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릴리언트' 한 삶이 내게도 올까?

한 자동차 광고를 보고

등록 2013.06.17 16:27수정 2013.06.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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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자동차회사 광고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
모 자동차회사 광고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현대자동차

내 손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일은 아주 드물다. 워낙 게으른 탓에 그때그때 챙겨보지 못하는 것일 뿐, 텔레비전 보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언제든 다운받아 볼 수 있으니 신경이 덜 쓰여 오히려 놓치는 게 많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도, 어쩌다 누군가 켜놓은 텔레비전을 마주할 때면 나는 텔레비전에 굶주리기라도 한 듯 한없이 빠져든다.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광고다. 어린 시절 <컴퓨터 형사 가제트>나 <맥가이버>를 하기 직전 줄줄이 이어지는 광고는 그야말로 두꺼운 튀김옷과 같았다. 튀김 속 재료를 먹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함께 먹어야 하는. 그런데 요즘 광고는 그렇지 않다. 우선 화려한 영상이 시신경과 청신경을 잡아끈다. 아마도 카메라 성능과 촬영·편집기술이 예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진 덕일 것이다. 여기에 마음까지 자극하는 감성이 양념으로 첨가된다. 인간 심리에 대한 최신 이론은 모두 광고로 집결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는 사람에게 '사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 '사는 행위'로 이어지게 만드는, 즉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안다. 남자친구에게 라면 한 그릇 끓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치사하도록 어려운 일인가를. 누군가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많은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피 같은 돈까지 꺼내 쓰도록 하는 것이 광고다. 광고는 우리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온갖 첨단 기술과 심리 이론을 끌어 쓴다. 그래서 거꾸로 광고를 해부하면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의 욕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최근, 참 기막힌 광고를 봤다. 처음 얼핏 봤을 땐, 분홍색 꽃잎이 휘날리는 화면과 배경음악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명배우의 짧은 내레이션은 지친 영혼을 달래는 듯했다. 이 광고는 영화관에서도 나오는데, 영상이 정면만이 아니라 좌우에서도 함께 나오는, 이른바 '스크린 엑스(Screen X)'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시청자가 마치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도록 해 몰입도를 높인다는 평가다. 나는 영화관도, 엘시디도 아닌,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봤는데도, 느낌이 좋았다.

 자동차회사 광고를 캡쳐했다.
자동차회사 광고를 캡쳐했다.현대자동차

이후 몇 차례 이 광고를 더 보게 됐다. 광고 내용은 이렇다. 알람시계가 울리고 한 여성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옷을 고르고 차를 타고 출근해 외국인들과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오른다.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꽃다발을 안고 지나간다. 순간 그 여성은 눈을 감고, 주위는 온통 꽃천지가 된다. 그는 잠시 후 작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차에 올라 탄다. 그리고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긴 여행을 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내게 이 광고는,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느끼게 한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연봉을 받고 좋은 차를 몬다. 차는 성공의 상징이다. 차 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나만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에 이르러서야 주위가 보이고 비로소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차, 즉 성공이 없다면? 감동은 사치다. 고되고 팍팍한 일상이 따른다. 그러니 지금 당장 차를 사서 자신이 성공했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라! 지금 당신이 삶을 지불하고 겪는 고생으로 차와 함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꽃을 즐기는 대신 차 안에서 성공을 만끽하라! 리브 브릴리언트!


광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광고에 진짜 이런 뜻이 담겨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이고 들린다는 이야기다. 광고 속 여성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런데 왠지 내 인생의 한 장면은 아닌 듯하다. 우선 외모가 안 된다. 그리고 난 치열하게 살기가 싫다. 게을러 텔레비전도 못 보는 처지이니 말 다 했다. 자동차 안에서 꽃향기를 느끼는 대신 그냥 길가에 핀 민들레 씨앗이나 불면서 살련다. 이것이 내가 두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세상이고 삶이다. 아참, 그 좋은 기술을 쓸 데 없는 판타지 만드는 데 사용하는 대신,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 쓸 수는 없을까?

 자동차회사 광고를 캡쳐했다.
자동차회사 광고를 캡쳐했다.현대자동차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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