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에 선전포고한 홈플러스, 그럴 때 아닙니다

[주장] 연장근무수당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

등록 2013.06.02 21:01수정 2013.06.0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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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차액보상제 광고 이미지 유통업계에서는 업계 2위 홈플러스가 1위인 이마트를 겨냥한 가격전쟁을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홈플러스의 차액보상제 광고 이미지유통업계에서는 업계 2위 홈플러스가 1위인 이마트를 겨냥한 가격전쟁을 시작했다고 평가한다.홈플러스 누리집 갈무리
"차액보상제? 직원들한테 떼먹은 돈이나 내놓으라 그래요. 연장근무를 일주일에 30~40시간 하는데도 월급명세서에 수당이 0원으로 찍혀요. 연장근무가 아니라 무료봉사라니까요!"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차액보상제' 도입 소식을 듣고 격분한 홈플러스 직원 김아무개씨(여·43)의 한숨 섞인 말입니다. 이 노동자는 지난 달에도 법정 연장근무 허용 시간을 초과해 일주일에 수십 시간 연장근무를 했지만, 이에 대한 수당은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관련기사 : "회사임원 온다고 전 직원이 매장 청소... 홈플러스, 삼성 '무노조 경영'과 흡사"). 홈플러스 직원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5월 30일 홈플러스는 '이마트보다 비싸면 계산대에서 바로 차액만큼 보상해드리겠습니다'라고 공언했습니다. 즉 업계 2위의 기업으로서 경쟁업체인 1위 기업 이마트보다 비싼 상품에 대해 그 차액을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홈플러스는 차액보상제를 통해 무려 '연간 60~100억 원의 금액을 소비자에게 환원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가 업계 2위의 굴욕을 날려버리기 위해 이마트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하는 것이 세간의 분석입니다.

유통업체간 과당 경쟁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홈플러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저임금과 고강도노동·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일상적으로 '무료봉사'(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직원들은 연장근무를 이렇게 부른다)를 강요당하고 있는데 회사는 이에 대한 개선책을 단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장근무 40시간해도 수당은 0원

연장수당을 떼인 직원의 월급명세서 이 직원은 2013년 2월 40시간의 연장근로를 했으나 월급명세서에는 0시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근무시간은 '야근시계'라는 어플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해 증명했다.
연장수당을 떼인 직원의 월급명세서이 직원은 2013년 2월 40시간의 연장근로를 했으나 월급명세서에는 0시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근무시간은 '야근시계'라는 어플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해 증명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연장근무는 ①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② 일주일 12시간 이하로 제한돼 있습니다. 게다가 연장근무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홈플러스에서는 불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직원의 동의를 얻기보다는 '퇴근을 상사에게 허가받는다'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주일에 30~40시간 연장근무는 기본입니다.

정규직의 경우, 출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해 일하고 있지 않으면 상사에게 지적을 받습니다. 소위 '칼 퇴근'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동자들은 수십 시간 연장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월급명세서에는 연장근무를 10분도 하지 않는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결정적 착취가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홈플러스는 이와 같은 불법 운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사측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문제"라며 "사실상 묵인 방조"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연장근무를 거부하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긴다" "연장근무 웬만큼 안 하면 정규직은 꿈도 못 꾼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운이 좋아 연장수당을 조금이라도 챙겨주려는 중간 관리자를 만나도 상위 직급에서 결제를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혹여 결제가 되더라도 주 12시간까지만 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연장근무는 명백히 법 위반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사측이 불법 요소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과 사측의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3년 치의 연장근무수당만 계산해봐도 승용차 한 대는 살 수 있는 돈"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못 받은 수당만으로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홈플러스의 비정상적 관행으로 인해 직원들의 생활은 처참할 정도입니다. 마트 노동자들의 보편적 생활상을 몇 가지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아래 내용은 홈플러스 노동조합원들의 인터뷰 내용이며, 조합원들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개인정보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례① 비정규직 20대 남성] 퇴근시간이 다 됐지만, 아무도 퇴근하라는 말은 없고 업무지시는 계속됩니다.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면접 기회를 가지려면, 제시간에 퇴근하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습니다. 휴일에도 나와 공짜 연장근무를 하다 보니 건강하던 몸도 망가져만 갑니다.

[사례② 정규직 30대 남성] "넌 정규직이잖아"라는 한마디에 퇴근시간도 없이 일합니다. 업무를 전달하는 일, 사람을 구해오는 일, 특판을 나가고, 청소를 하고, 페인트칠까지 하고, 이 부서로 지원가고 저 점포로 지원가고…. 많지도 않은 급여에 온갖 일들이 다 떨어집니다. 연장근무 시간을 올려도 거절당하기 일쑤고, 오히려 상사로부터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사례③ 비정규직 20대 여성] 가뜩이나 마트노동자들은 주말에 쉴 수가 없습니다. 주말대목에 쉰다는 것은 금기에 가깝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친지·친구들과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이젠 친척들도 찾지 않고, 평일이라도 가끔 만나 수다를 떨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점점 뜸해집니다.

[사례④ 비정규직 40대 여성]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오픈조인 날은 새벽부터 출근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습니다. 그나마 마감조인 날은 가끔 아이들 얼굴이라도 보는데, 대부분 연장근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는 얼굴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사는데 '이렇게 사는게 맞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들 고혈로 수익 올리는 연간 매출 12조의 대기업

홈플러스 직원의 일하는 모습 하루 종일 매장과 창고를 드나들며 대량으로 상품을 나르고 진열한다.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월급은 비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
홈플러스 직원의 일하는 모습하루 종일 매장과 창고를 드나들며 대량으로 상품을 나르고 진열한다.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월급은 비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홈플러스 노동조합

창사 14년이 된, 연간 매출 12조 원의 대기업 홈플러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홈플러스가 이러한 불법적 관행으로 직원들의 연장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금액은 무려 1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연장수당 미지급 건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마트 노동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와 무기계약직의 경우 한달을 꼬박 일해도 월급날 주어지는 돈은 100만 원 남짓. 최저임금에 턱걸이하는 수준입니다. 연간 매출 12조 원을 이끌어내는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치고는 참 저렴합니다.

게다가 직원들의 고혈을 뽑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의 생활고는 심해지기만 하고, 건강 또한 쉽게 망가집니다. '월급날 더 화가 난다'는 게 홈플러스 직원들의 중론입니다.

가격전쟁 선전포고? 불법부터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 기자회견 지난 3월말 노동조합을 설립, 사측에 교섭 요청을 했으나 지금까지 상견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 기자회견지난 3월말 노동조합을 설립, 사측에 교섭 요청을 했으나 지금까지 상견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홈플러스 노동조합

"지겨워…."

홈플러스 직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입니다. 저임금과 스트레스, 눈치밥에 쳇바퀴 돌듯 살아내다 보니 체념과 회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홈플러스 직원들은 지난 3월 말, 창사 14년만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홈플러스 사측과 교섭을 제안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설립 석 달째에 접어든 지금까지 홈플러스 사측과 노동조합은 교섭을 위한 상견례 자리도 갖지 못했습니다. 사측이 노동조합 명단의 공개를 요구하며 상견례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불법적인 관행은 전국적으로 여전히 진행형에 있습니다.

홈플러스가 업계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시작한다는 설욕의 기회, 차액보상제. 그러나 법을 어겨가며 직원들에게 돌아갈 수당을 회사 수익으로 돌리고 있는 홈플러스가 시급하게 도입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일한만큼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는 불법적 관행을 근절하고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닐까요? 계속해서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직원들뿐만 아니라 결국 소비자들에게도 외면받게 된다는 것을 홈플러스는 진정 모르고 있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국현씨는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선전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차액보상 #체불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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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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