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고엽제 피해자 370여명 보상길 열린다

박민식 의원, 고엽제 지원법 개정안 발의 예정... 이전보다 13개월 늘어나

등록 2013.06.06 13:07수정 2013.06.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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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 예비역 중령이 전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수색소대장으로 DMZ 안에서 수색과 매복을 되풀이했다. ⓒ 박종기씨 제공


비무장지대(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이 대폭 늘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 31일까지로 규정된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1971년 8월 31일까지로 13개월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엽제 후유의증 등 환자지원에 관한 법률(고엽제 환자 지원법) 개정안을 7일 발의할 예정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 절차를 거쳐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1967년 10월 9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 DMZ에 근무한 고엽제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2월 28일 1970년 12월부터 전방에서 근무했다가 전형적인 고엽제 후유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박종기(69. 예비역 중령)씨의 사연을 단독으로 발굴해 소개한 바 있다(관련기사 : "항문 없는 장남, 사산된 장녀... 나는 백혈병").

그동안 국회는 인정 기간을 소극적으로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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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환자 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 유성호

고엽제 환자 지원법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3년 처음 제정돼 시행되어왔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2년 앞선 1991년부터 고엽제 피해자 보상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고엽제 환자 지원법은 월남전에 참전한 고엽제 피해자들에 한정된 법이었다. DMZ에 근무한 군인들은 빠져 있었다. 게다가 5년마다 개정해야 하는 한시법이었다.

결국 지난 2000년 2월 고엽제 환자 지원법을 개정해 DMZ에 근무한 군인들까지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 31일 사이에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서 병역법, 군인사법 또는 군무원인사법에 따른 군인이나 군무원으로서 복무하였거나 고업제 살포업무에 참가하고 전역·퇴역한 자로서 제5조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질병을 얻은 자'(제2조 제2항 나목)로 규정됐다.


이후 지난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총 두 차례에 걸쳐 총 68.4km 면적에 맹독성 고엽제를 살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살포된 고엽제 양은 에이전트 오렌지 2만350갤런, 에이전트 블루 3만8280갤런 등이다. 특히 '고엽제의 종결자'라는 모뉴론도 211.1톤이나 살포됐다. 정부에서는 마지막 고엽제 살포가 1969년 7월 31일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이후에도 고엽제가 살포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법률 개정과는 별도로 고엽제 역학조사를 실시해오고 있다. 지난 1995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실시한 역학조사를 통해 버거병과 만성 골수성 백혈병 등이 고엽제 후유증에 포함됐다. 올해 5월부터 오는 2016년 8월까지 다시 네 차례의 역학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2012년 현재 고엽제 후유증에는 18개 질병, 고엽제 후유의증에는 19개 질병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개정된 고엽제 환자 지원법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1989년 발표된 Paustenbach. D. J.의 <환경 및 신체건강 위험에 관한 위해성 평가 사례 연구>(The risk assessment of environment and human health hazards)에 따르면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은 살포 이후 18개월 이내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헤아려 국방부에서도 법이 개정되기 전인 1999년 11월 독성잔류기간 18개월 반영을 요청했다.

당시 국방부의 요청이 반영돼 법률 개정이 이루어졌더라면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은 현재보다  6개월 늘어난 1967년 10월 9일부터 1971년 1월 31일까지로 규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살포량과 기후조건의 차이에 따라 약효기간은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독성잔류기간을 최소인 1년만 반영했다.

앞서 언급한 박종기씨는 지난 1970년 12월부터 DMZ에 근무했고, 지난 1998년 5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고엽제 후유증에 포함된 질병이다. 심지어 고엽제 후유의증인 고지혈증과 고혈압뿐만 아니라 협심증까지 앓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 소극적 입법으로 인해 그는 고엽제 환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 연장'과 관련한 미국 보훈부의 답변서. ⓒ 구영식


미국에서 25개월 늘린 지 2년 반 지나서야 개정안 발의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마련했다. 미국 보훈부가 지난 2011년 1월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기존의 1968년 4월 1일부터 1969년 7월 31일까지에서 1968년 4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로 25개월을 늘린 것이다(관련기사 : 미국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 늘린 '진짜 이유')

언론보도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한국군과 미군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고, 고엽제 환자 지원법을 개정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미국처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고엽제 환자 지원법이 연장되었지만 개정안에는 이러한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박민식 의원이 한국군과 미군의 형평성 문제를 보완하는 고엽제 환자 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25개월 늘린 지 2년 반 만이었다. 박 의원도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 중 하나로 "최근 미국 정부가 DMZ에서 복무한 주한미군에 대하여 고엽제 후유증환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간을 1971년 8월 31일까지로 연장해 보상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 보훈부에서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대폭 늘린 이후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서도 "인정기간을 늘려야 한다"며 법률 개정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관련기사 : 정부 "전향적 검토"... DMZ 고엽제 인정기간 늘어날까?).

박종기씨는 "그동안 국가보훈처나 고엽제 전우회 등에서 국내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 묻혀 있었다"며 "늦었지만 박민식 의원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리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보훈부가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렸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011년 5월부터 국가보훈처 등에 법률 개정을 요구해왔다"며 "DMZ에 근무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60~70살 등 고령이기 때문에 늦어도 오는 9월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고엽제 피해자는 총 8만9772명(후유증 3만9909명, 후유의증 4만9799명, 2세 피해자 64명)에 이른다(2012년 10월 말 현재).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월남전 참전자들이고, DMZ 근무자는 1000명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고엽제 피해자 4022명에게 약 283억8700만 원이 지급됐다. 국가보훈처는 박 의원이 발의한 고엽제 환자 지원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최소 연간 370여명의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고, 여기에는 연간 28억여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엽제 #박민식 #박종기 #고엽제 환자 지원법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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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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