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처리로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요"

"학교 가면 병원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등록 2013.05.03 17:33수정 2013.05.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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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면 병원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우연히 만난 중년 여선생의 하소연이다. 업무 과중에 치여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통계를 내거나 공문을 보고 교육청에 제출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니 수업준비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구시 고교의 경우 3월 중순쯤에 공람해야 할 공문수도 무려 1900여 건이 넘었다. 주요 업무부서인 교무부·학생부·연구부 소속이라면 수업 전에 교재를 한 쪽이라도 읽고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제 발이 저리는지 냉소를 자아내는 공문도 보낸다.

"교사의 업무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보라." 참으로 기이하고도 멘붕적 역발상에 허탈한 장탄식이 나온다. 학교성과급 경쟁 이후 공문수가 급증했는데 학교를 서열화해서 경쟁을 시키고 교사들은 교사대로 구분해서 성과급으로 매겨야 교육력이 향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학교폭력이나 자살 등의 사건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학교를 닦달한다. 지난해 학생 자살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설익은 대책을 내놓으면서 임시직 상담요원을 각 학교마다 배치한 적이 있었다. 이에 덩달아 학생부 교사와 상담교사들의 업무가 폭주하였던 것이 일례다. 이처럼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시적 업무들이 대부분 '땜질식'에 불과한 것들이어서 학교 교육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교육청이나 교육부는 공문을 통해 설익은 땜질식 정책을 학교 단위로 내려 보낸다. 학교가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보고해야 하며 결과를 제출하라는 식의 공문을 날리는데 이러려면 교육청은 왜 있는 것인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학교를 몰아세우고 교사가 수업준비에 쫒기면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파킨슨은 그의 법칙(Parkinson's law)에서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부하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으므로 조직 구성원의 수는 일의 유무나 사안의 경중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장학사 시험 비리가 왜 나왔는가. 고속승진 후 교장이 되려면 장학사가 돼야 하는데 장학사 수요가 많다 보니 장학사 수가 급증하였고 덩달아 공문 폭주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이러하니, 교육청이 나서서 진정한 교육 터전의 방해꾼이 된다면 아예 없애는 게 옳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왜 교육당국이 교사와 학생 간 상담시간을 빼앗고 수업 준비할 시간을 빼앗는가? 이래서야 교육이 제대로 되겠는가?


교육당국에 묻고 싶다. 언제까지 교육부와 교육청이 제 역할을 방기하려는가, 왜 교사에게 행정업무를 강요하는가. 진정으로 교육을 위한다면 탁상공론을 그만두고 교육부나 교육청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주기 바란다. 수업력 향상을 위한 콘텐츠 보급과 수업 장학 시범 등 교육청 장학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교육활동의 장이어야 한다. 교육정상화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장학진 '실적성 이벤트 사업'을 없애는 것에서 비롯된다. 학부모의 말을 빌리면 거창한 현수막이나 구호가 나부끼는 초등학교에는 되도록 아이를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교사가 수업보다 이벤트성 교육사업에 혼신을 다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사를 학생상담과 교재준비에 충실하게끔 하는 것이 학교 정상화의 첫 걸음임을 왜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5월 3일 치 <세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교육개혁 #교원잡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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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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