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갑'들의 진상질,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서평] 대안경제 시스템의 최신 보고서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등록 2013.05.23 11:42수정 2013.05.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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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표지 ⓒ 북돋움

독립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드디어 제대로 한 건 터뜨렸다. 이른바 '조세 피난처(Tax Shelter, 홍콩, 파나마, 라이베리아 등과 같이 기업에 아주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국가들의 별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역외 탈세를 도모한 한국인 245명의 명단을 입수해 22일 그 일부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27일에는 재계 임원이 포함된 2차 명단까지 발표한다고 한다. '진상 갑질'로 궁지에 몰린 대한민국의 '갑들'이 당분간 한숨께나 쉴 것 같다.

하루 평균 여섯 명 정도가 산업 현장에서 죽어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오늘 자 <경향신문>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은 "대불산단 잇단 '산재 사망' 1년 반 새 노동자 15명 희생"이었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그저 뼈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한다. 하지만 그렇게 죽도록 일해서 얻은 열매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 열매는 고사하고 일자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동자들의 땀과 죽음과 실직의 대가로 얻는 열매들은, 노동자들로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주주들에게 빼앗긴다. 그 나머지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는 경영진의 입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뚱뚱한 배를 불린다. 그렇게 불린 배로도 모자라 그들은 '조세 천국(Tax Paradise, 바하마, 버뮤다 같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들의 별칭)'이니 '조세 휴양지(Tax Resort, 네덜란드, 스위스처럼 특정 기업이나 사업 활동에 조세 특혜를 주는 국가의 별칭)'니 하는 곳을 기웃거린다.

이번에 <뉴스타파>가 발표한 '인색한(吝嗇漢)'들에는 이수영 OCI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들 재계의 큰손들이다. 이번 발표 소식을 들으면서, 라면 상무와 장지갑 회장, 욕설 팀장 등으로 이어지는 '진상 갑질'에 질려 있던 이 땅의 '못난 을'들로서는 다시 한번 '멘붕'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끝없는 '갑'의 탐욕... 정말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는 건가

도대체 이 나라 '갑'들이 갖고 있는 탐욕과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사람 위에 올라선 자본의 세상"(<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제1장의 제목)이라지만 터져 나오는 울분을 감출 길이 없다. 물론 한편에는 이런 말도 있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큰 대가를 받아 마땅하다."


에이브러햄 링컨(1805~1865)의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해진다. 19세기 당시에 자본의 위세가 얼마나 컸으면 링컨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이런저런 말이 없지 않으나, 수많은 흑인을 노예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공로는 모두 그의 것으로 돌리자. 하지만 그는 그 흑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 곧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19세기 말을 지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힘은 더 커졌으니까 말이다.

"세계 10억 인구의 삶을 바꾼 공생의 대안 경제 시스템"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 따르면, 돈이 휘두르는 힘은 그 소유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가진 이들의 지배적인 소유 형태는 결정적이다. 현재 전 세계 최대 기업 천 곳의 매출을 합하면 전 세계 산업 생산의 8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소유권은 주식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 소유 형태가 상장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구조, 곧 상장 주식회사 시스템이 자본주의 벌거벗은 구조이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가 펼쳐지는 동안 경제를 조직하는 방식으로서 일정 부분 제 역할을 해냈다. 주식회사와 자본 시장의 등장 없이는 근대가 도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후 변화, 물 부족, 생물종 멸종 위기, 대규모 실업, 임금 정체, 극심한 빈부 격차, 부채 팽창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새 시대에 고통스레 접어들면서, 산업화 시대의 소유 모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시작하고 있다.(16쪽)

저자에 따르면, 상장 주식회사는 끝없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금전적인 부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때 금융상의 금전적인 부는 진짜 부, 곧 미래의 임금이나 주택의 가치, 기업의 이익에 대한 청구권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형태의 소유가 추출을 통해 작동한다고 해서 '추출적 소유(extractive ownership)'로 명명한다.

저자는 추출적 소유 모델이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산업이 모기지와 은행업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부가 금융업으로 흘러가는 것은 실물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 크기가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와 가정, 지역 공동체가 속한 실물 경제 부문을 괴멸시킨다. 2008년에 터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그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들 말한다. 이들은, 저자가 냉소적으로 표현한 대로, TINA("대안은 없다"라는 뜻의 "There is No Alternative"에서 머리 글자만 따서 만든 단어) 학파의 철저한 추종자들이다. 이 책의 추천자인 데이비드 코튼이 적절히 비판한 바, 20세기를 결정지은 단순한 두 가지의 경제 모델, 곧 사적 소유 모델(자본주의)과 공공 소유 모델(사회주의/공산주의) 모두 경제적 이상을 구현하지 못한 채 소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게 함으로써 극심한 폐해를 불러왔음에도 말이다.

'생성적 소유' 모델로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자

이 지점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 대안이 생성적 소유(generative ownership) 모델이다. 생성적 소유는 표면적으로는 사적 소유의 형태를 띠지만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폭발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협동조합, 종업원 소유 기업, 공동체 토지신탁, 지역공동체은행, 신용협동조합, 재단 소유 기업 등의 다양한 모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저자는 앞으로 이러한 생성적 소유 모델들이, 우리가 교육 받은 19세기 식의 먼지 나는 분류 체계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아니면 사적 소유와 국가 소유와 같은 경제 관념들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생성적 소유는 목적, 구성원, 통치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비된다. 단기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추출적 소유와 달리 생성적 소유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삶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소유권도 부재자 구성원(Absence Membership), 곧 실제 기업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소유자에게가 아니라 기업 현장에 뿌리를 내린 구성원(Rooted Membership)에게 주어진다.

추출적 모델에서는 카지노 자본이 '주인' 노릇을 한다면, 생성적 모델에서는 이해당사자 금융(Stakeholder Finance)이 '친구'가 된다. 또한 추출적 소유에서는 가격과 이윤에 초점을 맞춘 거래 중심의 상품 네트워크가 중시되지만, 생성적 소유에서는 윤리적 네트워크, 사회적·생태적 규범에 대한 집단적인 지원이 강조된다.

카지노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는 유일한 주립 은행 노스다코타 은행이 있다. 이 은행은, 2008년에 금융 위기가 닥쳐 민간 소유 은행이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고,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금융권의 공룡 회사들이 나자빠질 때조차 흑자를 기록했다. 저자는 그 저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미국의 14개 주가 현재 주립 은행 설립을 위한 법제화를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장님들은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하라고 한다. 물론 회사의 '주인'처럼 일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봐와서 잘 알고 있듯이, 안타깝게도 '주인'처럼 일하는 것은 '진짜 주인'의 배만 불릴 뿐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진심으로 '주인'처럼 일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생각과 태도, 행동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는다면, 조세 천국이나 조세 피난처를 얼쩡거리는 전 세계의 '슈퍼 갑'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번역자가 후기에 적어 놓은 말마따나,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대담한 상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세상이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마조리 켈리 씀,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2013년 5월, 336쪽, 1만5000원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 세계 10억 인구의 삶을 바꾼 공생의 대안경제 시스템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2013


#마조리 켈리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대안경제 시스템 #생성적 소유 #추출적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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