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장벽감시탑에서 얻은 교훈

[베를린 장벽길 160km를 걷다 5] 새롭게 들어선 마을들과 옛 감시탑

등록 2013.04.02 10:20수정 2013.04.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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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들어선 마을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집들

테겔천을 지난 후 좌측으로 향하면 탁 트인 수풀길로 연결된다. 화창한 날씨에 삼림욕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좀 더 걸어가다 보면, 숲 속에 드넓게 펼쳐진 모래밭을 볼 수 있는데, 숲 사이에서 해수욕장과 같은 희뿌연 모래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래밭 주위에 심어진 나무들은 모래가 더 이상 퍼지는 것을 방지하는 자연방풍림의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이곳은 호수가 없었지만 호수가 있는 곳에 모래밭이 드넓게 펼쳐 있으면, 자연 호수욕을 즐기기 안성맞춤이다. 내가 살던 부산과는 달리 베를린에서 바다를 볼 수 없지만, 여름에 호수에서 시원하게 수영하고 나면 몸이 잘 풀린다.

a 숲 속의 모래사장 독일 숲을 산책하다 보면 드넓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는데, 산책하면서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여름 햇빛이 쬐는 날에 발을 찜질하기 좋은 곳이라고나 할까. 호수가 곁에 있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숲 속의 모래사장 독일 숲을 산책하다 보면 드넓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는데, 산책하면서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여름 햇빛이 쬐는 날에 발을 찜질하기 좋은 곳이라고나 할까. 호수가 곁에 있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 최서우


북부 독일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지형과는 달리 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베를린도 예외가 아니라서 여기서 산을 보러 가려면, 최소한 3시간은 자전거를 타고 체코 국경지역까지 가야 한다. 산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대신 숲들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다. 필자의 경우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이러한 수목지역에 오면 다시금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아 베를린 수목 산책로를 애용하는 편이다.

장벽길을 걷다보면, 해당지역에 대한 지리안내표지를 볼 수가 있다. 위성사진에 빨간색 선과 노란색 선이 그려져 있는데, 붉은 선은 실제 장벽이 세워졌던 곳을 말해주고, 노란 선은 현재 필자가 걸어가고 있는 장벽 길을 나타낸다.

대부분 붉은 선과 노란선이 일치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약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유는 붉은 선이 아예 드넓은 강인 경우, 혹은 자연보호구역이라 통제된 경우, 새로운 마을 조성으로 우회도로가 놓였을 경우 등이 있다. 걸어가면서 계속 이 안내표지를 볼 수 있다면, 길을 제대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 장벽길 표지판 이곳의 위성사진을 잘 표시해두었다. 붉은 선은 실제 장벽이 세워졌던 곳을 상징하고, 노란선은 현재 베를린장벽길을 나타낸다.

장벽길 표지판 이곳의 위성사진을 잘 표시해두었다. 붉은 선은 실제 장벽이 세워졌던 곳을 상징하고, 노란선은 현재 베를린장벽길을 나타낸다. ⓒ 최서우


드넓은 모래와 수풀로 이루어진 길을 지나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새로 지은 집들이 보였다. 주택 모습들을 보니 중상류층들이 사는 지역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장벽이 붕괴되고 나서 새롭게 조성된 마을로 짐작된다.


마을 중심부로 올라가면 자갈길을 따라 장벽길이 이어지는데, 자갈길 좌우로 아기자기한 집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천편일률적인 연립주택 및 단독주택 지역과는 달리 집들이 세련되게 지어져 있고, 일부 집들의 경우에는 장식이 매우 화려했다. 집 디자이너와 설계가의 개성이 이곳에서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 다른 분위기들의 집들이었지만, 각각의 개성들이 조화를 잘 이룬 단독주택의 마을이었다.

걸어가면서, 언제 난 이런 아기자기한 집에서 가정을 꾸리며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단독주택지역이 노후화되어서 리모델링을 고민하고 있는 지역이 많은데, 단기적 개발이 아닌 중장기적인 주거 개선을 통해 디자이너와 설계가의 개성과 주민들의 의견이 조화를 이루어 독일 못지않은 아름다운 주거환경을 이루어갔으면 하는 소망도 가졌다.


a 수레바퀴 집 수레바퀴들로 장식한 집. 이 앞도 예전에는 장벽이었다.

수레바퀴 집 수레바퀴들로 장식한 집. 이 앞도 예전에는 장벽이었다. ⓒ 최서우


개성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면 대로를 따라 장벽길을 향하게 되는데, 가는 길 중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바로 장벽을 넘으려다가 동독 병사들에게 희생된 자들을 위한 추모비였다. 십자가 위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생몰연대가 적혀 있었다.

이곳 말고도 장벽지역에는 수십 가지의 추모비들이 조성되어 있다. 어떤 추모비의 경우에는 희생자가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했던 사연들과 왜 희생되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희생자 유가족을 배려한 베를린 시민들의 넓은 마음들을 볼 수 있었다.

장벽의 역사는 교과서의 역사가 아닌 베를린과 독일인 모두의 역사다. 장벽에서 희생된 자의 숫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까지 불명확하지만, 희생자를 찾고 추모를 하기 위한 작업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a 희생자추모비 장벽을 넘으려다 두 명의 희생자를 추모한 비. 추모비는 이 곳말고도 여러 군데에 있다. 베를린 시민들의 넓은 아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희생자추모비 장벽을 넘으려다 두 명의 희생자를 추모한 비. 추모비는 이 곳말고도 여러 군데에 있다. 베를린 시민들의 넓은 아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 최서우


처음 모습을 드러낸 감시탑, 그곳에서 얻은 교훈

마을을 지나면 다시금 숲길로 향하게 된다. 사실 베를린 장벽 하면 주로 베를린 중심부에서 찍은 사진이 대다수지만 경험상 장벽길의 50% 정도는 현재 평범한 들판길 혹은 숲길이다. 그래서 표지판에 집중하지 않고 걸으면 길을 잃기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벽길 표지판 말고도 옆에 있는 돌 표지판도 여정을 잘 안내하고 있어서, 초보자도 쉽게 이 길을 지날 수 있게 배려했다.

또한 이 숲길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좋은 산책로가 된다. 마치 우리나라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을 등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또한 숲 속에는 호수들이 많이 있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데, 필자가 걸었을 때는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못했지만, 빽빽한 숲은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되어주었고, 비 내리는 호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a 빽빽한 숲속의 장벽길 경험상 장벽길의 50%는 숲길과 들판길로 구성되어 있다.

빽빽한 숲속의 장벽길 경험상 장벽길의 50%는 숲길과 들판길로 구성되어 있다. ⓒ 최서우


a 비 내리는 호숫가 장벽길에는 호수가 매우 많다. 호반의 도시하면 춘천을 떠오르는데, 베를린의 경우 수도인데도 외곽으로 가면 호수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비 내리는 호숫가 장벽길에는 호수가 매우 많다. 호반의 도시하면 춘천을 떠오르는데, 베를린의 경우 수도인데도 외곽으로 가면 호수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 최서우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비가 그치고, 서서히 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날이 갬을 알고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지났을까. 옛날 감시탑의 모습이 작은 나무들 사이에서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길에는 여러 신문기사들이 붙여 있었는데, 독일숲청년회(Deutsche Waldjugend)에 관련된 글이었다. 그리고 감시탑에도 독일숲청년회의 마크가 선명했는데, 청년회가 이곳을 관리하는 것 같았다.

a 옛 감시탑 지금은 독일 숲 청년회에서 관리하는 것 같다. 왼쪽에는 이 단체에 관련된 신문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다.

옛 감시탑 지금은 독일 숲 청년회에서 관리하는 것 같다. 왼쪽에는 이 단체에 관련된 신문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다. ⓒ 최서우


전단 게시판 옆에는 호헨 노이엔도르프(Hohen Neuendorf)의 감시탑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적혀 있는데, 당시 사진을 보면 이곳은 현재의 수풀과 우거진 것과는 달리 매우 황량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황량한 땅 위에 감시탑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a 감시탑 소갯글 감시탑을 설명해주는한 전시물이다. 세번째 전시물의 사진들을 보면, 당시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진 감시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시탑 소갯글 감시탑을 설명해주는한 전시물이다. 세번째 전시물의 사진들을 보면, 당시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진 감시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최서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본다면, 현재 다시 조성된 숲들은 장벽건축 때는 모두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으로 동독주민을 통제하려고 했던 공산주의 정권의 계획은 주민들의 민심이반뿐만 아니라 커다란 환경파괴로도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정치 엘리트가 시민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 권력집착에만 힘쓴다면, 얼마나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이 감시탑을 현재 허물지 않고, 미래 자손들에게 다시금 이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남겨둔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면서 현재 선군정치를 필두로 진행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과 우리나라에서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진행된 4대강사업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는데, 이 두 가지의 사안이 매우 다르긴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두 가지 모두 동독의 장벽건축과 비슷하게 권력유지를 위해 진행되는 것 같아 기분도 매우 씁쓸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한도 시민들과 자연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막대한 사회적 그리고 생태적인 비용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이 감시탑의 교훈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장벽길을 자연에 맞게 복원하는데 무려 20여 년이 걸렸고,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베를린장벽길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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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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