변 유원지에서 놀던 기억들 모두가 사라진 듯한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마음을 달래준 곳이 있었다.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청평리 오일장터. 카세트 테이프에서 나오는 트로트 노래와 장터에서 파는 목청 좋은 닭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그만큼 시장터가 강변에 붙어 있다시피 있다. 곳곳에 먹거리가 풍성한 오일장터, 제 몸을 태우며 북한강변을 달리는 배고픈 자전거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쉼터가 아닐 수 없다.    

늦은 점심밥을 먹으려 오일장터 어느 곳에나 있는 장터국밥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끝난 국밥집에 식당 식구들이 모여 한가로이 식사를 하는 가운데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된장국에 눈길이 갔다. 된장국에 웬 향긋한 냄새가 섞여 있나 했더니 봄나물 냉이를 넣었다. 자전거 라이딩 복장을 한 나를 호의적으로 본 듯한 한 아주머니에게 국밥 대신 냉이 된장국을 먹으면 안되겠냐고 눈길을 보냈다. 애원을 담아서... 결과는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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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돌보고 있는 주인과 봄볕에 겨워 졸고 있는 강아지, 참 평화롭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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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해서 좋은 가평 자라섬 산책길 한 바퀴. ⓒ 김종성


흙 속에서 봄 햇살의 기운을 받으며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 냉이, 텁텁한 된장 국물과 기막히게 어울리며 겨우내 움츠렸던 내 창자들을 활짝 깨운다. 국 한 모금이 초래한 뱃속 내장들의 요란한 기쁨도 잠시,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몸이 아프고 약해져 봄이 와도 아들에게 더 이상 냉이 된장국을 끓여주지 못하는 내 어머니. 멀쩡히 밥 먹다 말고 벗었던 선글라스를 슬며시 다시 썼다. 눈물이 섞여 있는 맛이 났던 냉이 된장국이었다.
       
청평에서 가평 가는 길목, 농촌 분위기가 나는 마을 사이를 지나가게 됐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볏짚 태우는 냄새,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흙 내음이 나서 좋다.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자란 내게 시골 경험이라고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충남 온양의 외가에서의 기억이 전부. 유년시절의 짧은 추억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자전거 도로 한쪽에 볏단을 가득 실은 작은 화물트럭이 서 있어 애마 자전거를 멈추게 한다. 트럭 주인이자 농부 아저씨는 조금 미안했는지 "볏짚으로 주변의 밭을 덮고 있다"며 "이러면 밭이 봄볕을 적게 받아 덜 건조해지고 좋다"고 설명해주셨다. 자신이 오랜 경험을 통해 고안해낸 농사 방식이라며 쑥스럽게 웃으신다. 조금씩 푸릇푸릇해지는 밭에는 흙을 일구고 있는 아저씨와 그 앞에 앉아 봄볕에 겨워 졸고 있는 강아지가 참 평화로워 보였다. 

가평읍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이정표에 꼭 가보라고 말하듯 '자라섬'이 크게 적혀 있다. 이웃 남이섬과 달리 육지에서 가까워 연륙교를 통해 금방 닿을 수 있어 좋다. 오토 캠핑장에서는 재즈 페스티벌도 열리는 등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한 섬이지만, 이맘때의 자라섬은 한적하기만 하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보다 보니 하루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가까이에 경춘선 전철 가평역이 있어서 느긋한 마음이 생겼다. 땅거미 내려앉는 자라섬을 돌아다니며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했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수도권 전철 중앙선 운길산역 - 북한강변 - 청평 오일장 - 가평 자라섬 - 경춘선 가평역 (주행 거리 약 45km)
덧붙이는 글 지난 3월 27일날 다녀 왔습니다.
#자전거 여행 #북한강 자전거도로 #청평 오일장 #가평 자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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