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 백주년 기념관, 사진 상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브로츠와프 시내 외곽에 우뚝 서 있다.
박찬운
바로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 있는 백주년 기념관(Wroclaw Centennial Hall)이다. 막스 베르크(Max Berg)라는 건축가가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독일(프로이센)이 승리한 1813년의 라이프치히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13년에 만든 건물이다. 브로츠와프는 현재 폴란드의 주요 도시 중 하나지만 원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 영토였다. 연합국이 2차 대전 이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이 도시를 폴란드 영토로 만들어 버린 이유는 이곳을 포함한 실레지아 지역이 역사적으로 독일에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막스 베르크가 이 건물을 건축한 것은 독일 국민으로서 독일의 역사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브로츠와프 출신으로 이 도시가 폴란드로 귀속된 이상 더 이상 그를 독일 건축가라 부를 수는 없다. 그는 이 건물을 만들면서 로마의 판테온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고 앞에서 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완성했듯이 말이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공학 기술을 총 결집시켜 이 건물을 새로운 판테온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만 2년 만에 당시로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초현대식 강화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 건물이 현대 건축물로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2006년 유네스코가 이 건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전면에서 보면 거대한 다층 돔이다. 건물 내부엔 관중 7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로툰다 홀이 자리 잡고 있는데 거기서 보이는 내부 원주의 가장 긴 지름은 69m, 중앙 바닥에서 천정 쿠폴라까지는 42m로 전체적인 크기는 로마 판테온보다는 크지만 높이는 1.3m가 낮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베르크가 원조 판테온에 대한 예의를 그렇게 차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는 최근까지 이 건물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룬드대학에 있으면서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판테온 이야기를 하다가 비로소 이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현대판 판테온이 내가 있는 곳에서 불과 1시간 비행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당장 비행기표를 구했다. 행운인지 저가 항공사의 왕복 티켓 값이 단돈 5만 원! 이렇게 해서 나는 단숨에 브로츠와프로 날아갔다. 판테온 덕분에 '유럽의 숨은 진주'라 불리는 브로츠와프를 이렇게 만나게 됐다.
판테온, 드디어 석굴암까지 오다 판테온이 동양의 건축물에도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그렇게 본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로마시대부터 동서양을 연결해 준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를 타고 수많은 서양의 문물이 동양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동양 판테온의 최고 결정판은 명대에 세워진 베이징의 천단이다. 천단은 말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디테일한 모습이야 다르지만 천단이 보여주는 중국식 돔은 알게 모르게 로마 판테온을 연상시킨다. 명대 정도면 로마 판테온의 존재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원대에 이미 이탈리아인 마르코폴로가 중국을 다녀갔을 정도니, 로마 판테온의 존재가 중국에 알려졌을 거라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