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베를린 자동차도 장벽시대에는 달렸다

[베를린 장벽길 160km를 걷다11] 또다른 검문소 에어거리 그리고 군생활 회고

등록 2013.04.26 21:07수정 2013.04.2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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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켄 교회를 나서니 탁 트인 들판길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역시 서쪽에는 60년대 지어진 5층 아파트, 동쪽에는 독일 전통식 가옥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는 잔디로 무성하다. 잔디 사이는 도보나 자전거로만 지나갈 수 있는 아스팔트길이 있다.

지난번 걸어온 옛 장벽길의 구조와 다를 바 없지만, 굳이 다른 점을 말하자면, 나무로 우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와 무성한 잔디는 지난 역사적 과거를 잊게 해주는 동시에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a 잔디가 무성한 벌판 그리고 그 사이 작은 아스팔트길 필자의 글을 관심있게 보셨던 분은 이 사진의 의미에 대해 아실 것이다. 아스팔트 길은 감시초병이 지나간 길 그 옆은 허허벌판이었고, 좌우로 장벽이 있었다는 것을.

잔디가 무성한 벌판 그리고 그 사이 작은 아스팔트길 필자의 글을 관심있게 보셨던 분은 이 사진의 의미에 대해 아실 것이다. 아스팔트 길은 감시초병이 지나간 길 그 옆은 허허벌판이었고, 좌우로 장벽이 있었다는 것을. ⓒ 최서우


이 길을 지나니 또 희생자의 십자가가 나온다. 1961년 12월 9일에 여기서 탈출하려다가 희생된 분인 것 같았다. 가끔 십자가 밑에 보면 아로마 향초 및 향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름 모르는 이가 추모의 표시로 남기고 간 것이다. 이러한 추모열기가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옛 장벽 근처에 사는 독일 아이들은 산책로를 거닐며 부모님을 통해 직접 역사를 배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자도 우리나라 및 독일 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직접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가면 더 쉽게 각인되었다. 베를린 장벽을 걷는 이유도 바로 독일 냉전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함이고, 냉전이 지속되는 우리나라에 어떤 교훈을 남기는가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a 1961년 12월 9일 탈주자로 발견되어 살해당함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이 적혀있는 묘비에 위에 가끔 아로마 향초 및 향로를 볼 수 있다. 이 지역 근처에 살고 있는 이에게는 역사교육의 장일 것이다.

1961년 12월 9일 탈주자로 발견되어 살해당함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이 적혀있는 묘비에 위에 가끔 아로마 향초 및 향로를 볼 수 있다. 이 지역 근처에 살고 있는 이에게는 역사교육의 장일 것이다. ⓒ 최서우


a 희생자의 이름은 디터 볼파르트(Dieter Wohlfahrt) 그는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1956년 그의 가족들이 동독으로 이주하게 된 후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볼파르트는 장벽을 통한 탈출을 도와주는 학생운동가였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친척과 탈출하려다 결국 변을 당하였다.

희생자의 이름은 디터 볼파르트(Dieter Wohlfahrt) 그는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1956년 그의 가족들이 동독으로 이주하게 된 후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볼파르트는 장벽을 통한 탈출을 도와주는 학생운동가였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친척과 탈출하려다 결국 변을 당하였다. ⓒ 최서우


십자가를 지나고 쭉 걸어가다 보면, 옛 국경 검문소인 에어 거리(Heerstraße)가 나온다. 첫 번째는 본홀머 거리, 두 번째는 고속도로, 세 번째는 기찻길. 이번에는 서베를린-브란덴부르크 국경의 옛 검문소 자리다. 본홀머 거리와 달리 이곳에는 기념물이 거의 없다. 다만 검문소였다고 말하는 주황색 푯대만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본홀머 거리와 비교해서 초라하지만 중요한 자료가 하나 있다. 바로 서베를린의 차량이 동독지역을 지나면서 지켜야 할 법규이다.

보통 아우토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속도제한이 없는 고속도로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자료를 보니 동독시절에는 속도제한이 있었는가 보다. 고속도로에서 소형차 및 이륜자동차는 100km/h, 그 외는 80km/h. 일반도로에서는 각각 90km/h와 80km/h였다. 일반도로는 현재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최고속도가 높은 편이지만, 고속도로는 옛 경부고속도로 규정과 비슷했다. 신기한 것은 고속도로에 오토바이와 같은 이륜자동차가 다닐 수 있었다는 점. 속도위반 범칙금은 300마르크, 특수한 경우에는 500마르크였다.

두 번째는 서독으로 향하는 시외 혹은 고속버스에 관련된 규정인데, 이들을 위한 전용주차장이 있었다. 만약 다른 주차장에 주차하면, 법규 위반이었다. 세 번째로는 동독에서 허가한 통과도로로만 운행하라는 것인데, 동독주민의 허락 혹은 사고 및 질병의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되었다. 네 번째는 히치하이킹하는 사람을 태우지 말라는 규정이다. 워낙 이탈주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생겼나보다.


다섯 번째로는 신문, 잡지 그리고 다른 자료들을 운행 및 주차중이나 식당에서 배포하지 말라는 규정이다. 역시 공산정권의 유지를 위한 조치였다. 자동차가 이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신분증 지참과 동시에 '베를린 왕래 여행'에 대한 서류를 작성했어야 했는데, 이는 검문소에 비치가 되어있어서 서류를 깜박했더라도 작성한 후 규정된 내용에 따라 서독으로 향할 수 있었다.

a 에어거리의 안내표지 본홀머 거리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오른쪽 자료를 보면, 서독 차량에 대한 당시 규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에어거리의 안내표지 본홀머 거리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오른쪽 자료를 보면, 서독 차량에 대한 당시 규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 최서우


철마뿐만 아니라 서베를린 자동차도 장벽시대에는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동독 주민들에게 국경통과는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도로연결도 지난 번 언급했던 철도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때 금강산 도로연결사업 및 경의선 도로연결사업이 있었지 아니하였는가? 특히 경의선 도로연결사업의 경우 필자가 1사단 전진부대에서 2002년에서 2004년까지 공사과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일이다.


처음에는 GOP(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통선)지역에 배치되어서 잠깐 복무했었는데, 매일 폭발음 소리가 들렸다. 바로 경의선 철도 및 도로연결사업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었다. 이후 공사과 계원으로 배치되어서 공병대대 본부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여기서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참고로 필자는 정치학을 공부했기에 공사와 관련해서는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러니 처음에 선임병들과 공사장교 및 과장님께 일처리를 잘못해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 신병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공사담당관이었던 안길호 상사님을 만나게 되는데, 공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도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해주시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다.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공사입찰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공사내역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모른다고 꾸중하지 않고 기초부터 가르쳐주신 분이다. 이로 인해 내가 하는 업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또한 후에 경의선 도로 및 철도 연결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처음에 일을 잘 못한다고 심하게 꾸중하셨던 공사과장님도 - 비록 내가 직접적으로 맡았던 업무는 아니지만 - 필자의 열정을 이해하시고 친절히 이 사업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셨다. 도라산역, 경의선 1번국도 생태터널 등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깊게 스며있다.

2년 동안 군에서 우여곡절 끝에 배우고 경험했던 경의선 연결사업은 결국 완료되고, 이는 개성공단의 완공과 연계되었다. 하지만 금강산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도로통행은 중단되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인해, 동서독의 유연한 국경정책은 한반도에서 실현될 수 없었다. 게다가 경의선 도로를 통한 개성공단운행마저 끊긴 상황에서 그리고 안보를 위협받는 자리에서 국경개방정책에 대해 논의한다면, 흔히 말하는 개념 없는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다.

북한에서 국경개방을 한다면 국경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핵개발 및 독재정권 유지로 갈 수 있다 그래서 국경개방정책은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등등의 우려도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우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는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자동차 및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을 꿈꾸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를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앞으로 우리 후손들을 위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는 것을 이 옛 검문소에서 깨달았다.
#베를린장벽길 #경의선 #도로연결사업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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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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