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뒤에 숨어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있는 스님.
성낙선
'눈이 밝은' 사람에게 국립춘천박물관은 빨리 관람을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박물관이 다 그렇겠지만, 국립춘천박물관에도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유물이 몇 점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그 앞에서 멈춰 서게 마련이다. 그 유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 그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그 유물들 중의 하나가 2001년 영월군 창녕사터에서 발견된 나한상들이다. 소박하고 투박하며 질박한 것으로,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유물도 드물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은데, 자꾸 보게 되고, 보면 볼수록 또 정이 가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나한상들이 대부분 살포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미소들처럼 푸근해 보이는 미소도 없다. 돌에 새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나한상들이 다 그렇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나한상들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익히 보아온 나한상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 나한상들에는 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다. 남녀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나이도 다 다르다. 모두 다, 다른 얼굴로 다른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 기쁜 표정이 있는가 하면 슬픈 표정이 있고, 밝은 표정이 있는가 하면 또 어두운 표정도 있다.
나한상은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오른 불교 성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곳의 나한상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이다. 굳이 '높은 경지'를 드러내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겹다. 나한상들의 모습이 마치 한 동네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다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모두 다 내 이웃에 사는 사람인 듯, 낯익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