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도시 주민? 이 동네 삶은 '팍팍'합니다

[주장] 부자동네로 꼽히는 울산 동구, 상대적 박탈감은 도처에 깔려 있어

등록 2013.03.30 17:01수정 2013.03.3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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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30일 울산 동구 방어동에 들어선 '문현 5일장'에서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채소를 팔고 있다
2013년 3월 30일 울산 동구 방어동에 들어선 '문현 5일장'에서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채소를 팔고 있다박석철

모처럼 묵은 때를 씻어내려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탕속에서 공교롭게도 평소 안면이 있는 동네 아저씨를 만났다.

목욕을 마치고 휴게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던 50대 중반의 아저씨는 자신을 현대중공업 정규직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30년 이상 용접일을 해온 그는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8000~9000만 원 쯤"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그 뒤 덧붙인 말은 나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자녀가 대학생인 직원은 학자금 혜택까지 합치면 1억 원은 넘을 겁니다."

굴지의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에 대해 뭐라 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집 대기업 자녀가 학자금을 전액 무료로 지원받는 것을 보는 자영업자 가장의 입장은 참 곤혹스럽다.

힘없이 목욕탕을 나왔다. 마침 오늘(30일)은 이 지역 토요장이 열리는 날이라 골목마다 노점상들이 좌판을 깔고 있었다.

장날에는 없는 게 없다. 부부가 손수 만드는 족발서부터 아이들 옷가지를 파는 젊은 여성, 도너츠를 즉석에서 굽는 상인 등 구경거리가 많다. 특히 토요장에는 삼삼오오 모여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루 얼마나 버느냐'는 질문에 한 할머니는 "2~3만 원, 그것도 요즘은 수입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고 답했다. 매일 서는 장이 아니니 한 달로 따지면 큰 수입이 못된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별다른 노후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를 모시지 않는 자녀가 있지만, 장성한 자녀가 있으면 국가 보조금도 받을 수 없다. 할머니는 정부에서 매달 주는 한 달 9만여 원의 노인 수당에다 오늘처럼 장사해서 번 돈으로 한 달을 산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인들은 할머니뿐만 아니었다. 신발을 파는 30대 남성, 땅콩과 쥐포를 파는 50대 남성도 점점 어려워지는 삶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 매출이 해마다 떨어진다고 하소연한다. 계절마다 학비를 대기 팍팍한 이들에게는 대기업에서 나오는 자녀 학자금이 하늘의 구름처럼 보일 것이다.

할머니가 장사를 하는 곳에서 700m가량 올라가면 지난 2월 25일 개점한 '익스프레스 방어점'이 있다. 지역 중소상인단체는 이곳의 하루 매출을 600~700만 원대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노점 상인들 사이에서는 익스플러스 개점 후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처럼 울산 동구 방어동에는 연봉 1억 원을 받는 동네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하루 2만 원 벌이에 목숨을 거는 할머니가 있다. 해마다 언론에서 '최고의 부자 도시'로 지칭하는 울산 동구, 그 중에서 소득이 가장 소득 높은 동네라는 방어동 주민들의 현재 실상이다.

최고 부자도시라 하지만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

2011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을 부자 도시로 만든 현대중공업의 2011년 매출은 25조200억 원, 그해 회사는 2조612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덕분에 주민들의 총생산액을 지칭하는 1인당 GRDP는 4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정규직은 2만여 명, 하청업체에 다니는 사람은 2만50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18만여 명인 이곳 동구의 자영업자는 통계청 추산 2만여 명에 달한다.

해마다 주민소득이 최고로 갱신돼 언론에 보도되는 울산 동구의 주민들은 과연 그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을까.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대적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자영업자들의 삶이 해마다 픽박해지고 있어 뭐라 답할 수 없다.

지난해 국세청이 집계해 발표한 '2011년 개인사업자 폐업 현황'을 보면, 울산지역에서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모두 1만746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울산 전체 개인사업자 10만여 명(추산치)의 17.4%로, 6명 중 한 명꼴로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같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수가 2010년 1만6242명에서 2011년 1만7467명으로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구가 울산 전체 인구의 6분의 1쯤 되니 그 수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 방어점'이 들어선 후 한 달 사이에 두 군데의 동네슈퍼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로 미뤄 현재 실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역 상인들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동구에 홈플러스가 들어선 후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해마다 격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동네수퍼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동네에서 안경점을 하던 주민이나, 신발가게를 하던 주민, 분식점을 하는 주민들 등 대부분 자영업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대형마트에 가면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고용창출은 지역 자영업자에 도움이 될까

그렇다면 부자도시 울산 동구에서 자영업을 하다 문을 닫은 주민들은 어디로 갈까. 누군가는 심기일전해 다른 장사를 할 것이다. 만약 아직 젊은 사람이 있다면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지난 2011년 말 조선 경기 불황으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 수천 명이 대량 해고된 적이 있다. 세계적인 경제 흐름에 맞물리는 조선업이다보니 자영업을 그만두고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취직하기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 근속 연수가 낮은 하청업체 종사자들의 임금 환경은 열악해 주민들 사이의 상대적 빈곤을 부추기게 된다.

이런 차에 들어선 대형마트와 SSM은 자영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게 된다. 대형마트들이 주로 하는 항변은 '지역 주민들의 고용창출'이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용창출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홈플러스 동구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지역 주부들이다. 이들은 처음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줄 알고 갔다가 계약직에 도장을 찍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 5일 근무에 월 급여는 100만 원 정도. 한 주부는 "일을 마치면 거의 매일 홈플러스에서 장을 본다"며 "대부분 이곳에서 일하는 주부들이 그럴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홈플러스에서 일하고 받은 급여의 절반 정도는 홈플러스에서 다시 물건값으로 지불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고용창출로 특수를 기대한 자영업자에게는 별반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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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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