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역사의아침
박제가는 조선 사회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서얼' 출신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하지만 박제가는 서얼이라는 신분 차별에 한탄하고, 비난하는 것에 머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사회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이를 변혁시키고자 했습니다.
박제가는 이미 일찍부터 조선사회의 본질을 찔렀다. 조선의 끔찍한 형식주의, 갑갑한 사고, 위선에 가까운 양반들의 허세, 치졸한 신분차별. 그는 현상들을 비판하기 이전에 현상의 근원을 찾았다. 박제가가 발견한 비밀은 조선의 폐쇄주의였다. 조선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 것,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 최고라고 우긴다. 그러니 변화를 요구해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조금만 변화를 줘도 개혁 피로증을 견디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 왜 그럴까? 이는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본문에서)우리는 박제가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제가는 '서얼'이 문제 본질이 아니라 '폐쇄주의'가 본질이라고 봤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 국제중학교에 재벌가 자녀가 '사회적배려대상자'로 입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사배자 전형을 통해서라도 국제중에 들어가려고 했을까요? 바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 낙마자들를 자세히 보면 도덕성 문제 이전에 자신들만의 세상을 꿈꾸는 자들이었습니다. '고위공직자-전관예우-고위공직자' 순환고리를 통해 견고한 주류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영원한 주류를 꿈꿨던 것입니다. 낙마를 해도 분명 비주류보다는 경제적 삶은 더 윤택합니다.
자기 문제만 집착 말고, 사회 전체 환골탈퇴 추구해야문제는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면서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법과 질서'라는 이름을 단죄합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주류는 "빨갱이"이라는 주홍글씨로 비주류를 옭아매고, 어떤 비주류는 주홍글씨 새기는 일에 동참합니다. 비주류는 이런 주류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비판만 있을 뿐 사회 전체 문제를 제대로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비주류 속에서 주류에 만족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겪는 사람, 그것이 한이 된 사람은 오히려 그 한에 매몰되어 서얼제도 철폐와 피해보상 같은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제가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조선의 차별과 한심함과 답답함이 조선 사람들의 심성이나 한두 가지 잘못된 법이 원인이 아니라 조선의 폐쇄적이고, 단조롭고, 역동성이 결여된 사회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았고, 사회 전체의 환골탈퇴를 추구했다"(본문에서)읽기 거북한 <북학의>, 하지만 조선 민낯을 알려주다그럼 박제가는 조선의 환골탈퇴를 어떻게 추구했을까요? 박제가 지은 <북하의>를 보면 "청나라를 멸시하지 말고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문화와 전통를 적나라하게 비판합니다.
"우리나라 배는 엉성하고 낮다. 적재한 화물이 썩으니 중국의 선박제조술을 배워야 한다(<외편>,<수레>)"중국은 곡식을 균일하게 심는다. 우리는 콩이나 보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뿌리므로 밀집해서 밭의 3분의 1를 낭비하고 있다."(<외편>, <밭>)"노농은 믿을 수 없다, 이들은 유식하지 못하고, 가장 어리석은 자질을 지니고 초야에서 사는 사람이다."(<외편>, <노농>)-《북학의》심지어 "중국어는 문자의 근본이다.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 말을 쓰자. 그래야 우리도 오랑캐라(동이)는 명칭을 면할 수 있다. 동쪽 수천 리 땅이 스스로 주, 한, 당,송의 풍속으로 될 것이니 어찌 크게 쾌한 일이 아닌가"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입니다.
하지만 박제가가 바라본 조선사회 폐쇄성은 심각했습니다. 우리말까지 버려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난했고, 닫혀 있었습니다. <북학의>는 자존심 강한 우리가 읽기 불편하지만 조선 사회 민낯을 제대로 만나게 해줍니다. 조선사회 폐쇄성을 통렬히 비판한 박제가는 "소비는 미덕"이라고 설파합니다.
"소비하라, 소비는 미덕이다"조선은 "검약과 극빈이 인간을 춤추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제가는 이를 반박합니다.
"중국은 사실 사치로 망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검소한 데도 쇠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이 아니다.""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비단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다. 여공이 없으므로 그릇이 삐뚤어지든지 말든 개의치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서 나라에 장인과 철공소가 없고, 기술도 없어졌다.(중략) 그러니 사농공상 모두가 가난해져서 서로 도울 길이 없다."《북학의》,<내편>,<안장>
이 우물 비유는 박제가의 글 중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입니다. 박제가는 이 비유로 "소비가 미덕이며,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면서 "많은 사람이 사회의 악이며, 망국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치품 생산도 옹호합"니다. 이런 주장은 오늘 우리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입니다. 그러니 18세기 말 조선 사회가 박제가 주장을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박제가 논리가 가슴을 후벼 파기 보다는, 거부감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240~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개방을 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닙니다. 박제가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입니다. 박제가는 조선사회 폐쇄성을 깨기 위해 울부짖었지만 자신 주변조차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박제가를 고통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만약 조선이 박제가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그가 죽은지(1805년) 100년이 지난 1905년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주의에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그리고 5년 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박제가의 외침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지은이는 책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240-50년을 앞서 살았던 박제가의 외침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단 몇십 년 만에 완전한 산업사회와 무역국가로 변신하고도 여전히 그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에 비판적이거나 그 주변사람들과 똑같이 편협하고 무지한 국수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제가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박제가의 진정한 불행은 그의 외침이 이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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