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지질 특성 반영된 산사태 예·경보 기준 마련을"

방재협회 주관 '급경사지 재해예방 정책 세미나'서 제안

등록 2013.06.03 12:00수정 2013.06.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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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지(急傾斜地)'란 택지·도로·철도 및 공원시설 등에 부속된 자연 비탈면, 인공 비탈면 또는 이와 접한 산지를 말한다. 급경사지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산사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장마 때가 되면 집중 호우와 함께 산사태도 발생한다. 산사태는 비탈 지대의 돌과 흙 그리고 여러 잔해들이 아래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철 집중호우 및 태풍 등에 의해 발생하는데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산사태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 산사태는 호우·지진·화산에 의해 발생하는데, 경사가 급할수록 산사태가 일어나기 쉽다.

 산사태 현장
산사태 현장산림청

산사태의 원인은 대부분 호우다. 땅에 많은 양의 빗물이 침투하면 새로운 암석면 사이에 경계가 생기고 그 상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다. 태풍이 오는 시기나 장마철에는 각지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어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도 산사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방재협회(회장 강병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사태로 인한 피해면적은 여의도의 약 3배, 1300억 원 규모의 재산피해가 있었다. 또 기후변화에 따른 국지성 호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2011년 한 해에만 서울 우면산, 강원 춘전 등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43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산사태를 비롯한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이나 기술 등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B홀 세미나장에서 한국방재협회가 주관하는 '급경사지 재해예방 정책 및 연구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강병화 회장은 "산사태는 땅속에서 이루어져 눈에 보이지 않고, 관리지역 이외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사전 예측이 어렵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급경사지 재해예방을 위한 정책 및 기술 정보를 공유해 재해에 대비하고 인명과 재산피해를 줄여나가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서울연구원 이석민 박사의 '서울시 사면관리와 홍콩 사면관리의 비교 및 적용'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정민수 연구사의 '재난안전연구원의 급경사지 붕괴위험도 판단시스템' ▶육군사관학교 오경두 교수의 '집중호우를 고려한 급경사지 재해위험도 정밀평가기법 및 지반재해위험지도 개발' ▶금오공과대학교 이진덕 교수의 'Web-EOC 기반 급경사지 계측관리시스템 구축' ▶건설기술연구원 장용구 박사의 '지진 및 급경사지 방재를 위한 지하공간정보 및 급경사지 정보 통합DB관리시스템 개발'에 대한 발표가 각각 진행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사태는 대형화·빈발화 돼가고 있다. 1980년대에 231㏊에 이르는 산사태가 발생해 28억 원의 복구비가 들었고, 2000년대에는 피해면적이 713㏊에 달하고 복구비도 867억 원에 이를 정도로 피해규모가 커졌다. 집중호우(일 100㎜ 이상) 빈도도 1980년대 43회에서 2000년대 54회로 늘었다.

이에 대해 산림청은 기후변화 뿐만 아니라 도시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와 국토이용 측면에서 산기슭이나 계곡주변의 산지에 관광지·펜션이 들어서면서 산사태 발생요인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연구원 이석민 박사에 따르면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발생 후 서울시에 산사태를 비롯한 급경사지 안전관리업무를 전담하는 '산지방재과'가 신설됐다. 산사태 예방체계를 구축하고 급경사지 붕괴위험지역을 정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박사는 "홍콩은 매년 3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해 산사태 예방기술 및 사방기술이 선진화돼 있다"며 "홍콩전역 110개소에 설치된 '자동강우량 측정기' 및 '산사태-강우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강우데이터와 강수예보를 결합해 산사태 위험성을 판별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홍콩은 1924년부터 항공사진을 활용해 24만여 장의 DB를 구축해 또 자연사면 뿐만 아니라 인공비탈면에 대한 통합적인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어 민간사면의 관리도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홍콩은 다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연구를 기반으로 정교한 예·경보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면 서울의 경우 인공비탈면은 현황 데이터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관리가 어렵고, 산림청과 기상청의 예·경보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 서울의 지질·지형·강우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기상 및 지질 특성이 반영된 예·경보 기준을 설정하고, 홍콩의 산사태관리·위험도평가 등 우수사례를 검토해 적용시킬 것을 제안했다.

 육군사관학교 오경두 교수
육군사관학교 오경두 교수 온케이웨더 박선주

오경두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산사태 발생에서 끝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토석류가 이동하면서 주변 시설물이나 주택에 피해를 주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발표를 이어갔다.

오 교수에 따르면 최근 산사태는 토석류(土石流) 재해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토석류란 경사진 땅의 윗부분이 물에 흠뻑 젖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이다. 산사태로 붕괴된 토석류는 갑자기 불어난 많은 양의 계곡물과 나무 등이 뒤엉켜 하류 저지대의 주택, 산업시설 등을 매몰시킨다.

그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도 집중호우로 토석류가 남부순환로를 넘어 주변 아파트에 피해를 줬다"며 "호우에 의해 지표면에 물이 점차 증가하고 그 부력 때문에 흙탕물이 사면으로 씻겨 내려가는 과정에서 토석류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산지에 흙을 붙잡아두고 있는 힘은 기반암과의 마찰력, 나무뿌리와 흙 간의 점착력, 흙 입자들 간의 점착력, 사면 아래쪽의 흙이 지탱하는 지지력 등이다. 하지만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하면 흙은 물의 영향으로 포화되기 시작한다. 단단한 흙덩이도 물속에 넣으면 흩어지는 것처럼 점착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강우량이 시간당 30㎜이상일 때 산사태 경보를 발령하는데, 마사토(화강암이 풍화돼 생성된 흙)는 시간당 30~36㎜의 빗물을 침투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강수량이 시간당 30㎜를 넘어서면 흙에 흡수되지 못하고 지표면에 물이 흐르게 되는데 처음에는 유량이 작아서 맑은 물이 흐른다. 하지만 36㎜이상이 지속되면 물을 흡수한 흙은 무게가 증가하면서 사면 아래쪽 흙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고 언제든 붕괴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때 강풍이 불어 나무 등이 쓰러지면 쉽게 산사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오경두 교수는 "산사태를 비롯한 급경사지 재해예방의 목적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만약 시간당 36㎜ 혹은 10분당 6㎜이상의 비가 내리면 저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2층 이상의 건물이나 고지대로 대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의 산사태 예·경보시스템에 적용하던 일강우량보다 '초단기 강우'에 유의해야 한다"며 "10분당 강우량이 3㎜이상은 '관심' 6㎜이상은 '주의' 9㎜이상은 '경계' 12㎜이상이면 '위험' 수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정민수 연구사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정민수 연구사온케이웨더 박선주

폭우 속에서는 경사면이 30° 이상만 되는 인공사면도 붕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정민수 연구사는 전국단위의 '급경사지 붕괴위험도 판단 시스템' 개발을 통해 적절한 경보 발령 및 급경사지 재해 피해 저감과 초기대응에 기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정 연구사는 "현재 구축 단계에 있는 이 시스템은 강우자료를 수집해 대표 강우 측정지점을 결정하고 강우량에 따라 한계·경보·대피선을 각각 설정한다. 그리고 실시간 강우자료를 적용해 산사태 경보 및 대피 명령을 내리는 원리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난안전연구원에 전달되는 기상정보는 소방방재청에서 받고 있어 실시간 강우정보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기상청의 강우데이터를 직접 연결해 처리속도를 향상 시키고, 전국의 자동기상관측(AWS·Automatic Weather System)지점에 적용해 시스템을 고도화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진덕 금오공대 교수는 "'Web-EOC 기반 급경사지 계측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해 3차원 공간영상데이터를 구축하고 계측정보를 연계해 서비스하는 방재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급경사지 붕괴위험지역 지반의 침하·전도·붕괴 등의 위치변화를 사전에 감지해 주민대피 유도시스템까지 개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기술연구원의 장용구 박사
건설기술연구원의 장용구 박사온케이웨더 박선주

장용구 건설기술연구원의 박사는 "재해취약지역의 지질 및 지반특성 파악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다"며 "풍수해·지진·급경사지 방재를 위한 지하공간정보 및 급경사지 정보를 통합하는 DB관리시스템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 박사는 "전국단위의 지질 및 지반조사를 실시할 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통합 데이터를 구축해 유관기관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중복 조사 및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재해 발생 시 지반 피해와 시설물 피해를 예측해 궁극적으로는 자연재해 통합관리 시스템으로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림청은 다음과 같은 '산사태 주의·경보 단계별 행동요령'을 제시하고 있다.

◈ 주의보
- 산사태가 일어날 위험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 산사태취약지역 주민은 대피를 준비한다
- 등산객 또는 산간계곡의 야영객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 대피장소를 사전에 숙지하고 간단한 생필품 등을 사전에 준비한다
- 경사면에서 물이 솟는 등 산사태 징후가 있을 경우 즉시 대피하고 산림청 또는 시·군·구 에 신고한다
- TV,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기상정보를 확인하고 관계 행정기관의 안내에 귀 기울인다

◈ 경보
- 산사태 발생상황을 확인한 경우 즉시 신고하고, 인명피해가 우려될 경우 119 또는
1688-3119(산림항공구조대)로 구조를 요청한다
- 주민대피명령이 발령될 경우 대피장소 또는 안전지대로 반드시 대피한다
- 대피 시 화재 등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가스·전기를 차단한다
- 산림주변에서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
- 산림 내에 있을 경우 계곡부에서 벗어나 높은 곳으로 피신한다
- 대피 후 기상 등 위험 상황의 추이를 확인한다


덧붙이는 글 박선주(parkseon@onkweather.com) 기자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뉴스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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