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7번째 주인공인 시사만화가 박재동
재미있는재단
"저에 대해 좀 잘못 알려져 있는 게 있는데요. 저는 만화가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림쟁이이고 싶었고, 만화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신촌 바에서 진행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일곱 번째 주인공은 "영원한 그림쟁이로 남고 싶다"는 시사만화가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1988년 <한겨례신문>을 통해 시사만화가로 데뷔한 박재동 화백은 직선적이고 호쾌한 시사풍자만화를 통해 시민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줬다. 이후 그는 1997년 시사만화집인 <목 긴 사나이>를 발표하고, 2008년엔 일상 속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닮은 <인생만화>, 2009년엔 자신의 그림일기인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최근엔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다시 엮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표했다.
강단에 선 그의 첫 일성은, 겸손했다. 그는 "그저 '그림 잘 그리는 재능'을 내가 시대와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사만화가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화는 자신이 한 일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선을 그은 뒤 "나는 사회적 운동을 하고 때로는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책도 쓰고, 노래도 하는 여러 가지를 하고 싶은 '그림 잘 그리는' 그림쟁이"라고 규정했다.
이날 그의 이야기는 박재동 화백이 그동안 수집해 온 흔적과 기록, 영향을 받았던 만화책, 어렸을 때부터 그렸던 그림들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모든 그림에 애정이 담긴 듯,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을 자상하게 이야기해줬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소재건만, 그의 유머 넘치는 입단과 구슬픈 노래는 듣는 이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박재동 "성공보단 인간을 배울 수 있었던 만화책"'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첫 번째 강의에 나섰던 만화가 이희재씨와 달리, 그는 어렸을 적부터 운이 좋았다. 그건 아버지가 만화방을 운영했기 때문. 사실, 그 시절 사람들은 '만화는 나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 시절 하루에 스무 권, 일 년에 칠천 권, 엄청난 양의 만화를 봤지만, 한 번도 나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성공보다는 인간을 배울 수 있었던 책이 만화책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만화는 정말 재미있는 것이고 만약 나쁜 만화가 존재한다면 그건 재미없는 만화"라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만화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그는 만화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만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간략화 되고 시각화되어 발전된 것이 만화며, 출판사에서 가장 발달한 것이 만화인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인식 속에는 아직도 만화는 책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만화의 세계 유통수준은 1위인 일본의 뒤를 잊는 2위라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만화 유통속도와 둘째로, 다른 나라에 비해 소비욕구가 큰 학습만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의 학부모와 대만의 학부모의 성향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학부모들은 서로가 경쟁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똑똑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키우고 싶기 때문에 정보가 있는 학습만화를 사주는 반면, 대만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만화를 사주면서 아이들이 명랑하고 긍정적으로 친구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을 살면서 지식도 중요하지만 좌절했을 때 일어나게 해주는 유쾌하고 명랑한 심성과 그런 정신을 갖기 위해 다양한 만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보가 있는 만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심성을, 우정의 중요성을, 불굴의 정신을, 좌절했을 때 일어나는 용기와, 약자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마음과, 명랑하고 유쾌하게 지내는 마음. 엉뚱한 상상력, 이런 것들이 정보를 배우는 것에 비할 바 없이 매우 중요합니다."결국 우리 만화시장은 공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거나 온라인 기반의 확산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만화를 사랑하고 평생 업으로 삼고 있는 그를 통해 왠지 한국만화의 씁쓸한 현실을 보게 되어선지, 자리가 편치는 않았다.
만화는 만화가의 것만이 아니다....누구나 창작자다
▲'재미있는 사람이야야기 전' 7번째 주인공인 시사만화가 박재동
전슬애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나 시를 쓰고 글을 쓸 수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한문위주의 독점적 문학의 시대를 넘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100년이 채 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만화도 마찬가지다. 박재동 화백은 만화는 스토리가 제일 중요한 문학이라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화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자유로운 생각을 평소에 구사한다면 누구나 만화를 즐기고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시대를 바란다고 했다. 한다.
"만화는 만화가의 것만이 아닙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만화를 즐기고 쉽게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자신의 이야기를, 일기장을, 그 때 그 때의 느낌을 우리는 문화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그는 깨닫게 했다. 흥얼거리는 소리를 음악으로 바꿔주는 앱이 있는가 하면, 일기장에, 자신의 글에 삽화 그리듯(낙서처럼 보여도) 그림을 그리는 것 등 자신의 삶 속에 자기만의 창작세계를 만들면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문화로 소통하라, 문화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그는 '독서'를 "책에 푹 빠지는 몰입"이라 정의했다. 흔히 독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을 읽고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책에 푹 빠져서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자기 싫은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푹 빠져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식들에게 어떤 책을 읽고 뭔가 답을 끄집어내고 알려주고 싶어 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그 책을 읽고 공감하고 푹 빠져서 그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 문화로 소통하고 문화를 통해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일상에서의 문화'를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책과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무슨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문화(예술)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아이와 부모가 같이 함께 이것에 빠지고 캐릭터에 빠지고 서로 대화하는... 그 순간으로서 족하다. 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나는 후배들에게 청년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귀하게 여기는 것, 남 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진정 행복한 것인가? 정말 이것이 좋은 것인가? 그럼 그 일을 버리면 안 됩니다. 그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그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남이 지금 천시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나쁜지 좋은지를 판단하면 되는 거죠. 그런 것이, 남들이 천시하는 것 속에, 남들이 안하려고 하는 것이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남들에게 천시 받아왔던 '만화', 그 삶 자체를 살아온 그는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만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이유로 천시 받는 일로 전락한 만화였지만, 그래도 그 만화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 사람이 되었다고. 지금은 만화가이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며, 가수를 꿈꾸며(그의 말로는 데뷔를 했단다), 책의 저자이며 사회활동가로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한 그는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며 "나처럼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이 세상에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이날 이야기를 유쾌하게 마무리했다.
박재동, 그는 예술가로서의 날카로움과 진지함보다는 문화인으로 다양하고 유쾌한 일상의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일상에서 "문화한다"는 말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 재미있는 상상이 재미있는 세상이 되는 재미있는 재단의 꿈을 박재동 그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7번째 주인공인 시사만화가 박재동
재미있는재단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소개 |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은 사단법인 재미있는 재단이 기획 주관하며, 오마이뉴스와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재단은 문화를 중심으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재미있는 재단의 다양한 사업들, 미국 MBA 진출지원 프로젝트 '개천에서 용났다'와 소소한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 교육 프로젝트 '비추다'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사업들 중의 하나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을 을 기획하고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은 매주 화요일 지속적으로 개최 됩니다.
먼저 문화계를 비롯한 궁금한 우리 시대의 인물로부터 점차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전시'하는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옆의 텍사스아이스바(02-325-0088)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호프 한잔과 함께 편안한 대화의 장으로 진행되는 '사람이야기 전'은 누구나 스스로를 이야기 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 그날 진행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달의 행사를 사전에 공지하고, 만나고 싶은 분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주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간단한 식사거리와 맥주, 강연료 등을 포함하여 2만 원이며, 대학생의 경우 50% 할인해 드립니다. 자연스런 우리시대의 삶의 전시 공간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5월 일정은, 21일 만화가 박재동 전, 28일 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 전, 6월 4일 영화평론가 유지나 전, 11일 문화평론가 정윤수 전, 18일 애니메이션 '빼꼼' 제작자 김강덕 전, 6월 25일 부천문화재단 대표 김혜준 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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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를 꿈 꾼 적 없다, 난 그저 '그림쟁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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