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반이나 고생한 끝에 만난 돌부처

[월출산의 옛님 찾기 1박2일] ⑥ 월곡리 마애불과 마애불두

등록 2013.04.17 10:48수정 2013.04.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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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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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저수지 너머로 영암군청 소재지가 보인다. ⓒ 이상기


도갑사를 벗어난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월곡리로 향한다. 구림리에서 월곡리로 이어지는 옛길에는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함께 한 이순규 원장이 이곳에 벚꽃이 피면 장관이라고 말한다. 차는 81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틀어 월곡리 녹암마을 앞에 이른다. 녹암마을에서 골짜기를 따라 가면 대동저수지가 있고, 그 위로 상수원 보호구역이 펼쳐진다. 이 길이 월곡리 마애불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우리는 사리봉과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그 골짜기를 타려고 한다.


마을에서 보니 구정봉과 향로봉에서 미왕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밭둑을 따라 가다 대동저수지를 우회해 능선으로 접어든다. 초입에 길이 불분명하다. 조금 올라가자 대동저수지가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앞으로 보이는 구정봉과 향로봉 능선이 톱날처럼 날카롭다. 조금 더 오르자 서쪽으로 영산강과 북쪽으로 나주시 반남면 쪽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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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으로 농경지가 된 상대포 옛땅과 영산강 하구가 보인다. ⓒ 이상기


한때는 이곳 군서면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상대포(上台浦)에서 왕인박사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군서면은 이제 간척 사업을 통해 너른 들이 되었다. 그리고 사리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바위들이 온갖 군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리도 보이고 발도 보이고 원숭이도 보인다. 금강산에 만물상이 있다면 이곳 월출산에는 천물상(千物像)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구정봉 너머 천황봉이 우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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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 가는 길의 암릉미 ⓒ 이상기


해발 400m가 조금 못 되는 사리봉을 넘자 또 다시 408m 봉이 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400~500m 대의 봉우리 서너 개를 넘어야 노적봉에 도달할 수 있다. 이곳 역시 암릉 구간으로 경치가 정말 멋지다. 그런데 바위를 넘기도 하고 우회하기도 하면서 가자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부 회원은 암릉산행에 익숙치 않아 불안해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이홍식 대장이 앞에서 끌고 송광사 학예연구사인 김일동 대원이 마지막에서 미는 형식으로 산행이 이루어진다.

506m 봉우리를 넘어 536m 노적봉으로 가는 길 중간쯤 등산용 스틱이 꽂혀 있고 왼쪽으로 내려가라는 표시가 있다. 마애여래좌상이 노적봉 아래 동쪽 사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노적봉은 월출산 주능선의 북서쪽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노적봉은 해발 703m의 구정봉과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구정봉 아래 마애여래좌상과 노적봉 아래 마애여래좌상을 형제불 또는 자매불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길을 따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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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굴의 청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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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굴의 기와 ⓒ 이상기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수월하지만 더 조심을 해야 한다. 미끄러지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내려가면서 보니 향로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앞에 있고, 그 너머로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809m)이 우뚝하다. 한 5분쯤 내려갔을까? 스님이 수도하던 굴이 나온다. 이곳은 샘물이 있고, 살림에 필요한 가재도구도 갖춰져 있다. 길이 9m, 너비 2m의 수행굴로 겨울을 제외하고는 수도하기에 괜찮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주변에는 청자와 기와편이 한쪽에 모여 있다. 청자의 색이 아주 좋다.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을 전공한 정태욱 선생이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고려시대 청자라고 말한다. 최인선 교수도 옛날에 왔을 때는 보지 못한 귀한 유물이라면서 연구를 위해 몇 점 수습을 한다. 굴 옆에는 화두 비슷한 한문 문구가 나무막대기에 새겨져 있다. 최근까지 이곳에서 수도승이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월곡리 노적봉 아래 마애여래좌상의 예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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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 아래 마애여래좌상 ⓒ 이상기


수도굴에서 아래로 50m쯤 내려가면 서향을 하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이 나타난다. 30m 높이의 바위에 높이 5.9m, 무릎 너비 3.8m로 새긴 마애불이다. 상호와 신체 표현으로 볼 때 고려 중기 이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민머리 형태의 소발(素髮), 낮은 육계(肉髻), 각이 진 얼굴, 형식화된 눈, 코, 귀, 입, 경직된 몸체 등을 통해서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도식화 또는 형식화된 지방양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자료에 따르면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인데 왼쪽 어깨에서 한번 겹쳐서 어깨너머로 넘어갔다. 오른쪽 어깨는 노출되었고 옷 주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와 발은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광배는 배 모양으로 불꽃무늬를 새겼으며, 낮은 좌대에도 연꽃무늬를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마애불은 경직된 얼굴 표정과 형식화된 몸체라는 점에서 예술성과 종교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국보나 보물이 못되고 전남 유형문화재(제149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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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봉 아래 마애여래좌상 ⓒ 문화재청


이에 비해 건너편 구정봉 아래 마애여래좌상은 종교성과 예술성이 이곳의 마애여래좌상보다 훨씬 뛰어나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얼굴 표정은 근엄하고 박력이 있어 보인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 있는 신체 표현에서 역동성과 예술성이 잘 나타난다.

이번 답사를 함께 한 임병기 선생은 이러한 부처님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산속에 홀로 있는 부처님의 외로움, 한(恨), 기다림 등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1000년 세월 좌정에서 떨쳐 일어나 중생들을 찾아 나서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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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좌상 ⓒ 이상기


"길이 험하여 찾지 않는 중생들을 기다리지 마시고, 이제는 일어서서 바위 속에서 성큼성큼 사바세계로 나서십시오. 밤이면 영암시장, 목포 바닷가 구경도 하십시오. 그러다 지치면 무위사 백의관음을 부르고, 도갑사 석불좌상도 초청하여 옛이야기도 즐기십시오."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동안 너무 형식에 얽매이고, 종교에 얽매이고, 예술에 얽매여 살아왔다. 어째서 우리는 부처님을 인간적으로 보고, 우리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는 못 한 건가? 임병기 선생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인용한 신경림 시인의 '주천강가 마애불'을 보니, 그 부처님은 벌써 바위에서 빠져 나와 강과 산 그리고 논과 밭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는 숨 헐떡이며 바위로 서둘러 들어가 앉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마애여래좌상 옆 마애불두에 표현된 해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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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리 마애불두 ⓒ 이상기


그런데 이곳 부처님은 아직도 근엄한 표정 그대로다. 두 시간 반이나 고생하여 찾아온 우리에게 옅은 미소로 화답하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 미소를 우리는 마애여래좌상 옆으로 20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애불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지나치면 영원히 묻혀버릴 그 부처님, 내가 월곡리 마애불두라고 그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내게로 와 부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반기며 반쯤 감은 눈에 엷은 미소로 화답한다.

마애불두는 부처님의 얼굴만 양각되어 있고, 이마와 목 그리고 어깨 일부가 선으로 처리되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귀는 왼쪽만 표현했다.  높이는 2m쯤 된다. 눈썹은 양각으로 진하게 표현했고, 눈은 선으로 약하게 표현해 뜬 듯 감은 듯하다. 눈이 코 중간 부분까지 내려온 것이 특이하다. 코는 비교적 크게 양각했는데, 오똑하지 않고 납작한 편이다. 아래위 입술을 다물었는데, 약간의 미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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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두 오른쪽 아래 20m 떨어진 곳에 마애여래좌상이 보인다. ⓒ 이상기


전체적으로 눈썹과 코 그리고 입술이 가장 인상적이다. 불두만 놓고 볼 때는 미완성이나 그 자체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여백의 미가 된다. 벽면에 조각을 할 수 공간이 많이 남아 있어 부처님을 더 완성도 높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중간에 작업을 포기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이 마하 가섭(迦葉)과 나눈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 부처 앞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공부를 하고 토론을 한다. 최인선 교수는 마애불좌상이 담양 궁산리 마애불, 광주 극락암 마애불과 친연성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한백겸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영암조(靈岩條)를 바탕으로 이곳에 몽령암(夢靈菴)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 언급된 마애불을 보고, 책을 확인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모두 최 교수의 발표를 믿는 분위기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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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운데 구정봉 아래 마애불좌상의 모습이 확인된다. ⓒ 이상기


하산길은 능선이 아닌 계곡을 택할 것이다. 영암상수지로 내려가는 이 골짜기를 사람들은 서당골 또는 큰골이라 부른다. 이 길은 올라갈 때 정말 찾기가 어렵지만 내려갈 때는 계곡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번 답사대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정정희 선생이 두어 번 넘어졌다.

1시간쯤 내려와서야 우리는 영암 상수지에 이르렀고, 여기서 다시 30분 더 내려가서 처음 출발지인 녹암 마을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마애불을 찾아 올라가는 데 2시간 반, 내려오는데 1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는 개나리가 한창이고, 밭에는 전지를 끝낸 대봉시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대봉시는 큰 감으로 이곳 영암의 중요 소득원이라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니 매화꽃도 한창이다. 계절은 봄을 지나고 있다. 
#노적봉 #마애여래좌상 #마애불 #수도굴 #구정봉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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