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숲 속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의 정체는?

[한국의 아름다운 숲 22] 분단의 아픔·통일의 염원 공존하는 강원도 철원군 소이산 숲

등록 2013.05.27 13:31수정 2013.07.2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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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소이산의 한쪽 기슭엔 아직도 지뢰가 묻혀 있지만, 덕분에 천연 원시림 숲이 되었다.
소이산의 한쪽 기슭엔 아직도 지뢰가 묻혀 있지만, 덕분에 천연 원시림 숲이 되었다. 김종성

한반도의 중심부 강원도 철원의 봄은 짧다. 일교차가 커서 아침, 저녁으로 반팔과 겉옷을 바꿔 입어야 한다. 덕분에 한낮의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이맘 때 여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철원평야와 군부대들이 주둔하고 있는 철원읍 사요리의 야트막하지만 전망 좋은 산 '소이산(所伊山, 362m)도 그런 곳 중의 하나.
전쟁과 분단의 아픈 역사를 묵묵히 지켜봤고 지난 60년간 일반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의 숲을 묵묵히 품어온 소이산. 남북분단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곳 소이산 숲은 200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평화의 숲'상을 받았다.

'군부대가 즐비한 곳에 아름다운 숲이라.'


왠지 모순돼 보이기도 하고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2011년엔 철원군청에서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조성하여 숲속 길과 둘레길, 정상 전망대까지 걷기 좋은 길이 나 있다. 무거운 장벽에 가려 그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던 소이산 숲,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와 사연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쇠가 가장 많이 부딪쳤던 곳, 철원(鐵原)

 경원선 열차는 철원 여행의 좋은 교통 수단이다.
경원선 열차는 철원 여행의 좋은 교통 수단이다. 김종성

 군 부대 차량들이 수시로 지나가는 노동당사 건물.
군 부대 차량들이 수시로 지나가는 노동당사 건물. 김종성

서울에서 북한의 원산을 오갔던 경원선 열차는 철원에 가는 제일 좋은 여행수단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동두천역에서 경원선 열차는 시작된다. 전곡, 연천을 지나 신탄리역, 백마고지역을 향해 가는 열차의 넓은 창으로 풋풋한 농촌풍경과 정다운 소읍, 군부대와 군 차량들이 교대로 지나간다.

얼마 전 생긴 백마고지역이나 옛 기차 간이역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신탄리역에 내리면 기차 시간에 맞춰 소이산이 있는 노동당사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노동당사 앞에서 신탄리역까지 가는 버스는 밤늦게 까지 매시간 35분경에 온다).

분단의 현실과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 얼마나 잔인하고 참담한 것인지, 전쟁의 상흔을 증언하듯 덩그러니 서 있는 노동당사 앞엔 화사한 연산홍 꽃이 피어났다. 노동당사는 철원군이 수복지구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수복지구란 6.25 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지역을 말한다. 해방 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생겨난 38선 이북지역에 위치했던 철원군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었다.

노동당사는 북한 정부가 1946년 대남적화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짓게 된다. 6.25전쟁 후 국군이 진주하여 남한 땅으로 되면서 철원주민들은 본의 아니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6.25전쟁 기간 동안 이념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비극의 피가 뿌려졌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군부대 차량들이 지나가는 노동당사 앞에 고요하게 서있는 소이산.
군부대 차량들이 지나가는 노동당사 앞에 고요하게 서있는 소이산. 김종성

노동당사를 기점으로 해서 북쪽방향으로 철원경찰서, 도립병원, 철원군청, 철원공립보통학교, 철원역에 이르는 3km의 거리는 일제강점기 철원의 중심가였다. 경원선 기찻길이 생기고 금강산 전기철도가 건설되면서 철원군은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었고 각종 농수산물의 집산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6.25전쟁은 인구 2만의 철원읍 시가지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조차 모두 떠나게 만들었다.


노동당사와 소이산이 있는 동네 사요리는 옛 철원읍의 중심지로 기차역 사요리역과 함께 농축산물이 모이고 경원선과 금강산 기차가 다녀 관광객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소이산 숲길 쉼터와 정상 전망대에 있는 6.25 전쟁 전의 옛 사진들을 보면, 산 밑에까지 크고 작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철원지역의 토양이난 암석은 철성분이 많아 붉은 끼를 띤다. 지역 이름이 쇠 철(鐵)자에 벌판 원(原)자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베일에 가려진 비밀의 숲, 소이산 숲 

 물이 찰랑찰랑한 논 위로 보이는 소이산과 버드나무가 정답다.
물이 찰랑찰랑한 논 위로 보이는 소이산과 버드나무가 정답다. 김종성

 '지뢰꽃길'이라 명명된 소이산 들머리길. 철책너머가 지뢰밭이요 원시림 지대이다.
'지뢰꽃길'이라 명명된 소이산 들머리길. 철책너머가 지뢰밭이요 원시림 지대이다. 김종성

노동당사에 서면 건너편에 나지막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소이산이다. 막 모내기를 시작하는 논밭을 품은 산이 정답다. 60년 전 텃밭이 달린 집터와 논밭, 아담한 학교 운동장을 품고 있었던 소이산.

평범한 야산처럼 보여 노동당사만 보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수십년 간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은 천연 원시림이 우거지고 주변의 철원평야와 북녘땅까지 한 눈에 펼쳐지는 전망 좋은 산이다. 노동당사에 몇 번 와보았지만 건너편에 이런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니 미처 몰랐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팻말을 따라 노랗게 피어난 애기똥풀의 환영을 받으며 텃밭과 다락논길을 걸어 소이산 들머리로 들어섰다. 이 길은 저 아래 마을 대마리로 가는 옛 길을 복원한 것으로 과거 마을 주민들이 왕래하던 길이다.

산 입구에 왠 철책이 나타나더니 '지뢰'라고 써있는 삼각형의 빨간색 표지판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군사적인 이유로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었으나 2011년 11월 녹색길 조성과 함께 비로소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길이다.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철책 너머 지뢰밭은 무성한 원시림으로 가득한 비밀의 숲속같다. 그런데 그 원시림의 철책에서 바람을 타고 솔솔~ 향긋한 향기가 풍겨온다. 언젠가 맡아보았던 기억이 나는 반가운 이 냄새는 바로 아까시향. 소이산 지뢰밭에는 강인한 생존과 번식의 상징 아까시 나무 (아카시아 나무의 바른 이름)들이 주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벌과 사람들에게 꿀을 공급하던 꿀벌나무, 아까시 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연료용 나무로 심어졌다고 한다. 소이산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북미산 외래수종이다. 꿀벌들이 꿀을 따는 나무이자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향기를 주지만, 생장력이 왕성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 그대로 두면 소이산 전체를 점령할 것이란 편견은 산 중턱을 넘어 오르면서 사라졌다.

산벚나무, 산뽕나무, 산밤나무, 상수리나무 등등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소이산 생태계 복원을 위해 철원군청에서 토종나무인 구상나무, 회색빛 피부의 자작나무, 피나무, 보랏빛 열매가 참 예쁜 좀작살나무 등을 따로 식재하고 있다. 다양한 나무들이 내어주는 그늘 덕분에 따가운 봄 햇살아래 더운 줄 모르고 숲속을 걸어갔다.

 지뢰밭 숲속에서 풍겨오던 향긋한 냄새의 정체는 아까시 나무였다.
지뢰밭 숲속에서 풍겨오던 향긋한 냄새의 정체는 아까시 나무였다. 김종성

 6.25전쟁 전에는 텃밭과 집들, 학교가 있었던 소이산 아래 자락의 지뢰밭 숲속.
6.25전쟁 전에는 텃밭과 집들, 학교가 있었던 소이산 아래 자락의 지뢰밭 숲속.김종성

 마치 군복을 입은 것 같은 산개구리와 뱀들이 숲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켜준다.
마치 군복을 입은 것 같은 산개구리와 뱀들이 숲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켜준다. 김종성

환경부가 비무장 지대의 생태 조사를 하던 중 천암함 침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소이산 숲도 정확한 생태조사와 지뢰제거가 중단된 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

6.25전쟁 전까지 텃밭이 달린 집들과 아담한 학교 운동장이 있었던 지뢰밭 숲속과 경원선의 중간역이자 금강산 전기철도(철원-창도-내금강, 116km)의 시발역이었다는 2층 건물의 철원역 부지를 흥미롭게 쳐다보며 걷다보면 철원평야의 마을 대마리가 보이는 숲속 쉼터가 나타난다.

소이산 숲길 중간 중간의 쉼터 벤치마다 과거의 흑백사진들과 함께 위치와 설명이 써있어서 주변 풍경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쉬어갈 겸 쉼터 벤치에 앉아 숲과 논밭으로 변한 옛 철원읍 시가지를 바라보며 번성했던 철원의 옛 모습을 그려본다. 다가올 통일한국에서 철원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소이산 숲길과 낮은 언덕을 오를수록 오대쌀로 유명한 철원평야가 눈앞에 넓게 펼쳐진다. 철원평야는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들 세종, 손자 문종이 자주 찾던 사냥터였다. 사냥이 끝나면 신하들과 인근지방 관료들을 임진강가의 정자 고석정(孤石亭)에 초대하여 잡은 동물과 술을 베풀며 위무했다고 전한다.

 드넓은 철원평야와 저멀리 북녘땅이 훤히 보이는 소이산숲길.
드넓은 철원평야와 저멀리 북녘땅이 훤히 보이는 소이산숲길.김종성

철원평야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경원선이 놓이고 봉래호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부터다. 6.25전쟁 때는 피비린내 나는 격전장이 되어 버들가지 무성한 황무지로 변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지뢰를 파헤치고 팔다리를 잃어가며 개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철원군에는 1959년부터 1979년까지 철원평야에 총 14개의 민북마을 (민통선 북쪽 마을)을 조성하여 975세대가 입주했다.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철원평야의 한 마을 대마리, 6.25전쟁 기간 최대 격전지였던백마고지가 걷는 내내 바라다 보인다. 숲 길 어느 쉼터엔 일제가 학생들을 동원하여 수시로 참배를 강요한 신사가 위치했던 터도 있다. 철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이곳에 신사를 설치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 번도 민간인에게 공개된 적이 없던 만큼 원시림의 자연 상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답게 숲길에 뱀이 자연스럽게 지나가기도 해 놀라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산자락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작은 기슭에는 산개구리들이 모여 있는데 흡사 군복 입은 군인들이 잠복근무를 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가도, 후손이 찾아오질 못해 방치되어 잡풀이 가득한 어느 무덤 앞에선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했다. 숲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뻐국 뻐국' 새소리가 왠지 구슬프게 들려온다.

북녘 땅 북녘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미군에 이어 한국군이 주둔했던 소이산의 군부대 흔적들.
미군에 이어 한국군이 주둔했던 소이산의 군부대 흔적들. 김종성

 통일의 염원이 절로 솟아나게 하는 소이산 정상 전망대.
통일의 염원이 절로 솟아나게 하는 소이산 정상 전망대. 김종성

전망대로 오르는 소이산 남쪽 길은 비어있는 군부대의 막사와 참호, 토치카 등을 지난다. 특히 기관총· 대포 등의 중화기를 비치하는 토치카는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철원평야와 북녘 땅을 향해 매복하고 있다. 굳이 말로 안보를 강조하지 않아도 이런 시설들을 보면 조국의 분단 상황과 대치 현장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된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 요즘이라 더욱 마음이 무겁다.

'봉수대 오름길' 팻말을 따라 소이산 정상에 오르자 눈앞이 확 트인다. 주변과 표고차가 200여m밖에 안 되지만 천 미터가 넘는 산의 조망을 보여준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철원평야의 전경은 물론 비무장지대와 그 너머 북한의 산하가 펼쳐진다. 포탄을 얼마나 퍼부었는지 산등성이 높이가 1m정도 낮아졌다고 하는 산 '백마고지'는 정말 산등성이가 평평하게 보였다.

 봉수대가 있었던 소이산 전망대, 풍경위로 남북한의 역사적 장소들이 잘 표시되어 있다.
봉수대가 있었던 소이산 전망대, 풍경위로 남북한의 역사적 장소들이 잘 표시되어 있다. 김종성

극심한 포격에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 (원래 이름은 삽슬봉), 남방 한계선이자 한반도의 녹색지대 DMZ, 후고구려의 궁예가 나라를 세우며 진산으로 삼은 '고암산 (김일성 고지)', 평강평야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다. 서울면적(605㎢)보다 훨씬 넓은 약 650㎢(2억 평)에 달하는 거대한 철원평야의 풍요로움에 이어 민족분단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통', '상생', '평화', '통일'이라는 단어가 써 있는 리본들이 정상 주변에서 바람이 휘날리고 있다. 소이산을 찾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들이겠다. 고려시대부터 국가의 위급상황을 알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소이산 정상은 통일이 되면 또한 봉수대가 있었던 서울의 남산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 될 것 같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며 생명의 숲으로 거듭나고 있는 소이산. 어서 통일이 되어 진정한 평화의 숲으로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ㅇ 문의 ; 철원군 관광문화과 (033-450-5224)
#소이산숲 #평화의 숲 #노동당사 #철원평야 #아까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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