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 교수의 고백 "대학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서평] <침묵의 공장>, 자본에 휘둘리는 한국 대학의 실태를 꼬집다

등록 2013.05.26 14:21수정 2013.05.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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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배재대학교가 '학과 통폐합' 소식을 알렸다. '학과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이루어진 내용은 '국어국문학과를 다른 학과와 통합하고, 프랑스어문화학과와 독일어문화학과를 폐지'하는 것. 이를 통해 배재대학교의 학과는 56개에서 53개로 줄어들고, 내년도 입학정원도 42명이 감축될 예정이다.

이에 해당학과 학생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학생회장을 비롯한 10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비슷한 소식은 같은 달 또 다시 이어졌다. 청주대학교 회화학과를 나온 개그맨 임혁필씨가 지난 22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출신학과의 폐지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린 것.

a  청주대학교 회화학과의 폐지소식에 대해 개그맨 임혁필씨가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교를 비판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회화학과의 폐지소식에 대해 개그맨 임혁필씨가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모교를 비판하고 있다. ⓒ 임혁필씨 페이스북 갈무리


"피카소가 취업을 했나, 고흐가 취업을 했나. 예술은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여기에 말도 안되는 취업운운하며 (학교 측에서) 학생과 학교를 졸업한 동문을 우롱하고 있네요."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 측은 학과 통폐합의 이유로 '낮은 취업률'을 지적하며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다는 것, 그리고 학생들은 "학문을 수익모델로 본다"며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린 결정"이기에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침묵의 공장>?

a  책 <침묵의 공장> 표지.

책 <침묵의 공장> 표지. ⓒ 천년의 상상

앞서 언급한 사건들에 한달 앞서 지난 4월 발간된 <침묵의 공장>은 마치 이러한 일들을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 같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강명관씨가 제목에서부터 거론한 '침묵의 공장'은 다름 아닌 오늘날 한국의 대학을 일컫는 말이다.


저자는 자본에 휘둘리는 대학의 현주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연구비를 얻기 위한 연구에만 매달리는 교수들의 모습을 지적하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세태를 '자발적 노예'로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를 통해 국가의 권력에 그저 복종하려는 역사학 등을 비롯한 학문의 실태도 꼬집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의 현실은, 이제 침묵한 채로 포장된 지식을 찍어내는 '공장'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대학은 공부, 곧 학문을 하는 곳이다. 또 교육하는 곳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학은 한 개인의 사회적 서열을 매기는 곳이고, 차등화된 노동자를 배출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공부와 교육을 위한 곳이 아니다. 공부는 논문의 양산으로 대치되었고, 교육은 학점을 주고받는 과정에 불과하다. 초·중·고등학교가 붕괴한 것처럼, 대학도 붕괴하고 있다." (본문 머릿글 중에서)

사실 익숙한 내용의 비판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체계가 '문제풀이 능력의 평가'에 불과한 형식으로 변질되었듯이, 대학 교육이 '학점 잘 받아내기'의 과정으로 굳어버린 현실. 학생으로서 직접 겪으며 보아왔거나, 혹은 수차례 들어보아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현직 교수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거기다 <침묵의 공장>을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문체는, 마지못해 실토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강명관 교수는 자신이 속해있음에도 대학의 부끄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적어내었다. 그 표현은 때로 과격하다 느껴질 정도로 솔직하다. 만약 글이 속시원하게 느껴진다면, 슬프게도 우리의 대학이 그의 묘사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자발적 노예로 전락한 인문학', 권력의 지배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침묵의 공장'과 같은 오늘날 대학의 실태. 저자는 그 원인을 인문학의 추락에서 찾는다. 학문으로서 권력과 사회구조의 부패를 비판하고 그를 위한 능력을 길러주어야 마땅한 인문학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87년 6월의 항쟁 이후, 자유를 찾게된 것은 국민들 뿐만 아니라 자본이라고 강명관씨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몸집을 불린 자본이 대학가에도 손길을 뻗쳤고, 경쟁이 최고의 가치인양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집행한 것이 교육부 등의 국가기관이라는 점도 그는 분명하게 가리킨다.

'인문학의 위기'가 곧 '자본의 요구'에 순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저자는 "진정한 인문학은 수공업이다"라고 주장한다. 인문학의 쇠퇴가 제도권에 길들여졌기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 해결책으로 저자가 열거한 사항은 매우 단순하다. 대학이 존재의 목적을 이윤창출에 두지 말고, 외부의 의존도를 낮추라고 조언한 것이다. 연구비의 액수에 집착하지 말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성과 비판성을 회복할 것을 덧붙이기도 했다.

'김예슬 선언' 이후 3년... 우리는 몇 걸음이나 걸어왔나

고려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예슬씨가 자퇴하며 발표한 '김예슬 선언'이 있은 지 어느새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2010년, 그녀는 '학생이 상품이 되어가는' 대학의 시스템을 벗어나 스스로의 자유를 찾겠노라고 말하며 대학을 떠났다. 다시 표현하자면, 사회가 강요하는 '대학'이란 줄서기에 모두가 군소리없이 복종할 때 이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김예슬 선언'을 2013년이 된 지금, 다시 떠올려보자. 그리고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자. 우리는 과연 그 이후로 몇 걸음이나 걸어왔는가? 그리고 그 방향은 어떠했는지, 혹여 뒷걸음질 친 것은 아닌지도 살펴본다면 과연 어떠할까. 길고도 짧은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김예슬씨가 외쳤던 말들이 '씁쓸하지만 이젠 과거에 불과한' 느낌이 아니라 심화된 현재진행형으로 와 닿지는 않는가.

책에서 말하는 '인문학의 부활' 외에 대학교육이 제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법을 이끌어내는 노력도 필요하다. 4지선다에 익숙해지도록 학생들을 길들여놓은 사회는, 청년들에게 정작 '침묵하고 복종할 것'과 '포기하고 패배자로 살아갈 것'의 두가지 선택사항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아파도 청춘'이라 말할 수 있게 해주려면 최소한 두가지의 길은 더 제시할 수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침묵의 공장>에서 강명관 교수가 말하는 해결책은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대학의 문제점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짚어내었기에 일리있으며, 그런 사항을 비판하려는 인문학의 부활도 분명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대학'이라는 제도가 지닌 문제의 발견과 그것을 끄집어낸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려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침묵하는 청년들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은, 대학생이나 일부 교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침묵의 공장> 강명관 씀, 천년의 상상 펴냄, 2013.04, 1만 1000원

침묵의 공장 - 복종하는 공부에 지친 이들을 위하여

강명관 지음,
천년의상상, 2013


#침묵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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