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숙사는 혐오시설이 아닙니다

[청년의 대안②] 주민 반대에 부딪친 구의동 공공기숙사, 상생 해법은?

등록 2013.06.18 14:09수정 2013.06.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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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한 달에 고작 몇 끼 챙겨 먹으면서 비싼 하숙비를 내는 것이 아까워 고시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 옷가지 한 보따리와 두어 묶음의 책이 살림의 전부라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매달 나가던 주거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그 돈을 다른 데 쓰면 생활은 분명 더 윤택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고시원에서 지냈던 몇 개월의 시간은 망각의 함에 넣어 밀봉한 듯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윤택하기는커녕 옹색하고 갑갑하기만 했던 때라서 애써 반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 쉬고 싶은 집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행복이 없었다. 고시원으로의 귀가는 공연히 생사에 대한 성찰을 불러왔고 생활은 안식을 얻지 못하고 늘 겉돌았다.

편안한 거주 공간 없이 겉도는 청년들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단히 극성스럽게 집과 부동산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과 귀, 영혼을 잠식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넉넉하고 행복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전세와 월세는 폭등했고 부동산 대박을 쫓는 신화적 세계 속에서 청년들은 돈벌이의 대상이었지 보호의 대상은 아니었다.

인색하고 모질기로는 대학들이 으뜸이었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리면서 기숙사동 올릴 벽돌은 황금처럼 아꼈다. '대학알리미' 통계에 따르면 2012년도 서울지역 대학 기숙사수용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지역 출신 학생이나 따로 나와 살 곳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열 명 중 아홉은 하숙, 전세, 월세를 전전해야 한다. 통계청의 2010년 조사 자료는 20~24세의 74.8%, 24~29세의 47.8%가 월세이며 자가 비율은 극히 적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최근 서울연구원은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월평균 주거비 지출이 30만 원을 초과하고 있으며 필수적인 생계비를 제외한 실제 용돈은 10만 원뿐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서울도시연구'에 게재한 바 있다.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대다수가 어째서 고시원과 쪽방으로 밀려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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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연남동의 원룸형 공공기숙사 '희망하우징', 지난 3월 30여 명의 대학생이 입주했다. 건물 1층의 북카페는 마포구 고용복지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것으로 청소년 교육, 지역민들의 모임 등에 활용된다. ⓒ 장정규


'희망'과 '행복'의 공공기숙사 건립 움직임


그래도 요즘 들어 다행스러운 변화가 보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공공기숙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SH공사를 통해 201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주요 대학가 인근에 다가구형 664실, 원룸형 84실 등 '희망하우징' 748실을 공급했다. 일반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로 높은 입주 경쟁률을 기록했다.

기존의 건물을 매입해 공급하는 '희망하우징'과 다르게 새로 신축하는 공공기숙사도 있다. 강서구 내발산동의 '희망둥지'가 그것이다. 서울시가 터를 제공하고 전라남도, 경상북도의 9개 시·군이 건축비를 분담했다. 높이 7층에 360여 명의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서울시의 키워드가 '희망'이라면 정부는 '행복'이다. 대학생 '행복기숙사'는 대통령 임기 내에 공공임대주택 20만 가구를 짓겠다는 '행복주택' 계획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서대문구 홍제동에 500여 명 수용 규모의 기숙사 착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기숙사비가 상대적으로 비싸서(19만원) 교통비를 감안하면 민자 기숙사와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의 기숙사비로 건축비를 상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주민 반대에 부딪친 대형 공공기숙사

그래도 어쨌든 청년 주거 문제를 공공성에 차원에서 다루려는 흐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 실효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규모로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로 구성된 청년층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색내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곤란하고 대학들의 기숙사 확충, 대형 공공기숙사와 청년 대상 공공임대주택 건립으로 실질적인 해법을 강구할 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실질적 해법은 초반부터 발목이 잡힌 상태다. 대형 공공기숙사의 경우 강변역 인근 광진구 구의동 유수지(홍수 때 강물을 저장하는 곳)에 서울시가 짓기로 했던 700실 규모의 기숙사 건립이 주민들의 반대로 막혀 있다. 유수지 옆 아파트 주민들은 조망권 침해와 세금 낭비, 우범지대화 등을 내세우며 강렬히 항의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공공기숙사를 반대하는 명분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수지는 아파트 동쪽이라 한강의 조망권을 해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30년 된 아파트의 재건축을 내심 기대하던 상황에서 공공기숙사가 들어오자 이어 공공임대주택까지 따라오며 재개발은 고사하고 지역이 슬럼화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것이다.

'광진주민연대'의 김승호 간사는 공공기숙사 반대에 주민들의 박탈감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멀지 않은 곳에 화려하게 탈바꿈한 고층의 스타시티 아파트 단지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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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700실 1400명 수용 규모의 공공기숙사를 건립하려는 광진구 구의동 유수지 모습. 서편에 인접한 아파트 주민들은 조망권 침해 등의 이유로 공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 장정규


상생의 청사진으로 주민 설득의 절차 밟아야

그러면서 그는 더 큰 악재로, 갈등을 중재할 단위가 부재하다는 점을 들었다. 풀뿌리 시민단체는 힘이 약하고 청년 의제를 다뤄본 경험이 없다. 지역의 행정가들과 정치인들도 움직이기를 꺼려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의 재개발 욕구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막연하지만 강력한 부동산 대박의 청사진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상생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공론의 장을 열지 않고 있다.

집값 상승과 보상금만을 노리는 주민들의 공공기숙사 반대는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다. 하지만 님비를 님비로 규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인 청년층의 주거복지 향상, 지역의 활기, 다양한 문화시설의 유입 등의 내용이 담긴 새로운 상생의 청사진을 들고 주민들을 만날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결국 꼬인 부분은 정치다. 행정가들과 정치인들이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주민들의 이해관계만을 돌볼 때 공공성이 들어설 자리에는 갈등과 대립의 잡초만이 무성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혁신일자리 모델 워킹그룹 프로젝트의 매니저입니다.
#청년의 대안 #공공기숙사 #유수지 #님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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