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분위기속 남-북 실무회담 시작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가운데,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오른쪽)이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모쪼록 5년 만에 다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얼마만의 남북대화일까. 곰곰 따져보니 남남북녀가 만나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등의 인도주의 문제를 논의한 것은 꽤 오랜만의 일 같습니다. 10년간 토라지고 싸우면서도 뜨겁게 연애했던 남녀가 완벽한 냉각기를 거쳐 헤어지기로 작정했던 것이라고 비유해도 될까요?
MB정부 초기였던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철저히 중단됐습니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됐고 개성공단에 위기가 닥쳤으며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주의 접촉도 더는 할 수 없게 됐지요. 평범한 세계시민의 시각으로 보자면 남북 당국은 63년 전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게 하는 아주 잔인무도한 권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많은 이산가족은 만나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8·15 광복절을 계기로 시작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신청한 남측 가족은 모두 12만8808명. 영상통화를 통한 화상상봉 3748명을 제외하면 이중 1만7986명이 가족과 만났습니다. 전체 신청자의 16.8%. 아직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은 수없이 많습니다. 통일부는 상봉 신청자 이외의 이산가족을 60만~70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분들, 살아생전에 고향 땅을 밟을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고향 땅은 못 밟아도 두고 온 혈육과 손 한번은 마주 잡을 수 있을까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향후 남북관계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모쪼록 5년 만에 다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으니 올 8·15엔 또 한바탕 금강산에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8년 전, 저는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했습니다. 어릴 적에 헤어진 딸이 어느덧 초로의 노인이 돼 있는 모습을 본 할머니들은 오열했습니다. 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떡하면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이산가족들의 모습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취재수첩에 눈물방울을 꽤나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큰 뉴스가 있으면 작은 뉴스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남북관계는 국제정치 영역이 됐고 더 이상은 국내이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틀 뒤엔 또 다시 세계가 우리를 주목할 것이고 남북간 대화를 대서특필하겠지요. 전 세계가 한반도 위기를 긴급뉴스로 타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반전의 드라마는 역시 한반도가 '짱'입니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누구나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또 다시 국내정치로 돌아오면 뭔가 석연치 않고 답답한 일들이 널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사건이 그렇습니다.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세워놓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창장의 기소여부 등에 대해 집중 질의했으나 황 법무장관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며 "수사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검찰이 알아서 잘 할 거다"라고 일관했습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이제 고작 9일 남은 상황에서 아직도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적용 및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는데도 그는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민주당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세훈에 대한 구속 수사가 시급한 상황인데도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원세훈 구속 결정을 고의적으로 지연하고, 공직선거법 의율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원세훈 구속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귓등으로도 이 비판을 듣지 않는 모양새인 것입니다.
황 법무장관의 뜻이 이 방향에서 꺾이지 않으니 수사팀 내부에서도 이르면 10일 오후 수사결과보고를 하면서 동시에 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 전 원장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 등을 통해 정부·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게재토록 해 정치·선거에 개입했다고 보고 있지만 구속여부는 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외치 잘해도 내치 못하면 평가는 뒤처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