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이 겪은 비극, 언제쯤 끝나려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영화들, 그들의 상영관은 어디에?

등록 2013.06.14 16:42수정 2013.06.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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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개봉한 독립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는 개봉 이후 상영관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공동체 상영'으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공동체 상영이란 일반 극장이 아니라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종교단체 등의 시설에서 100여 명이 안 되는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일반 극장에서 상영관을 내주지 않아 개봉에 어려움을 겪는, 특히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들이 찾는 방식입니다. 대기업의 배급을 받지 못한 영화들은 이렇게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국내에서 멀티 플렉스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대표적으로 CJ그룹과 롯데그룹입니다.

문화 콘텐츠계의 거대한 공룡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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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에 속해 있는 문화콘텐츠 사업체들 ⓒ 누리집 갈무리


CJ그룹은 '문화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모토 아래, 글로벌 생활 문화 기업으로서 현재 13개의 계열사(제일제당·GLS 등)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CJ 그룹의 핵심 사업 중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사업 군에는 CJ E&M, CGV, HELLOVISION과 같은 계열사가 속합니다.

CJ E&M의 경우 국내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방송 콘텐츠, 음악 콘텐츠. 영화 콘텐츠, 공연 콘텐츠, 게임 콘텐츠 사업부 등이 있어 국내외로 활발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송 콘텐츠 사업부에서는 tvN, Mnet, OCN 등 국내 압도적 1위 채널 인프라를 바탕으로 시청자를 위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영화 콘텐츠 사업부에서는 영화의 투자·제작·배급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총 16개의 방송 채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최대 콘텐츠 기업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국내에서 영화와 방송 분야를 모두 다루고 있는 그룹은 오직 CJ E&M 뿐입니다.

CJ CGV는 국내 최초로 도입된 멀티 플렉스로서, 영화 관람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왔습니다. 국가 고객 만족도 NCSI에서 8년 연속 1위로 선정됐고, 한국 산업 브랜드 파워(K-BPI)에서는 10년 연속 1위로 선정됐습니다.

국내 1위 멀티 플렉스로 자리잡은 CJ CGV에 대한 논란이 가열된 것은 2012년 9월부터였습니다. CJ E&M 영화 사업부에서 제작 및 배급한 영화 '광해'가 상영 기간 동안 CGV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관람객의 선택권 침해는 물론 대기업의 배급을 받지 못한 영화들이 상영조차 하지 못하고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광구>(116억) <코리아>(50억) < R2B >(100억) 등 CJ E&M에서 수십수백억 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영화들의 연이은 실패로, CJ E&M으로서는 <광해>의 개봉이 최대 수익을 끌어모을 기회였을 것입니다.


<피에타> <터치> 같은 비극은 언제까지 계속되나

이러한 CJ E&M의 독점적 문화 권력으로 인해 많은 영화들이 상영관에서 대중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최근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피에타>를 들 수 있습니다. <피에타>는 교차 상영을 했습니다. <광해>는 전국 689개의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반면, 5일 먼저 개봉한 <피에타>는 153개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게다가 관객이 많지 않은 오전과 심야 시간에 제한적으로 상영됐습니다. 때문에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물론 주연 배우들까지 상영관 확보를 위해 힘썼지만, 불과 20개관밖에 추가되지 않았었습니다.

피에타의 배급사 NEW는 국내 4대 배급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CJ나 롯데처럼 멀티 플렉스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배급사이기 때문에 상영관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피에타>뿐만 아닙니다. 영화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개봉 첫 주부터 상영관을 제대로 내주지 않은 대기업 영화관에 반발했습니다. 이에 영화 진흥 위원회에 대기업 영화관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신고한 데 이어 개봉 8일 만에 종영을 선언했습니다. <터치>의 주연 배우 김지영씨는 '제일 친한 친구를 잃은 듯 마음이, 몸이 갈 곳 없이 흔들린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3년 3월 28일 개봉한 <지 아이 조 2>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CGV 영화관 총 8관 중 4관에서 하루에 11번 상영됐습니다. <광해>로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여전히 자사 계열 배급사 영화 '우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반 영화의 경우 영화관 상영이 끝나면, 일정액을 지불하고 VOD 서비스를 이용해 영화를 재관람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CJ E&M의 경우 VOD 서비스를 위해 '캐치 온'이라는 채널을 인수,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CJ E&M에서 제작 및 배급한 영화를 CJ CGV에서 편파 편성을 통해 독점적으로 상영을 하고 스크린을 내리고 나면 캐치 온에서 VOD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VOD 서비스를 오랜 기간 동안 제공한 뒤, CJ E&M의 영화 분야 채널인 OCN과 채널CGV에서 영화를 재방영합니다. 이를 통해 CJ E&M은 광고 수익을 창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해>의 상영권, VOD 서비스, 채널 편성권을 모두 CJ E&M이 가지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 영화 전문 브랜드, 무슨 변화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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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꼴라쥬,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 누리집 갈무리

이것을 두고 '규모의 경제'라고 일컫습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 요소 투입량의 증대(생산규모의 확대)에 따른 생산비 절약 또는 수익 향상의 이익을 뜻하는 말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면 시장에서 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각 산업은 독점기업이 지배하는 체제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반면 CJ E&M은 상영관 편파적 편성으로 인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성 영화 전문 브랜드 '무비꼴라쥬'를 지난 4월, 전국 20개관으로 전격 확대했습니다. '무비꼴라쥬'에서는 예술영화·독립영화·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하며,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개최하는 크고 작은 영화제를 지원 및 후원합니다. CJ E&M은 '무비꼴라쥬'를 확대 개관함으로써 자사 계열 배급사 영화만 우대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예술 영화와 저 예산 독립 영화를 지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대중들이 예술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전보다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무비꼴라쥬'가 영화 제작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는 미지수입니다. 전국 CGV 상영관 중 '무비꼴라쥬' 전용관이 있는 곳은 15곳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수도권 및 광역시에만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다양성 영화를 위한 '무비꼴라쥬'를 따로 내세우는 것은 앞으로도 자체 제작 및 배급 영화 '밀어주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습니다. 정말 독립 영화를 부흥시키기 위해 '무비꼴라쥬'를 개관한 것이라면, 전국의 모든 CGV에 최소 1관씩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이유로 영화계에서는 일반 상영관에서 독립 영화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영화 산업에 정부 차원의 직접적 규제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CGV 상영관 내에서 대기업의 배급을 받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들을 공평하게 편성한다면, 고객들의 영화 선택권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파 편성으로 인한 소음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상영관에서 <피에타> <터치>와 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앞으로 CJ E&M이 국내 최대 콘텐츠 기업으로서 어떤 방법으로 영화 산업의 부흥에 앞장설지, '무비꼴라쥬'를 어떻게 이용할 지, 그리고 앞으로 상영관 편파 편성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잠재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단,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대기업의 횡포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CJ E&M #영화 #멀티플렉스 #갑과 을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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