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 1-3구역 바자회 장소의 펜스. 알록달록한 그림과 문구로 가득하다.
황소연
역 앞은 어수선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출구를 나서자 곧바로 공사장이 보였다. 재개발 지역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그 틈새로 이곳저곳을 헤집은 굴착기의 흔적이 보였다. 서울 한복판 치고는 꽤 무거운 흙먼지가 불어왔다.
펜스를 따라 직진하면 농성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지난 13일 토요일, 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1-3 구역 농성장의 전기 설치 비용 마련을 위한 바자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농성 장소가 그렇듯, 이곳 역시 녹록치는 않았다. 펜스와 차도 사이 좁은 공간에 기다랗게 바자회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농성장을 기준으로 길 건너편엔 층 낮은 건물들이 차곡차곡 열을 잇고 있다. 바자회가 열리는 곳 바로 옆으로 마을버스와 택시 등의 차량이 계속 오갔다.
도보를 따라 마련된 농성장은 알록달록했다. 그림과 문구가 회색 펜스를 꾸몄다. 테이블과 옷걸이, 돗자리는 기부 물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순대, 주먹밥 등의 음식과 음료도 함께 판매했다. 피자박스 등을 재활용한 메뉴판과 피켓이 눈에 띄었다. 농성장 끝쪽에서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자회에서 만난 디에고(28), 신명선(22)씨는 이미 북아현 수요 저녁 기도회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바지와 건전기 충전기를 구입했다. 바자회 손님들은 옷과 책, 음반 등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아현 생존 대책위는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후원 플랫폼인 '소셜펀치'를 통해서도 50만원 가량의 금액을 모금 중이었다. 이날 바자회 물품 판매를 담당한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GG)' 활동가 밀사씨는 "그동안은 행사가 계속 밤에만 있었어요. 일단 오늘 바자회를 해 보고, 나중에 또 하게 되면 괜찮을 것 같아요"라며 "바자회를 계기로 주민분들을 볼 수 있게 되서 좋아요"라며 밝게 웃었다. 이어 "전기를 모으려고 하는 바자회라 의미가 커요"라며 "농성장에 오기가 아무래도 더 편해질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북아현 농성장은 가스 난로와 양초에 의지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북아현 1-3구역, 재개발의 그늘 이곳은 원래 이선형씨와 박선희씨 부부가 곱창집을 운영했던 곳이다. 이들은 임대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 재개발을 이유로 가게를 철거 당했다. 1-3구역 노숙 농성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공사 지연 손해배상 소송으로 13억 8천만 원을 청구 당하기도 했다.
"철거 당시, 고기 등 식자재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트럭에 가게의 물건들이 실려 사라졌습니다. 전자제품 콘센트는 가위로 잘려나갔고요. 후에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지만 찾을 돈도, 둘 장소도 없었어요.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만 찾아오는 것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선형 북아현 생존 대책위원장은 철거 당시 가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부의 농성은 현재 530여일이 넘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9일, 사전 공지 없이 갑작스럽게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 2층 건물이 깎여나간 뒤에야 굴착기는 작동을 멈췄다. 그러나 이틀 뒤인 11일 철거가 재개됐다. 새벽 5시경 용역 10명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자고 있던 3명의 농성자들을 끌어냈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경찰에 알리기도 했지만 제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세 명이 자고 있는데 내동댕이 쳐졌고 한 사람당 용역 서너명이 붙어서 끌어냈고요"라며 "지금 발바닥이 벗겨져 곪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어요, 어떤 용역들은 농성자에게 '머리 박아'를 시키기도 했습니다"라고 그날 새벽을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전날엔 분명히 정보과 경찰이 지키고 있었는데, 왜 하필 사건이 있던 새벽에는 없었는지 우연치고는 희한했어요."북아현 생존 대책위 운영위원 신원씨는 이날 새벽 철거에 대해 "용역들이 농성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무릎을 꿇리거나,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시청과 서대문구청은 이 문제에 대해 면담 요청 등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다. 신원씨는 또 "트위터로 많은 시민들이 북아현 문제에 대해 시에 건의 하고 있지만, 당국이 회피성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세린(21)씨는 약 1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 꾸준히 방문해왔다. 이씨는 사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소수만 북아현에 찾아오는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아무래도 연대하는 사람이 많다 보면 긴급하게 침탈을 당할 때도 신속하게 대피하고, 주변에 알릴 수 있어 사정이 나은 것 같아요. 여기는 지난 철거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연대하는 분 한분, 철거민 두분. 원래는 더 적게 있을 수도 있었으니 위험했죠." 이씨는 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쌍용차 농성장에 가는데, 여기도 방문해주면 좋을것 같아요"라고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씨는 북아현 문제가 이렇게 장기화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벌써 500일이 넘었는데, 위원장 님이나 연대하는 분들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와서 머무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죠." 서울시와 구청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그는 "조합이 폭력적으로 나올 때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공무원들은 수수방관하는 상황에서 시장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불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