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했던 영화 '지슬'의 출연배우와 함께한 장창언 사장(오른쪽).
조남희
제주도의 명물 피자집으로 성공하기까지 사실 지난 10년 세월은 그에게 부침의 연속이었다. 제주도 해양경찰이었던 그는 부친의 권유로 일찌감치 장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벌이는 일마다 '망해먹었다'.
독서실, Bar 경영에 이어 '지하경제'에도 몸담았다. 성인오락실과 성인PC방 등을 조폭과 운영하면서 하루 매출이 수천에 이른 적도 있었지만 동업하던 친구의 배신으로 날마다 찾아오는 빚쟁이들 등살에 그마저 접어야 했다. 남은 것은 빚이 2억. 교도관이자 그가 단 한 번도 생활비라는 것을 가져다 준 적이 없었던 그의 아내, 그가 '인생 멘토'라고 부르는 아내가 그제서야 그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살아…." 그때부터 아내가 말한 달리도서관과 한라산 학교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종의 문화학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그에겐 충격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게 있어야 남들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돈만 좆으며 살아온 그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 1년을 살아보니, 그제서야 '내가 왜 망했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경제에서 나와 제주시의 7평짜리 공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인 음식을 해보기로 했다. 그게 피자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한 음식이 맘에 안들면 직접 찌개를 끓일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다보니 결국 좋아하는 일로 돌아온 셈이다. 피자 배달 가면 과거 어둠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던 조폭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오히려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인스턴트 피자를 며칠 배운 실력으로 배달 위주의 피자집을 하다가 '왜 피자를 이렇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슬로푸드와 피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달리도서관에서 만난 2명의 아줌마 동기들과 함께 '진짜 장사'를 해보기로 하고 피자집 장소를 물색하다 저지리에 있는 폐가를 우연찮게 임대 계약해버렸다. 임대가격은 연세 50만 원. 한 달 매출이 100만 원에 불과했던 가게는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억대 연봉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