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에서의 식민지 전시회, 오른쪽은 라큐즈씨'
라오스엽서사
일단 사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은 대략 읽었다고 생각하고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뒷면을 돌려보았다. 프랑스어로 '라오스 엽서(CARTERIE DU LAOS)' 사社의 연락처들과 라큐즈(RAQUEZ)라는 사람의 수집품임이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엽서 하단의 사진 설명, 'Exposition coloniale de Marseille ā droite Mr RAQUEZ'였다. 어렵게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 해석해 보니, '마르세유에서의 식민지 전시회, 오른쪽은 라큐즈씨'.
가슴이 철렁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박람회(지금으로 치면 엑스포다)가 들불처럼 유행하던 때, 마르세유에서 열린 프랑스 식민지 전시회에 라오스 풍물들이 심지어는 라오스 사람들이 전시되었던 거다! 마치 동물원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시하고, 샴쌍둥이를 만져보게 하고, 난장이에게 곡예를 시키고 돈을 받았던 그런 박람회들 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뒤이어 스며든 상상 또는 내 새삼스런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이 사진의 진짜 목적은 선의로라도 라오스 사람들을 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라오스가 아니라 라큐즈(RAQUEZ)를 그가 하는 라오스 식민지 경영사업의 성과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거.
식민지 라오스를 기념하다? 그래서 당연히 라큐즈(RAQUEZ)사진의 배경이, 라큐즈(RAQUEZ)가 하는 일의 증명에 불과한 처지의 라오스 사람들 표정이 또한 나를 아주 불편하게 했다. 지금의 내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라오스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 이 사진 속 라오스 사람들은, 그 옛날 비단 옷에 턱시도, 군인 제복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풍겨 나와야할 여유로움이나 당당함은 찾아볼 길 없이 오직 경직되고 부자연스런 표정으로만 나를 응시하고 있다.
파비양(왼쪽 어깨에서 허리까지 두르는 장식 천. 격식을 갖추고 전통 양식으로 성장을 마무리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을 두른 두 명의 여자는 허리에 손을 짚고 섰지만 우아하기보다 한 명은 뭔가 주저하는 듯, 다른 한 명은 무엇에 버텨선 듯 호전적으로까지 보인다. 반면 라큐즈(RAQUEZ)로 추정되는 사람은 같이 허리에 손을 짚고 섰는데 라오스 사람들 모두를 흐뭇하게 내려다보면서 이들을 지휘 감독하고 있는 자연스런 자세다. 다행히(?) 나를 바라보지 않고 비스듬히 몸을 튼 스님 한 분이 그나마 여느 라오스 사람과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 스님마저 맨발이어야 할 율법 대신에 서양식 구두임이 분명한 신발을 신고 있어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라오스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 있다. 면적은 한반도 크기의 1.1배. 지형도 비슷해 주로 호치민 루트가 있는 북동쪽이 높고 메콩이 있는 남서쪽이 낮다. 물론 남부의 한가운데 커피로 유명한 빡썽 지역은 1000미터에 이르는 넓은 고원이기도 하다. 2005년 센서스를 통해 현재 추정되는 인구는 대략 700만 명 정도. 2007년 라오스정부 공식 통계에 의하면 47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크게 분류해도 전체 인구의 50%가 되지 않는 라오족이 라오스의 지배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것이 민족 구분의 기본일 터인데 라오족의 종교인 불교가 라오스의 95%이상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확실히 불교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는 몽Hmong 족의 여러 분파만을 합쳐도 20% 가까이 된다.) 또 이런 외부의 기준에 의한 분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매긴 소득 기준으로 라오스는 세계 최저개발국가군(LLDGs)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은 나처럼 사업으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생활 습관으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내가 개괄적으로 이해한 라오스의 근대 역사는, 1940년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후기식민지지배를 꾀하는 프랑스, 그리고 이를 계승한 미국과의 베트남의 전쟁에 맞물려 또 새로이 독립전쟁을 치르고 1975년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 수립된 나라이다. 우리만큼이나 숨 가쁘게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전근대사회에서 근대로, 사회주의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의 변화를 맞고 또 그 변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자본주의 이웃 타이는 물론 정치적 맹방 베트남에 비해서도 그 정도는 느리고 미미하다. 상징적으로 개발원조 규모만 보더라도 캄보디아에, 심지어 미얀마(버마)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오늘의 라오스를 보는 나의 시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