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엔 폴스바나나 오른쪽엔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는 집.
추연만
"커피농장이라고 말하지만 대규모로 커피나무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에티오피아는 토지가 정부 소유라 농민들은 경작권을 갖는 것뿐인데 커피나무 몇십 그루 정도를 가지면 그래도 꽤 부자인 거고, 보통은 한집에 커피나무 두세 그루를 가지고 있지요. 집집마다 마당에 커피나무 한두 그루와 폴스 바나나 나무 한두 그루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이 사람들 재산의 전부예요."커피 농장을 보고 싶다는 말에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인 제게예는 난처한 표정이다. 커피나무가 방대하게 자생하는 지역을 알고 있지만, 농장이라고 불릴 만큼 대규모로 기획 경작을 하는 곳은 마땅히 없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처럼 대규모 공장시설을 갖춘 커피농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의 실망감을 눈치를 챘는지 제게예가 커피 자생지를 보여주겠다며 "길이 험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보겠느냐"고 제안한다. 호기심 많은 외국인인 우리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남아 관광지에서 옵션으로 선택하는 정글 트레킹 정도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낭만적 상상은 무참히 깨졌다. 우리는 앞좌석 등받이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러야 했다.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튀어나온 날카로운 돌들과 깊이 갈라진 땅, 무너지는 절벽과 바퀴가 푹푹 빠지는 진흙탕. 붉은 먼지가 날리는가 하면 흙탕물과 주먹만 한 돌덩이들이 튀어 오르기도 하고 차체가 뒤집어질 것처럼 기울어지며 자동차 유리와 천장에 머리 받기를 수십 번. 사륜구동 차량으로도 10~20km의 속력을 내기 어려운, 길이 없는 정글에 길을 내며 달리기를 두 시간.
온몸의 뼈마디가 몇 번이나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것만 같은 격한 흔들림을 견디며 산 하나를 넘고, 또 다른 산비탈을 향해 어렵게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나 봤을 법한 원숭이들이 우리를 향해 '꺅꺅' 비명을 지르더니 카메라를 꺼낼 새도 없이 숲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 숲의 주인은 원숭이였던 모양이다.
운전을 하는 제게예는 낙타 무리들과 마주쳤을 때만큼 놀란 우리들에게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도 있다"며 "궁금하면 잠깐 내려서 보여줄까?"라고 이죽거린다. 공포에 떠는 문명인들을 놀리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제게예는 "얼마 전에 하이에나가 샤르벳(초가집) 안에 있던 아기를 물어가려다가 아기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얼굴을 물어 큰 상처를 입은 일도 있었다"면서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빨리 이 정글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험한 길에서 만난 아낙, 어디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