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누러 나왔다가... '황홀함'을 알았습니다

[신선생의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⑥] 고라타벨라에서 툴로샤브로까지

등록 2013.04.09 09:57수정 2013.06.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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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타벨라는 투숙객이 별로 없는 곳이라 숙소가 많이 허술하였습니다. 객실은 언제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침대 시트가 깔려 있습니다. 아귀가 맞지 않는 창문은 닫혀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나무로 만든 바닥은 한 발짝 움직이면 건물 전체를 요란하게 울리며 화장실은 건물을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계곡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 투숙객이 저 혼자라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입니다.

취침 전 볼일을 해결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책을 읽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건물 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겨우 잠든 새벽 소변을 보고 싶었습니다. 몇 번을 참다가 완전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온몸이 감전된 느낌입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순간 볼일도 잊고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똑딱이 카메라로 별을 담기는 무리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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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화려한 랑탕의 밤 하늘 ⓒ 신한범


추위도 요의도 잊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황홀하다는 느낌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해발 2970m의 히말라야 계곡에서 혼자 바라보는 하늘은 순간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빛은 시속 30만km로 달린다고 합니다. 오늘 밤 저와 만나는 별들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을 달려 온 것입니다. 별빛이 오랜 시간 소멸되지 않고 나에게 온 것처럼 저도 누군가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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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아름다운 랑탕 계곡 ⓒ 신한범


오늘 해발 2210m의 툴로샤브로까지 갈 것입니다. 계곡 좌측 능 선위에 오늘 가야 할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히말라야에서, 보인다고 해서 거리가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편안합니다. 더구나 완만한 내리막길과 전나무와 랄리구라스 우거진 원시림 지대를 걷는 것이기에 즐거운 트레킹이 될 것 같습니다.

라마호텔에 도착하기 전, 처음으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났습니다. 카트만두에서 온 선교사님 가족입니다. 어젯밤 라마호텔에서 자고 오늘 랑탕 빌리지까지 갈 것이라고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마음은 씁쓸합니다. 네팔 거주 교민은 5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교민 중 절반 이상이 선교사 가족이라고 합니다. 힌두교 국가인 네팔에서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히말라야 롯지 주인의 인심


라마호텔에서 차를 주문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인연을 맺은 11살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주인장이 살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사진을 찍어 인화해달라고 합니다. 제가 농담으로 그러면 찻값이 무료냐고 묻자 얼굴색이 바뀝니다.

이곳에서 밥을 빌어먹고 사는 어린 소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롯지 주인은 히말라야를 닮지 않고 저잣거리의 상인 모습을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소녀에게 다시 사진을 찍어 인화해주고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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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대학산악연맹 학생들 대구지역에서 온 대학 산악 연맬 학생들 모습 ⓒ 신한범


뱀부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말이 들려옵니다. 10여 명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같은 등산복을 입고 점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지역대학산악연맹 학생들이며 동계훈련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대화 도중 저와 같이 경남 거창이 고향인 여학생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캉진곰파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하고 5000m급 피크를 등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마련하고 산을 오른다는 학생들의 젊음과 패기가 부럽습니다. 

사진 한 장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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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샤브르벤시와 툴로샤브로 갈림길 ⓒ 신한범


뱀부를 지나면 샤브르벤시와 툴로샤브루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바위에 작은 글씨로 표지판이 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저는 왼쪽 능선을 올라야 합니다. 오르막은 언제나 힘이 듭니다. 천천히 걷고 자주 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에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산을 오릅니다.

한 시간을 걷자 능선 위에 소박한 찻집이 나옵니다. 오두막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허술한 찻집에서 차양을 치고 차와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기념품은 살 만할 것이 없어 목이 마르지 않지만 차를 주문하였습니다. 트레커가 많지 않은 겨울철,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장의 마음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찌아(차)를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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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모습 허술한 찻집 모습 ⓒ 신한범


주인 아이가 혼자 놀고 있습니다. 마을도 없는 외딴 찻집에서 자연을 친구 삼아 놀고 있는 아이가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아이의 사진을 찍어 인화해주니 어머니가 찻값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욕심 많은 라마호텔의 주인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가족사진까지 찍어서 인화해주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기 힘든 히말라야 골짜기에서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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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모습 찻집 아이의 모습 ⓒ 신한범


툴로샤브루가 눈앞에 있지만 계곡을 건너야 하기에 다시 내려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인데 계곡 아래에 있는 현수교를 건너 다시 능선을 오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갑니다. 벌써 오후 4시가 되었으니 8시간은 걸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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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현수교 툴로샤브로 가는 마지막 현수교 모습 ⓒ 신한범


'핫 샤워'의 매력

툴로샤브루는 마을 전체가 능선 위에 있어 시야가 무척 넓습니다. 아름다운 가네쉬 히말라야 연봉을 정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숙소의 창을 통해 보이는 모든 곳이 전망대입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트레커들은 걷고 또 걷는 것이겠지요. 오늘 숙소는 실내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핫 샤워'도 가능하구요. 뜻밖의 행운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합니다.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속옷과 겉옷 모두를 갈아입으니 행복은 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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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샤워 24시간 핫샤워의 의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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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히말라야 툴로샤브로에서 본 가네쉬 히말라야 정경 ⓒ 신한범


배낭여행은 인생과 비슷합니다. 정말 공을 들여 배낭을 꾸리지만 꼭 필요한 것은 가져 오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은 가져와 짐만 됩니다.

이번 트레킹에는 스킨과 로션을 가져 오지 않아 피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등산용 양말을 두 켤레밖에 가져 오지 않아 트레킹용과 저녁에 사용하는 양말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차가지겠지요. 불필요한 것에 너무 많은 인생을 허비하면서도 필요한 것들은 그냥 지나치는 어리석음을 매번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녁 식사 후 조금 풀린 마음으로 우리 소주와 비슷한 락시를 주문합니다. 마을 입구에서 락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에 신뢰가 갑니다. 포터인 인드라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다 보니 취기가 오릅니다.

인드라는 네팔 동부의 일람 출신으로,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타르에 갔지만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카트만두 교외 지역에 살면서 가이드가 되기 위해 영어 공부와 우리말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터로 일하면서 최근 고향 마을에 조그마한 밭을 샀다고 자랑합니다. 그의 소박한 꿈이 실현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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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인드라' 착한 포터 인드라의 모습 ⓒ 신한범


#네팔 #히말라야 #랑탕 #툴로샤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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