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눕거나 엎드려서 책 봐도 괜찮아요

'자람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놀기

등록 2013.07.01 10:24수정 2013.07.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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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을 받으면 빨간색 날짜부터 살펴보게 된다. 공휴일이 주말과 연이어 있으면 마음은 벌써 여행을 떠난다. 어른들도 이렇게 노는 날을 찾는데 애들이라고 다를까. 언제 여름방학을 하는지 벌써부터 기다리는 눈치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해도 학기 중일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 뿐이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업이 있어서 바깥일을 하는 엄마들은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찮아서 걱정을 하게 된다. 애들만 두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맡길 데도 없다. 그래서 엄마가 퇴근을 할 때까지 학원 순례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어릴 때는 방학이라면 그야말로 완전한 방목이었다. 글 한 줄 보지 않고 놀기 바빴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이 되면 밀린 숙제를 하느라 가마솥에 콩 볶듯이 이리 뛰고 저리 달렸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 방마다 책이 숨어 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 방마다 책이 숨어 있다.이승숙

방학에 도서관에서 놀기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때, 여름방학인데도 나는 매일 학교에 갔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렸는데, 아침밥을 먹고 어정거리다 보면 해가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대지가 아직 열기에 달아오르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건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매일 학교에 갔으니 그것은 책이라는 놀잇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교실 예닐곱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형태의 단층 목조의 본관이 있었고 그 뒤에 콘크리트로 만든 교실 두 칸짜리 별관이 있었다. 그리고 별관 옆에 또 건물이 하나 더 딸려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도서실이었다. 


지붕이 삼각형으로 뾰족했던 도서실 건물은 그래서 천장도 높았다. 크기는 교실 한 칸 반 정도 쯤 되었는데 한 칸은 교실로 쓰였고 나머지 반 칸이 도서실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를 좋게 보셨던 담임 선생님이 방학 동안 도서실을 관리하라고 열쇠를 맡기셨다.

도서실에 가면 조각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책 사이에 머물렀고 시간은 정지된 듯 고요했다. 그곳에서 책과 함께 종일 놀 수 있었으니 도서실은 내겐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책 먼지를 마시면서 도서실에서 놀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뭔가 모를 뿌듯함과 든든함이 가슴 속에서 일어나곤 한다. 


 방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책을 봐도 괜찮다.
방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책을 봐도 괜찮다.이승숙

공원 안에 도서관이 있다면

예전에 내가 살았던 도시에는 큰 도서관이 있었지만 시민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보면 학생들만 많을 뿐 어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도서관이 위치해 있는 곳 때문에 그런 듯했다.

그 도시는 구도심 옆에 신도시가 만들어져서 백화점이며 스포츠 센타 같은 생활 편의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신도시의 아파트 숲 가운데는 중앙공원도 있어서 가볍게 산책을 하며 쉴 수도 있었다. 모든 편의시설들이 근처에 있었지만 도서관만은 그렇지를 못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사람들은 먹고 입고 즐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고 도시는 향락으로만 발전하는 듯 보였다.

만약 중앙공원 자리에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공원 속에 도서관이 있어서 놀며 쉬며 책을 보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그 도시는 서울 주변부의 베드타운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한층 더 성숙한 도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시동생 내외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그 나라가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한 것은 부럽지 않은데 도서관만은 부럽다고 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용을 한다고 했다. 또 소장하고 있는 책의 규모도 대단하다면서 왜 그 나라가 그리도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지 도서관을 보고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일이다. 책을 읽는 게  취미라면 더더욱 좋은 현상이다. 일상이면서 또 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일 년에 열권도 안 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하니, 문화적으로 성숙한 나라로 가는 길이 요원해 보인다.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깜빡 졸기도 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깜빡 졸기도 하고...이승숙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청소년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들의 미래는 책 속에서 만들어지니 결국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도서관의 문턱이 낮아서 마치 시장에 가는 것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어찌 될까.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서 그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유지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을 속의 도서관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겼다. 지난해 가을의 일이다. 그 도서관은 뜻을 가진 어떤 분이 만든 사설 도서관인데 낮에 가보면 조용하고 한적해서 마치 딴세계에 온 듯하다. 책을 골라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면 나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흔들의자에 앉아 가끔씩 흔들거리면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어린 아이들은 아예 바닥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보기도 한다. 모두 책과 함께 자기만의 세계에서 놀고 있다.

자람도서관은 강화군 양도면에 있다. 인근에는 사회복지시설인 계명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자람도서관은 그 아이들에게 훌륭한 쉼터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러 놀다가 간다. 책을 보는 아이도 있고 친구와 함께 이야기의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도 있다.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자료 검색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책과 함께 놀고 있다. 비록 책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책 속에서 노는 것이니 은연중에 책 향이 스며들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 그 아이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자람도서관은 훌륭히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오가며 들러서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오가며 들러서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이승숙

보통의 도서관들이 책이 주인이라면 자람도서관은 다르다. 자람도서관에서는 사람이 주인이다. 앉고 싶으면 앉아도 되고 눕고 싶으면 누워도 된다. 책을 봐도 되고 아니면 그냥 가만히 쉬어도 괜찮다. 쉼 속에 나만의 책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자라는 도서관

전에 어디선가 봤던 글이 떠오른다. 195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잔 미첼'이라는 소녀의 이야기였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소녀는 도서관에 자주 갔다. 도서관 카운터 뒤에는 신간서적들을 눈에 잘 띄게 진열해 놓았는데 소녀는 진열되어 있는 그 책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글을 써서 책이 만들어져 나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책이 이렇게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거야.' 그날 소녀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했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생각이 자라고 꿈이 영그는 곳이다. 자람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책들도 다 꿈과 생각이 자란 것이다. 오늘 그곳에서 꿈을 키우며 목표를 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년의 아줌마일 수도 있도 또 노년에 접어든 할머니가 책을 보며 새로운 꿈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달의 작가로 선정이 된 분의 작품들이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들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문단에 나오기 전의 이력들을 보면 평범해 보인다. 자녀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던 주부였으니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었으니 그것이 오늘의 그 분을 있게 했을 것이다. 그 비범함은 바로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늘 현재에 산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오늘 자람도서관에서는 꿈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그 곳 진열대에 자신의 책이 진열되기를 꿈꾸면서 오늘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꿈과 생각이 자라는 자람도서관, 오늘 그곳에서 '잔 미첼'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책과 더불어 꿈과 생각이 자라는 '자람도서관'입니다.
책과 더불어 꿈과 생각이 자라는 '자람도서관'입니다.이승숙

#도서관 #자람도서관 #강화도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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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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