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었던 제가 쌍용차 농성장에 선 이유

[주장] 김정우 지부장 석방하고 국정조사 진행해야

등록 2013.06.14 15:26수정 2013.06.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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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입니다. 반공을 국시처럼 알고 살았기에 6월이면 '상기하자 6·25'와 같은 표어 짓기와 포스터 그리기를 했습니다. 포스터에는 대부분 한반도 지도를 그리고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은 파랗게, 북쪽엔 시뻘건 손이 남쪽을 향해 뻗쳐있거나 뿔 달린 괴물의 형상을 그려 넣곤 했지요. '빨갱이'는 우리와 다르게 머리에 뿔이 달리고 험악한 괴물쯤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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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24시간 꽃밭을 지킨다 꽃밭 지키는 경찰 ⓒ 이명옥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 다른 '괴물' 취급을 받는 존재가 바로 노동자들입니다. 범죄자 몽타주에 버젓이 '노동자풍'이라고 적어 모든 노동자를 잠정 범죄자 취급을 해왔고, 노동의 권리만 주장해도 면전에서 '빨갱이 새끼들'이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는 사회니까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여성 가장이며 장애인이고 대통령이 만들겠다는 바로 그 좋은 일자리인 '시간제 일'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저는 노동자지만  머리에 뿔이 달리지도 않았고  동네 어디서 마주쳐도 기억조차 나지 않을 이 땅의 평범한 아줌마일 뿐입니다. 사회적 인식으로 말하자면 부끄럽게도 6·10 항쟁에 조차 함께하지 않았던 사람이니까요.

그런 지극히 이기적이고 사회적 의식이라곤 조금도 없는 아줌마가 쌍용차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군요. 쌍용차 문제는 바로 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바로 내 발등에 떨어져 내 발에 화상을 입히는 뜨거운 불과 다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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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20000 자동차를 조립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저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표정은 밝고 환했다. ⓒ 이명옥


사실 저는 2009년 쌍용차 옥쇄 파업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14번째 사회적 타살자 임무창씨 죽음으로 세상에 남겨진 남매 이야기를 접하곤 '내게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사회 안전망이 거의 없는 이 사회에 내 아이가 빚더미만 안은 채 고아로 남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엄습했습니다. 오며 가며 대한문 분향소를 들여다보고 소식을 알린 것은 언젠가 나의 일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불러 온 본능적 방어였습니다. 사회와 국가가 삶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방어하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본능일 테니까요.

법 적용의 이중적 잣대에 분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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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하던 김정우 지부장 김정우 지부장은 국정조사와 쌍용차 해고자 원직 복직을 위해 41일간 단식을 했다. ⓒ 이명옥


지난 12일, 10일 연행되었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10일 구청과 남대문 경찰서가 화단 앞에서 비닐 한 장을 덮고 자던 쌍용자 동지들을 내쫓고 비닐을 털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몸싸움 때문입니다.

그날 서영섭 신부님과 청소년을 포함 16명의 시민들이 연행되었다가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우 지부장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은 법원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집행유예 기간인데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어서 재발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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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고동민 동지가 밤을 새운 자리 경찰은 공무집행이라며 깔고 앉은 신문지를 뺏어 찢어버렸다고 한다. ⓒ 이명옥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이 있습니다. 원인과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결과만 놓고 법이 기울어진 잣대를 적용한 것입니다. 대한문 앞에 차렸던 것은 단순한 농성장이 아닌 24명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향소입니다. 김정우 지부장은 그 분향소를 지키는 맏상주였지요. 그런 상갓집을 남대문 경찰서는 미관상의 이유, 시민들 통행 방해, 도로교통법 등 온갖 이유를 들어 침탈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중구청과 손을 잡고 새벽에 기습 침탈해 철거하고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쌍차해고자들은 천막조차 없이 비닐 한 장으로 밤을 지새우다 그 비닐마저 지난 10일에 털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느닷없이 상갓집에 들어와 영정을 찢고 물건들을 강제로 빼앗아 간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신변의 위협을 느꼈을 때, 방어를 하다 부득이하게 폭력을 썼다면 정당방위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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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고동민 동지 이 남자의 눈물이 시대의 눈물일까요? 아니면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개같은 공권력의 횡포와 폭력과 불의가 부른 분노의 눈물일까요 ⓒ 이명옥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중구청을 침탈했나요, 아니면 남대문 경찰서를 침탈했나요? 사회에 악을 저질렀나요? 그들은  이미 알려진 대로 국가가 개입된 회계조작과 기획파산으로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진상을 조사하고 조작한 범죄자 처벌하고 억울하게 쫓겨 난 일터로 돌아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쌍용차와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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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섭 신부님과 장동훈 신부님 미사 집전을 준비하는 서영섭 신부님과 정동훈 신부님 ⓒ 이명옥


서영섭 신부님과 장동훈 신부님이 경찰에 당한 수모는 공권력의 횡포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서영섭 신부님은 연행과정에서 경찰이 할퀴고 꼬집어 상처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신부님인 줄 몰라서 그랬다'더군요.

서영섭 신부님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신부님 같지 않다'라는 말이라네요. 그래서 신부로서 본이 되지 못했나 자신을 돌아봤는데 아마도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복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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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게 목을 졸린 장동훈 신부님 미사용 깔개를 가지러 갔다가 채증하는 경찰에게 항의했다고 목을 졸린 장동훈 신부님 ⓒ 이명옥


12일 대한문 앞 미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동훈 신부님이 똑같은 이유로 수모와 폭력을 당했습니다. 장 신부님은 미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의자가 모자라자 자매님과 경찰이 빼앗아 한 곳에 모아 둔 깔개를 가지러 갔습니다.

깔개를 가져오려는데 경찰이 채증을 해 "미사 준비로 깔개를 가져가는 것이니 채증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채증을 하더군요. 무려 여덟 번이나 채증을 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했는데도 채증을 계속하자 장 신부님이 카메라 다리를 잡았고 그 순간 경찰이 달려들어 목을 조른 것입니다.

남대문 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과 그 자리에 있던 정보과장에게 "당사자 불러 오라,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항의를 하자 당사자는 "신부님인 줄 몰랐다, 깔개가 잠정 시위 용품이라 범죄예방 차원에서 채증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최성영 과장도 "솔직히 신부님들께는 특별대우를 해드리고 있다"며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라고 사과를 빙자해 무마하려 들었지요.

신부님이 로만 칼라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사제임을 몰랐다는 것도 '신부님인 줄 몰라서 목을 졸랐다'는 변명도 무척 화가 납니다. 그럼 일반 시민이 항의하면 목을 졸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권력이 있으면 무죄, 힘 없고 빽 없으면 유죄가 되는 이중적 법의 잣대가 시민들을 분노하고 실망하게 만듭니다.

김정우 지부장 석방과 국정조사가 국민대통합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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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지부장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 이명옥


"27년 전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껌팔이, 신문 배달, 구두닦이를 하며 거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쌍용자동차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김정우 지부장입니다. 나보다 더한 열정으로 쌍용차 동지들을 챙기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스물 네 분의 맏상주로 맏형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12일 감옥에 갔습니다. 2009년 내가 감옥에 갔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이렇게 넋 놓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닙니다. 김정우 지부장의 몸은 감옥에 가뒀지만 희망과 열정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김정우 지부장은  희망을 놓지 않고 감옥 안에서 투쟁을 할 것입니다. 우리도 밖에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더 가열차게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합시다."

연행되었다가 석방된 문기주 지회장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정우 지부장은 선량하고 성실한 노동자이고 시민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맏형으로 가족과 상갓집을 지키려는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죄과가 확연하게 드러난 원세훈은 불구속 기소한 대한민국이 왜 자기방어를 한 힘 없는 노동자는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까. 대선 때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그들을 일터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무조건 개인 물품을 강탈하고 천막을 부수고 비닐을 빼앗고 깔고 앉은 신문지마저 빼앗아 찢어버리기 전에 해야 할 일 아닐까요?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 말한 박근혜 대통령께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요구합니다. 약속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김정우 지부장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

쌍용차 문제 해결이야말로 국민 대통합과 국민행복 경제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통령이 의지를 보여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의 석방과 국정조사는 국민대통합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믿습니다.
#김정우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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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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