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도 됩니다"...이런 시내버스 보셨어요?

박봉에 다문화가정의 가장...그래도 행복한 어느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삶

등록 2013.05.01 12:25수정 2013.05.0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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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느 버스기사를 통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버스기사를 통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 신광태


"지난번 2700원 옆에 있던 기사 아저씨한테 줬다"
"일부러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고마워요"


매월 3일과 8일에 열리는 화천 5일장 가는 길. 화천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 녀석을 만났다. "무슨 말이냐?"라고 물었더니 지난 장날 차비가 없다는 시골 할머니를 태워 드렸는데, 오늘 갚았다는 소리란다.

"시내버스도 외상이 있냐?"
"그럼 어쩌겠니. 장에 나오셔서 손자들을 위해 이것저것 사시다 보니까 차비가 없다는 걸."

녀석은 화천읍내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한 지 5년 정도 된다고 했다. 시골이다 보니 주 고객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도시와는 다르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정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몇 천원 때문에 매정하게 대한다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시골마을의 따뜻한 인정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못 갚으시면 내가 대납하면 되지 뭐..."

이종순(53).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다. 아이들은 그를 십종순이라 불렀다. 그렇게 부를 때마다 그는 화를 냈었는데, 이유는 이랬다.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그에 이름을 쓰라고 했는데, 글을 잘 몰랐던 그가  '이'자를 거꾸로 '10'이라고 썼다는 거다. 그때부터 그는 '10종순'이 됐다. 아이들이 놀린다는 자극 때문이었을까, 그의 실력은 늘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한달 생활비 160만원, 그 돈으로 네 아이와 생활하는 아내 

"만근(한 달에 20일 출근)을 하게 되면 한 달에 180만 원 정도는 받는다.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알뜰한 집사람 때문이겠지만 그냥 잘 산다."  


한 달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는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밝혀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려 했는데 그가 먼저 당당히 말했다. 더 뜻밖인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 중2짜리 둘째, 초등 4학년짜리 셋째, 4살배기 막내까지 자녀가 네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차마 생활고를 묻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아내는 일본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다문화가정인데, 아내의 알뜰함에 내가 놀라곤 해. 생각해봐, 아무리 시골이지만 여섯 식구가 그 돈으로 생활하는 게 가능하겠냐. 어려운 생활 때문에 맞벌이를 아내에게 말했는데, '생활이 좀 어려워도 아이들 교육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집사람의 말에 할 말을 잃고 가슴이 뭉클했었다."

다문화가정이란 말은 기사에 쓰지 않겠다고 하자에 그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오히려 나를 힐책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18년 전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의 붐이 일었던 시기에 모 종교의 주선으로 일본 여인을 만났다. 늘 몸이 불편하셨던 어머님을 뒷바라지하며 농촌 일을 돕는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시골에서 남의 논밭을 부쳐 돈을 번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아내에게 현금을 쓰게 해 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 달에 100여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적은 보수. 다른 일이 필요했다.

배운 게 도둑이라고,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보수는 한 달에 180만원. 화천에서 차량으로 40여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사창리에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20여만 원이 기름 값으로 소요된단다. 한 달에 아내 손에 쥐어주는 돈은 160만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좋아하는 술과 담배도 끊었다.

시골버스 운전기사는 마을 사람들의 중재자 역할도 한다

그의 출근 시간은 아침 6시 30분. 6시50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시작으로 막차까지 운행하다 보면 퇴근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한 달에 20일 근무하는) 만근은 그의 일상이다.

"사실 정류소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디 그러신가. 본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곳이 정류소다. 그나마 거기까지는 괜찮다. 왜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 않나. 그런 분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10여 미터 차이를 두고 서서 태워달라고 할 때는 참 난감할 때도 있다."

시골마을 운전경력 5년이 지나다 보니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도 생겼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서로 갈등이 있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화해를 이끌어 내는 역할도 한단다. 일종의 중재자인 셈이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들 삐치셔서, 왜 어르신들이 연세가 드시면 아기로 돌아가시는 순수한 마음 있잖나. 양쪽 분들에게 몇 마디 건네고 '악수 하세요'라고 말하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해지기도 한다, 그런 걸 볼 때...이것도 보람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

한 번은 어느 마을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내렸는데, 차 안을 둘러보니 비닐로 싼 물건이 보이더라다. 확인해 보니 천 원짜리 뭉치가 아닌가. 그는 그 길로 차를 돌려 바로 전에 내린 할머니를 찾았다. 아니다 다를까 그 할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하고 길가에 앉아 계셨단다. '웬 돈이냐'고 묻자 '반 회비로 걷은 17만원인데, 기사 아니면 다 물어낼 뻔했다'고 울먹이기까지 하셨다. 그 후 그 할머니는 가끔 버스를 탈 때 호박 한 개, 오이 몇 개를 가져다 주신다고...그 어떤 사례보다 값지지 않냐고 내게 말했다.

다음 차량 운행 때문에 10분 정도 밖에 시간이 없다는 그를 붙들고 간단히 미니 인터뷰를 가졌다.

a  기사 주인공 이종순씨.

기사 주인공 이종순씨. ⓒ 신광태


- 가장 궁금한 게 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어려움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다문화가정이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인지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왕따 같은)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을 나간다거나 등산을 간다거나 하면서 아이들이 적극적이고 명랑한 성격을 갖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인지 최근 내가 고민이라도 있는 눈치를 보이면 '사나이가 뭐 그러냐'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위로하곤 한다. 또 어머님께서 7년 전 중풍을 얻으셨을 때 집에서 5년간 모시다가 집사람이 너무 힘들어해 집에서 멀지 않은 시설에 모셨는데, 쉬는 날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효'의 중요성도 일깨워주곤 한다."

- 말썽을 부리는 승객들도 있을 것 같다.
"도시에서 운전기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승객들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는 아니고, 술 취한 할아버지에게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으면 '집 앞에 내려줘'라고 하시는 정도다. 그런데 내가 그 할아버지 집이 어딘지 몰라서 문제다. 일단 주무시게 해 놓고 무작정 달리다 '여기쯤 되세요?'라고 물으면 지나쳤다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신다. 또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 씻지도 않고 타셨을 때 너무 냄새가 지독해 다른 승객들이 불편할 것 같아 내 뒷자리에 앉히곤 하는데 냄새가 얼마나 심한지 운전하면서 애를 먹은 적도 있다(웃음)"

- 요즘 보기 드물게 아이를 네 명이나 두었다. 박봉에 어쩌자고...
"집사람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해 두자. 근데 내가 이 정도로 '인구 늘리기'에 기여했으면 군(郡)에서 어떤 지원이라도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농담으로 한 말이고 그런 건 바라지도 않지만,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어떤 혜택이 있을 때는 좀 알려 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로부터 이런저런 혜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의를 했을 때 그제서야 알려주는 것을 보고 좀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다문화 가정 대부분의 남편들은 낮에는 모두 일터로 나가고 (외국인인) 아내들은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 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시내버스 운전을 하면서 힘든 일과 보람을 있으면 들려달라.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해 드리면 망설임 없이 민원을 넣는다. 그럴 땐 '시골 인심도 많이 메말라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할머니들이 '이것 가져다 해먹어'하면서 까만 비닐 봉투에 넣은 감자나 오이 같은 것을 주실 때는 보람도 느낀다. 다만, 받을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어  참 난감할 때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입니다.
#화천 #이종순 #시내버스기사 #화천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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