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은 북한 면죄부? 엉뚱한 곳에 성내는 청와대

[取중眞담] 체면 구긴 청와대, 양비론 낙인찍기로 책임 회피?

등록 2013.06.13 09:38수정 2013.06.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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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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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북한이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수용한 지난 6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처음으로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회담 수용이라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수석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들께서 정부를 신뢰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뒤늦게라도 북한에서 당국 간의 남북대화 재개를 수용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앞으로 남북 간의 대화를 통해 개성공단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현안을 해결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더 나아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발전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 수용에 대해 박 대통령이 "국민께 감사 드린다"고 한 것은 한껏 들떠 있었던 당시 청와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정부가 개성공단 철수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경색국면을 맞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당국 간 대화를 요구해 왔고, 결국 북한이 태도를 바꿔 수용하는 가시적 성과를 냈다는 자평이 작용했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르려 했던 청와대의 성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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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지난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오른쪽)이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이후 청와대의 행보는 거칠게 없었다. 북한이 당국간 회담 제의한 지 7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장관급 회담을 역제안 했고, 북한이 실무접촉 장소로 개성을 제안하자 판문점에서 만나자고 해 관철시켰다.

게다가 과거 정부와는 다르게 회담 수석대표의 격을 바로 잡겠다며 북한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결국 지난 5년간 단절되다시피 한 남북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첫술에 배부르려는 청와대의 성급함은 초기 대응 미숙으로 나타났다.

깨지기 쉬운 유리병을 다루듯 신중하게 회담의 의제와 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했지만 오히려 청와대에서는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는 거친 언사가 나왔다. "격이 맞지 않으면 상호 신뢰하기가 어렵다",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지 말라", "북한이 우리의 상전이냐"는 대북 압박이 이어졌고 결국 회담은 시작도 못하고 무산됐다.


남북간 대화 성사 자체에 둬야 했던 과거 정부와는 다르게 수석대표의 격을 바로 잡을 필요는 있었다고 해도 촉박한 시간에 쫓기는 단 한 번의 실무회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지나친 과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체면 구긴 청와대, 책임 모면하려 양비론 낙인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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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6회 국무회의에 참석해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청와대


"국민께 감사한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무색하게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북한이 당국간 대화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남북 신뢰 구축의 첫발을 겨우 뗀 것에 불과했음에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마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 양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태도 못지않게 청와대의 대응 미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를 양비론으로 몰아세우는 데 급급하다.

12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남북회담 무산 책임 문제에 대해 "양비론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비론은 굉장히 편리하고 쉬운 것"이라며 "회담이 열리지 못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분들이 북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쏟아지는 책임론을 회피하려는 이 같은 청와대의 태도는 청와대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독선에 가깝다. 너무 이른 자축으로 체면을 구긴 청와대가 엉뚱한 곳에 성을 내는 것 같다. 책임의 경중을 가리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정부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북한에 대한 면죄부"라고 낙인찍는 것도 남남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청와대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화살을 돌리기 전에 먼저 이번 회담 실무접촉 과정을 복기해 보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지난 5년간 심화된 남북간 불신의 골에서 나온 남북간 엇박자의 원인을 찾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을 한걸음 한걸을 진전시킬 밑천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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