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예비율 낮은 게 밀양 송전탑 때문인가?"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 마을 송전탑 88번·89번 공사 현장을 가다

등록 2013.05.28 10:34수정 2013.05.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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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일요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 마을 입구 89번 송전탑 공사 현장을 찾았다.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새벽 3시이면 현장에 올라간다는데, 현장에 가까웠을 땐 이미 점심때가 가까웠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는 단장면 바드리 마을은 표충사 입구 삼거 마을에서 왼편으로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산 능선에 올라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산 위에 평원이 나타난다. 백마산 아래 이 평원을 바라보고 앉은 마을이 바드리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 산길에 차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길 아래쪽 89번 공사 현장으로 줄줄 미끄러져 내려가다 먼저 만난 건 주민들이 아니라 한전 직원과 공사 인부들이었다. 나무를 베어낸 비탈 아래쪽으로 굴삭기 두 대가 버티고 섰다.

한전 직원과 공사 인부들은 나무 그늘에서 큰 덩치를 드러낸 굴삭기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니 2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굴삭기 2대가 서 있고 그 아래 뜨거운 볕을 그대로 받으며 아주머니 한 분,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다. 맞은편에는 안동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앉아 주민들과 마주 보고 있다.

땡볕 아래 현장 막고 서 있는 사람들

a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 마을 입구 89번 송전탑 현장. 굴삭기 아래 땡볕에서 공사를 막고 있는 단장면 주민들.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 마을 입구 89번 송전탑 현장. 굴삭기 아래 땡볕에서 공사를 막고 있는 단장면 주민들. ⓒ 이응인


천막이라도 치지 그러냐고 물으니, 한전 직원들이 위에서 매 시간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 더위에 너무한다 싶었다. 안동서 온 아가씨들은 직장에 다닌다고 한다. 송전탑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는데 희망버스가 간다고 해서 자기들도 함께 했단다. 엊저녁에 왔는데, 오늘 돌아가야 한단다. 시집 온 지 이십육 년 되었다는 젊은 아주머니에게 뭐가 제일 마음 아프냐고 물었다.

"칠팔십 노인을 개처럼 질질 끌어내고 함부로 대하는 게 너무 ……"

끝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고 있는데  JTBC에서 취재를 왔다고 카메라를 맨 이들이 내려왔다.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다 취재를 허락한 모양이다.

길 위쪽이 88번 현장이라고 해서, 그곳에도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서어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을 타고 오르니 나무가 잘려나간 능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잘려나간 나무들이 나뒹구는 한가운데 굴삭기가 버티고 있고, 굴삭기 뒤로 주민들 모습이 언뜻 비쳤다. 도시락을 싸와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굴삭기 옆에는 쇠로 된 구조물이 쌓여 있고, 거기 끈을 매달아 겨우 볕을 가리고 있었다. 이곳에도 희망버스 소식을 듣고 온 사십 대나 되어 보이는 남자 셋에, 여자 한 분이 함께하고 있었다. 점심을 얻어먹고 주민들의 사정을 들었다.


a  능선에 자리 잡은 송전탑 88번 현장을 지키는 주민들

능선에 자리 잡은 송전탑 88번 현장을 지키는 주민들 ⓒ 이응인


"지금까지 공사 현장에서 15명의 주민이 다쳤거든요.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주민과 한전이 부딪혀 다친 게 아니라, 주민과 경찰이 부딪혀 다쳤어요. 그런데도 경찰은 주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와 있다고 합니다."

말문이 터지자 쌓였던 말을 쏟아낸다.

"22일 일어난 일을 말할게요. 공사장 소식을 듣고 아침 8시가 좀 못 되어 여기 왔거든요. 우리가 88번 공사 현장으로 올라왔을 때, 이미 경찰이 먼저 와 있었어요. 경찰 80여 명이 굴삭기를 3중으로 둘러싸고, 공사 인부가 기계를 가동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주민들은 겨우 7~8명 되었나 그래서 어찌 해볼 수가 없었어요. 그때 60대 할머니 세 분이 겹겹으로 둘러싼 사이를 비집고 굴삭기 밑으로 들어갔어요. 그러곤 굴삭기에다 밧줄로 몸을 묶었지요. 경찰이 끌어내다 안 되니까 한전 직원까지 합세했어요. 그때 한전 직원 한 사람이 두꺼운 공업용 커터칼을 꺼내더니 경찰에게 주었어요. 섬찟했지요. 경찰이 밧줄을 끊고 끌어내고 하는 과정에서 굴삭기에 머리를 부딪히고 끌어냈었을 때는 할머니 두 사람이 의식을 잃었어요. 소방 헬기가 한참 있다가 와서 병원으로 싣고 갔지요. 생각만 해도 끔직했어요."

그나마 산 능선이라 아래 89번 현장과 달리 바람이 불어 더위는 견딜만했다.

"15개 마을 합의? 사실과 달라요"

"현재 우리나라 원전 23기 중 가동 중단한 게 9기입니다. 이 중에 고장 정지가 4기예요. 이건 무슨 말입니까? 원전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밀양 송전선로로 보내야 한다는 신고리 3호기의 전력 공급 능력은 전체 전력의 1.7%입니다. 그런데 전력 예비율이 낮은 게 밀양 송전탑 때문입니까?"

주민들은 8년 동안 싸워 오면서 765kV 송전에 대해, 특히나 원전 관련해서 나름대로 정리하고 현장을 답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한전에서는 피해 지역 30개 마을 가운데 15개 마을이 합의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확인해 보니까 전혀 안 그래요. 이전에 합의해서 공사가 끝난 청도면까지 마을 숫자에 끼워 넣었고, 주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마을까지 넣어 놨더라고요."

a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나뒹굴고 있는 나무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나뒹굴고 있는 나무들. ⓒ 이응인


한전 직원들은 공사장 위 나무 그늘 아래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고, 주민들은 굴삭기 아래서 겨우 햇볕만 피한 채 또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버티지만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생수병을 챙겨 들고 89번 현장으로 다시 내려갔을 때, 한전 직원들이 철수하고 있었다. 주민들도 짐을 챙겼다. 날이 어두워지려면 멀었지만 집안 일 정리하고 내일 새벽같이 나오자면 여유가 없다며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위해 트럭에 몸을 싣고 있었다.
#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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