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남겨야 하나? 없애야 하나?

대한민국의 글로벌리더 양성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

등록 2013.06.18 14:06수정 2013.06.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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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 인재 양성의 절실함이 불러온 파국   

1998년의 일이다. 그때는 초등학교에 영어교과를 막 도입하려던 참이었다. 그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근무하는 이에게 초등학교 영어교과 도입 배경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교육부 직원 중 외국에 파견되어 돌아왔던 그는 교육부 관료 중에 영어를 꽤 잘 했지만 국제회의에 가서 회의 내용을 들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이 장차 우리나라가 세계화되는 데에 큰 장애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들이 국제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어 때문에 빚어지는 어려움은 국제회의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비로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자신은 강의 내용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래서 원서를 들여다보고 공부를 해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 친구 역시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영어 성적은 매우 좋았다. 읽기 위주의 영어를 했던 옛날, 그 당시는 가정에서 영어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안 되는 이러한 사정은 결코 그 친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위의 두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우리나라 영어교육시스템에 매우 빈약한 허점이 있어서 과학기술 및 정치 문화 등에 많은 장애요소가 되고 있으며 글로벌 인재, 즉, 자기의 전문 영역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전문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정치나 연구 분야가 이러하니 산업이나 경영분야에서 영어교육의 절실함이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먼저 교육과정부터 말하기 듣기 위주로 바꾸어 보자는 주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인재의 양성이 얼마나 절실했던지 그 전부터 있던 특목고를 우대해서 사교육 열풍을 불러왔다.


가장 심각한 도입은 모든 사립학교에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이머젼(몰입) 영어교육을 허락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모든 사립 초등학교들이 8교시까지 수업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이들은 5교시 정도는 영어로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은 부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영어교육의 새로운 통로를 열어놓은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특목고들이 다 외국어고인 마당에 국제고까지 만들고 국제 중까지 설립했으며, 사회적 비난에 밀려 추첨으로만 하던 국제중도 선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인재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이 오로지 영어교육 위주로 돌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어를 잘 해야 영재가 되며, 아무리 천재성을 가져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못하면 대학을 진학하거나 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으니 대한민국은 이 세상에 유례없는 영어공화국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2. 대한민국에서는 영어만 잘 하면 영재?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을 도입한 것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치자. 그 이후 사립초등학교의 이머젼(영어몰입) 교육의 확대, 대입에서 특목고 우대, 국제중 신설 등에서 놓치기 쉬운 점은 대한민국 교육이 모든 분야의 영재들을 다 몰살시키고 영어교육 위주로 흐르고 있으며 사실은 글로벌 영재가 아닌 영어영재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서투른 영어를 하고도 우리나라 40대, 50대들은 앞 세대가 이룬 산업화 세대의 뒤를 이어 받아 첨단기술 분야에서 발전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회의 참여는 공무원 시험에 특별전형만 하나 만들어도 가능한 일이며, 글로벌인재의 양성은 국민소득 향상 및 가정에서의 영어교육열을 생각하자면 정부가 한사코 나서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정부가 글로벌인재를 양성한다면서 계속 영어교육만을 부추겨서 정상적인 교육을 포기하고 영어영재만 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3. 국제중 남겨야 하나 없애야 하나? 

이 중에서 가장 난처한 입장에 처한 것이 국제중이다. 얼핏 생각하면 모든 사립초등학교들이 다 이머젼(영어몰입) 교육을 하고 있는 마당에 왜 국제중이 문제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제중학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머젼을 하는 사립초등학교는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데, 국제중학교는 사회의 비난에 잠시 추첨제로 하다가 선발제로 변형되면서 특별한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특권층의 학교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 학교들이 청심중, 영훈중, 대원중 모두 70%이상이 특목고에 진학하고 있다는 통계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였다. 국제중의 확대가 중학교 평준화의 기본 틀을 침해하고 있고, 이런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글로벌 인재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에 루트 자체가 아예 훼손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우수한 학생들을 뽑았으니 특목고를 많이 가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장차 초래될 수 있는 사태는 더욱 끔찍하다. 이와 같이 특목중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게 되면, 중학교 평준화마저도 해체되고,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특목중 보내는 학원이 등장하고, 학부모들이 더 어린 단계에서부터 어린 학생들을 혹사하는 상황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열풍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고, 영어유치원과 이머젼 학교의 성행을 불러올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 교육은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국제중을 아예 없애고 이머젼 스쿨 졸업생들이 중학교 시기를 일반학생들과 보내며 자기 스스로 영어실력을 늘려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어차피 사교육 의지할 학생들이니 그렇게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초등학교처럼 중학교에도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이머젼(영어몰입교육) 스쿨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특목고를 운영하고 있는 재단은 배제하고,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학교 이머젼 스쿨 역시 특목중과 같이 교육불평등 요소가 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특목고 및 자사고들은 먼저 영어를 잘해야만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법은 초등학교 이머젼 스쿨을 모두 없애고 국제중도 없애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외국 유학생들이 많아지겠지만 대기업 회장 아들이 이머젼 학교에 안 보내고, 외국에 안 가고 영어를 잘하는 글로벌 리더를 만들 방법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국제중을 없앤다고 해도 한국교육시스템이 가진 영어교육 중심의 오류를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인재를 양산한다는 이유 때문에 글로벌 인재가 아닌 영어영재들만 길러내고 있는 모순점은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특목고들도 대부분 외국어고등학교인데다가 자립형 사립고니 하는 것들도 일반적인 공교육과 사교육을 받아서는 턱도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모든 영재들은 먼저 영어영재의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이다.  

4. 국제중 없애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특목중을 폐지하냐? 폐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영어교육으로 인하여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90년대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나면 국어점수가 좋지 못해 대학을 진학 못해 공장에 취업한다는 유머가 있었는데, 사실 한국의 아인슈타인은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대학진학을 못하게 돼서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부모가 돈이 없거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며, 유치원 때부터 심하게 영어교육을 시켜야 하고, 영어교육을 잘해야 특목중이나 특목고 등 영재선발기관에 들어갈 수 있고, 영어를 못하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해도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이며 갈수록 이러한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그 누가 바람직한 교육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90년대 특기적성을 강조할 때는 아무것도 못해도 하나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귀가 아프게 떠들었었다. 하나만 잘 하는 학생이 성공을 잘 할 수는 없고, 학생들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한 개에만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만 잘하는 학생은 버려두더라도 다 잘하는데 하나를 못하는 학생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그 중에서도 중심이 바로 영어를 못하는 학생을 구제하는 방안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교육이 영어 때문에 발생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도 이러한 제도는 마땅히 실시되어야 한다.

첫째, 이 세상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영재도 많을 수 있다. 영재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할 때 이러한 영재들도 놓치지 말아야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다.

꼭 필요한 정도의 영어실력도 갖추지 못한 학생을 영재로 선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재성을 가진 학생이 공교육기관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사교육만 수행하고서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면 이런 학생을 선발하자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런 학생들을 선발해서 충분히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둘째, 특목고도 영어영재보다는 과학영재나 정보 분야의 영재, 인문학이나 문예창작부분 등의 영재를 육성하는 기관들로 다양화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 다양한 특성화고가 있기는 하지만 특목고와 비슷한 수준의 영재고를 만들어서 위치를 격상시켜야 한다.

셋째로는 영재성을 가진 학생이 공교육기관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사교육만 수행하고서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명문대학이나 일반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그 대학에서는 또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여 글로벌 리더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학생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는 대학교마다 영어를 크게 잘 하지 않는 학생도 갈 수 있는 학과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모든 인재가 글로벌 리더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 많은 학과들에서 영어가 안 되는 인재들을 잘 수용하여 길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로는 회사와 기업에서 시험을 칠 때 영어가 필요 없는 파트는 영어를 크게 잘 하지 않아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전혀 영어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은데 회사에서 영어를 기준으로 선발하는 것은 한국교육을 가장 왜곡시키고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이 해소되지 않고 영어사교육을 잡을 수 없고, 그러지 않는 한 유치원부터 학부모들이 불안해하면서 어린아이들을 유치원 때부터 영어교육에 무리하게 전념하게 될 수밖에 없다.

5. 글로벌 리더 생산 시스템에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대한민국은 좀 더 많은 글로벌 인재를 양산해 내야 하는 숙제를 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글로벌 리더를 기를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영어영재들을 양산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그 영재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또한 영어교육이 초등학교 사교육의 가장 중핵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현재의 글로벌리더 생산 시스템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영재기관에서 선발기준은 공교육기관 밖의 영역에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이런 영재기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사교육기관에만 귀띔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글로벌 리더와 어렸을 때 영어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일반리더의 공존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이 함께 협력하며 대한민국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국제중 #글로벌리더 양성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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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에서 3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4차원적 사고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 속에서 4차원적인 문제발견력과 문제해결력으로 수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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