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케이블카 반대 시위를 벌이던 함태식 선생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그는 1989년까지 노고단 산장에 머물렀는데, 그가 산장지기로 있던 시절 지리산은 옛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힘들때면 찾아와 기운을 회복해 가던 안식처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다. 인권변호사 이돈명, 백낙청 교수, 김정남 전 청와대교육문화수석, 통일운동가 안재구 교수, 소설가 이호철, 송건호 전 한겨레 사장, 민족경제학자 박현채 교수 등 1970~80년대 쟁쟁한 반체제 인사들이 함태식 선생과 깊은 교분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군사독재정권을 싫어했다면서 2002년 발간된 자서전 <그 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를 통해 이렇게 회고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이 무턱대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일제 시대와 너무 닮아있었고, 오직 한 가지 구호 아래 다른 모든 의견을 묵살하는 획일성이 소름끼치도록 가증스러웠기 때문이다."그는 "일제 시대였던 중학교 4학년 때 칠판에 애국가를 적어놓고 후배들에게 가르칠 만큼 강단 있게 살아왔던 것이, 반독재 투쟁을 하는 이들과 친해지게 된 바탕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70년대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던 박정희와 공화당 정권에 분노해 공화당이 망하거나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금연하겠고 결심해 결국 담배를 끊게 됐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일화 중 하나다.
함태식 선생은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신축된 지리산노고단 산장 관리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맡기로 하면서 16년을 지켜온 노고단에서 밀려나 피아골산장으로 쫓기듯 내려왔다. 이후 20년 넘게 피아골을 지켜왔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인 2009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시금 지리산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기존 민주정부 시절 임명됐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강제적으로 쫓겨나고 이명박 정권이 임명한 새로운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함태식 선생에게 산장에서의 퇴거를 요청한 것이다.
지리산의 전설로 통하는 산중 원로에 대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무례함에 산악인들이 분노했고, 당시 <오마이뉴스> 보도(관련 기사 :
"지리산에서 죽고 싶은데 나가라네... 산에 케이블카 설치하는 건 정신 나간 짓")를 통해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여론에 밀려 피아골 관리사무소 한쪽에 숙소를 마련해 2011년까지 지리산의 원로 산장지기로 예우했다.
함태식 선생은 피아골 산장을 내려온 이후에도 눈치보지 않고 지리산 자연환경 훼손을 막기위한 환경운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2009년에는 팔순의 나이에 천왕봉에 올라 케이블카 반대 시위를 벌였고, 2012년에도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함태식 선생과 환경 단체들이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지리산 케이블카는 지난해 사실상 무산됐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인 지난 3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연환경 보전은 평생 내 삶 자체이기도 했다"며 "죽는 날까지 환경 파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하고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 4대강에 대해서도 해서는 안 될 정신나간 짓이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