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폭의 거대한 수묵화, 월출산 벚꽃 백리길

꽃비 내리는 벚꽃 백리길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우다

등록 2013.04.19 11:56수정 2013.04.1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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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전방 연천에 살다보니 봄이 와도 벚꽃구경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남도에서 시시각각으로 꽃소식이 전해져도 이곳 연천은 소식이 감감하다. 지난 4월 14일 조상님 시제를 모시러 고향에 갔다가, 조상님 덕분에 월출산 자락 영암 벚꽃 백리길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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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월출산 유채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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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터널을 이루고 있는 영암 벚꽃 백리길 ⓒ 최오균


원래는 4월 5일을 전후에서 만개한다는 벚꽃이 변덕스런 날씨 탓에 아직 지지않고 터널을 이루며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는 월출산 자락에는 때마침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기암괴석 위에 한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목포에서 영산강 하구원을 지나 독천에 이르니 이윽고 벚꽃터널이 시작되었다. 독천은 세발낙지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독천에서 시작한 벚꽃 길은 영암읍내까지 무려 100여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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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영암 벚꽃 백리 길 ⓒ 최오균


섬진강 벚꽃 길은 강을 따라 유장하게 펼쳐져 있다면, 이곳 영암 벚꽃 길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월출산 자락을 따라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독천에서부터 영암읍내까지 4차선 도로를 확장을 하였지만 다행히 구 벚꽃 길은 그대로 남겨두어 옛 정취를 그대로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영암 벚꽃 터널은 왕인박사 유적지가 있는 구림마을에 다다르면 그 절정을 이룬다. 벚꽃 터널은 구림마을에서 영암읍내로, 도갑사로 갈라진다. 특히 도갑사로 이어지는 구 길은 오래된 아름드리 벚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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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문화축제도 벚꽃이 만개한 시기에 열린다 ⓒ 최오균


4월 5일부터 10일 사이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왕인문화축제'도 열린다. 왕인박사는 1600년 전 백제시대에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으로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 우치노와의 스승이 되어 일본 학문의 시조가 된 위대한 선각자이다.

왕인문화축제는 왕인박사의 업적을 조명하고,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에 월출산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축제가 끝나고 만개한 벚꽃이 꽃비가 되어 휘날리고 있었다.


꽃비 내리는 벚꽃 백리길엔, 유채꽃도 만발

바람이 불자 벚꽃 터널에는 하얀 꽃비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꽃비 내리는 호젓한 길을 느릿느릿 걷는 느낌이 오히려 좋았다. 청 보리밭 사이로 휘휘 늘어져 내린 하얀 벚꽃이 푸른 청 보리밭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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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비가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벚꽃 백리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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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그대로 꽃비가 되어 휘날리는 영암 벚꽃 백리길 ⓒ 최오균


벚꽃은 꽃비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데, 노란 유채꽃이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유채꽃과 벚꽃은 색의 조화를 이루며 그대로 멋진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도갑사로 이어지는 길에 걸린 석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유채꽃 위에 걸린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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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기암괴석 위로 뻗어 올라가는 노란 유채꽃의 유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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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 최오균


영험한 바위들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는 영암 월출산! 영산강이 휘돌아 치는 벌판에  갑자기 돌출된 월출산(809m)은 산 전체가 수석전시장이다. 신라 말 풍수지리학의 대가 도선국사의 탄생지이기도 한 월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꽃비를 맞으며 천천히 벚꽃터널을 걸어가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지나갔다. 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작은 배낭을 등에 멘 모습이 여유롭게만 보였다. 자전거는 적어도 저런 길에서 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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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벚꽃터널을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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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걸어가는 할머님들로부터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 최오균


고요하고 호젓한 꽃길을 걷는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지팡이 짚고 할머니 두 분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벚꽃과 개나리가 피어 있는 시골길을 슬로로비디오처럼 느리게 걸어가는 할머니들을 바라보노라니 그만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나는 한 동안 넋을 잃고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할머니들은 길모퉁이를 돌아가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아니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그대로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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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 사이로 휘어져 내린 벚꽃의 아름다움 ⓒ 최오균


바쁘게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 느림의 미학은 글과 학문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저 할머님들이 걸어가는 평화로운 모습에서 나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꽃비 내리는 월출산 #영암 벚꽃 백리길 #월출산 유채꽃 #왕인문화축제 #도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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