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풀이한 '노자' 강의 진수

[서평] 류영모 번역, 박영호 풀이의 〈노자와 다석〉

등록 2013.06.15 15:49수정 2013.06.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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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노자와 다석〉 ⓒ 교양인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존재형으로 사는 까닭이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제 할 도리를 다하는 인간 말이다. 가끔씩 문제가 되는 건 소유형의 인간형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인간이 제 욕심을 끝도 없이 다 채우면서 살 수 있겠는가?

존재형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길'을 찾아나서는 인간을 뜻한다. 종교적인 용어로는 '구도자'로 사는 것이다. 학자에게는 진리탐구의 길이 적용될 것이다. 참된 의사에게는 이윤보다 생명을 더 존중히 여기는 '인의'를 일컫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채움'으로서는 결코 구도자의 길도, 진리탐구의 길도, 참된 인의의 삶도 살아갈 수가 없다. 가끔씩 성직자들이 '채우는 것'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일들이 있으니 지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다석 류영모가 번역하고, 박영호가 뜻풀이한 <노자와 다석>은 그 이치를 잘 일깨워준다. 많은 노자 강의록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이 그들과 다른 점은 한자번역이 아닌 순 한글번역을 해 놓았고, 그에 알맞게 한글로 풀어 놓았다는 것이다.

"노자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몸나가 지닌 탐․진․치의 수성(獸性)을 버리고 속알(德)로 살아야 함을 알았다. '덕(德)' 자의 원형은 덕(悳), 즉 '곧은 마음(直心)'이다. 나중에 '행(行)'이 추가되어 '덕(德)'이 되었다. 덕의 '사(四)' 자는 '목(目)' 자를 가로로 눕힌 것이다. 직(直)의 '십(十)' 자는 일체(一切)를 하나로 모은다는 뜻이다. 일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존재는 하느님뿐이다.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을 수밖에 없다. 곧은 마음으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 덕(德)이다."(20쪽)

그렇다. 짐승의 속성을 갖고 있는 인간은 결코 곧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은 곧은 마음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몸나' 곧 육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게 된다. 결코 혼적인 '제나'나 영적인 '얼나'의 삶을 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참된 얼을 지닌 영적인 인간을 어떻게 닦아나갈 수 있을까? 류영모는 바로 '자연'(自然)이나 '무극'(無極) 속에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없음'과 '빔' 또는 '빈탕'과 '빈탕한 데'서 말이다. 이른바 불교에서 일컫는 '허공'이 그런 삶이요, 이 세상의 있음과 없음을 넘나드는 하나님의 실체 또한 '빈탕'으로 연결 짓는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 박영호는 스승이 오산학교에 근무할 때인 스무살 무렵부터 <노자>를 즐겨 읽었고, 35년간 서울YMCA 연경반에서 행한 고전 강의에서도 <노자>를 강의했다고 이야기한다. 이광수, 최남선,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식인들이 다석의 '노자'(늙은이)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류영모 선생은 1959년 3월 22일부터 그 <노자>를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해 21일 만인 1959년 4월 11일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기록된 류영모 선생의 우리말 번역은 정말로 깊은 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열어 놓는 보석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류영모 선생은 '도(道)'를 '길'로, '덕(德)'을 '속알'로, '무위(無爲)'를 '함 없음'으로 각각 옮겨 놓아, 우리말로 이해하는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하느님은 말 그대로 '함 없이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는 것을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은 자연계를 다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은 일을 하시는데 통히 나타나지 않고 저절로 되게 하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또 우리가 높인 대로 그렇게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듣고 알 만한 일에 그의 존재를 나타내시지 않는다." 예수도 이와 같이 생각한 것 가다.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5:17)라고 하였다."(291쪽)

박영호에 따르면 다석은 예수를 평생의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을 절대시하는 생각에서는 벗어났다고 한다. 이른바 석가,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등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성인들을 두루 섭렵하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다석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유교, 노장 사상 등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다고 한다.

본래 사람은 누구나가 물욕, 식욕, 정욕이라는 짐승과 같은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다석은 그런 짐승의 육신은 '참나'가 아니므로 짐승의 '나'는 죽이고 오직 하나님의 얼생명(靈性)을 받아야만 '참나'로 거듭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그때에만 비움도, 길도, 도덕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노자와 다석 -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도덕경

류영모 지음, 박영호 해설,
교양인, 2013


#〈노자와 다석〉 #류영모 #박영호 #물욕, 식욕, 정욕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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