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는 압승했는데, 마두로는 신승한 진짜 이유

[주장] 4월 14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거 평가

등록 2013.04.21 21:55수정 2013.04.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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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로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거에서 집권당 후보인 니콜라스 마두로 임시 대통령이 야권 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를 상대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마두로는 50.78%의 지지를 얻어 48.95%를 얻은 카프릴레스를 겨우 1.83%p 차이로 앞서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구체적인 득표수를 보면 니콜라스 마두로는 총 757만5704표를 받아 730만2648표를 얻은 카프릴레스보다 23만4935표를 더 득표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0%p 이상의 차이로 마두로의 승리가 예측됐던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2년 10월에 치러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의 득표율을 보면 차베스가 55.07%, 카프릴레스가 44.31%로 후보 간 격차가 11%p에 달했다. 득표수로 보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819만1132표를 얻어 659만1304표를 얻은 엔리케 카프릴레스 야권 통합후보보다 159만9828표가 앞섰다. 그런데 6개월 뒤 치러진 대선 재선거에서 마두로와 카프릴레스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계산해보면 2013년에 마두로가 얻은 득표수는 2012년에 차베스가 얻은 득표수보다 정확히 61만5428표가 줄어들었다. 반면에 2013년에 카프릴레스가 얻은 득표수는 2012년에 자신이 얻은 득표수보다 71만1344표가 늘었다. 요컨대 대략적으로 60~70만표 정도가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왜 이런 표이동이 일어난 것일까?

집권당에서 야당으로의 표이동, 왜?

호주사회주의자동맹(Australian Socialist Alliance)의 회원이었고 호주의 사회주의신문인 <그린 레프트 위클리(Green Left Weekly)>에서 활동했던 타마라 피어슨Tamara Pearson은 2007년부터 베네수엘라의 메리다 주에서 살며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녀가 4월 15일 'venezuelanalysis.com'에 기고한 '베네수엘라 대선결과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the Venezuelan Presidential Election Outcome'라는 제목의 글은 박빙의 대선결과에 대한 자신의 몇 가지 의견을 담고 있다.

그녀는 차베스 서거 후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몰린 수백만 명의 인파를 보며 승리를 확신했으며, 2012년 10월 대선에서도 승리했고 같은 해 12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이런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거를 일주일 앞둔 때부터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으며 마두로 측이 조금씩 지쳐가는 반면 카프릴레스 측은 자신감이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선거 결과가 박빙으로 나온 것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난 2월에 베네수엘라는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화를 달러 당 4.30볼리바르에서 6.30볼리바르로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수입상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상승을 야기했다. 국가의 경제정책상 필요한 조치일 수도 있지만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왜 그런 조치가 필요한지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또한 생필품 부족현상이 있어서 예를 들어 지난 4~5개월 간 상점에서 치약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정부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필요한 조치(예를 들어 매점매석하고 있는 자를 적발해서 물품을 재분배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정전 사태도 여전했다고 지적한다. 14년간 차베스 정부가 이룩한 수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 높은 범죄율, 부패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남아있다.

그런데 마두로 측은 단순히 차베스의 이미지만을 차용하려는 선거전술로 일관했으며, 오히려 카프릴레스는 차베스가 이룩한 성과를 인정하고 복지정책들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며 차베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물론 카프릴레스의 정치적 성향과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세력 및 지형을 고려했을 때 그가 당선된다고 해서 이런 주장을 지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어쨌든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이런 제스처를 꾸준히 취했다. 게다가 보수언론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미디어 상황은 카프릴레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필자는 그녀의 이런 지적들을 읽으며 한편으로 수긍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사항들이 박빙의 결과가 나오게 된 본질적 이유일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면 차베스가 서거하기 전에도 역시 선거를 치를 때마다 항상 상황이 좋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2002년 4월 11일에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에 반발하는 보수군부의 쿠데타로 살해당할 뻔 했으며, 2002년 11월에는 석유부문에서 자본가와 어용노조가 손잡고 총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2004년 8월에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소환투표를 당하기도 했다.

차베스 정부가 이룩한 성과는 대단했지만 반면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여전히 적지 않았고 매점매석 등에 의한 물자부족 현상도 잦았다. 그런 이유로 타마라 피어슨이 앞서 언급했던 이유들은 필자에게 박빙의 선거결과가 나온 본질적인 이유로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이유들이 본질적인 문제라면 진작 선거가 박빙으로 치러져야 했을 것이다.

2012년 10월의 선거와 2013년 4월의 선거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사실 명백하다. 바로 차베스의 부재이다. 타마라 피어슨도 자신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3월 18일부터 23일 사이에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기관 GISXXI의 조사에 따르면 차베스 지지자 중 20%는 차베스가 없으면 차베스주의도 없다고 응답했다.

차베스 지지자의 80%는 차베스라는 사람이 추구했던 이상과 정책을 이어받아 계속 혁명을 지속해나갈 의사가 있으나, 20%는 차베스주의를 단순히 차베스라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차베스 지지자의 20%를 차지하는 이 사람들은 차베스의 서거 후 마두로를 지지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차베스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부재가 바로 60~70만 표가 마두로에서 카프릴레스로 옮겨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번 대통령 재선거 결과를 보며 필자는 2009년 2월에 헌법을 개정한 베네수엘라의 국민투표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는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하는 헌법 조항을 개정해서 연임제한을 없애는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54%, 반대 46%로 통과됐다.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당시 국내외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차베스의 이런 조치가 권력욕에서 나오는 독재가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시 베네수엘라의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이런 논란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혁명이 계속 전진하기 위해서는 연임제한을 풀어서 차베스가 계속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9년의 헌법 개정을 통해 차베스는 2012년에도 대통령 선거에서 나와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13년 3월에 차베스가 서거한 이후 마두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고 거의 50대 50에 가까운 박빙의 선거결과가 나왔다. 2009년 2월의 헌법 개정에 대한 일부의 비판이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한가한 소리였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영국, 호주, 등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대통령이나 총리의 연임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차베스보다 집권기간이 길다. 차베스는 국민의 투표를 통해 연임을 한 것이지 박정희처럼 유신체제를 만든 것도 아니다.

재검표 요구는 받아들였지만, 차베스 부재 해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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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선 전면 재검표 실시를 보도하는 영국 BBC ⓒ BBC


혁명 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차베스라는 지도자가 갖는 중요성은 60~70만 표의 이탈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벌써부터 베네수엘라 야권은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재검표를 요구했고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물론 재검표를 통해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박빙의 선거결과에 힘을 얻은 베네수엘라의 보수세력들은 앞으로 공세를 강화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미국 역시 이전보다 한층 더 교묘한 방식으로 베네수엘라 사회에 개입해 들어갈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은 차베스라는 지도자의 부재 이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것은 차베스의 서거가 남긴 지도력의 부재를 빠른 시일 안에 복원하는 일이다. 일전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차베스와의 만난 자리에서 베네수엘라의 혁명은 차베스가 없다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조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집권세력은 기존의 집권당인 제5공화국운동(MVR)을 발전적으로 해소해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을 건설하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집단적 지도력으로 혁명을 더욱 심화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직은 차베스의 부재를 감당할 수준으로 정치적 지도력이 올라오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도력의 복원과 더불어 그동안 계속해서 지적됐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관료주의, 높은 범죄율, 부패, 주택부족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가시적인 해결책과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지도력이란 결국 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중심으로 이런 일련의 문제들을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가 지도력의 복원에도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항상 그렇듯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다.
#마두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 #카프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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