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고 싶은 나, 저는 이기적인 가장입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⑬] 칼로파니에서 따또파니까지

등록 2013.06.20 17:58수정 2013.06.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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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짙은 구름이 시야를 가려 설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칼로파니(2600m)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중 안나푸르나1(8091m)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인데 아쉽습니다. 오늘은 가사와 다나를 거쳐 따또파니(1200m)까지 갈 예정입니다. 오늘 트레킹 거리는 24km입니다. 거리에 비해 내리막길이라 쉬운 트레킹 될 것 같습니다.

신작로를 걷다


오늘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작로에서 피어나는 먼지는 인내력을 시험합니다. 버스를 이용하였다면 좀솜에서 하루 만에 오늘 목적지인 따또파니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구간을 3일째 먼지를 뒤집어쓰며 걷고 있습니다. 

칼리간다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트레커들이 다녔던 길이 있습니다. 먼지 때문에 현수교를 건너 옛길로 걷습니다. 인적이 뜸해 길 찾기가 무척 어려웠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됩니다. 히말라야도 개발의 거센 바람에서 피해갈 수 없나 봅니다. 신작로에서 벗어난 옛길은 개발의 혜택에서 제외되어 쇠락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a 현수교 현수교 너머 옛길이...

현수교 현수교 너머 옛길이... ⓒ 신한범


당나귀 무리가 등에 짐을 가득 싣고 힘들게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수 십 마리의 당나귀가 워낭 소리 잘그랑거리며 걷는 모습은 히말라야의 볼거리입니다. 개발은 워낭 소리 대신 버스와 트럭의 경적 소리로 바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에 담아 봅니다.

칼리간다키 강 하류로 내려올수록 강폭이 줄어들었습니다. 신작로 주위의 산비탈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숲이 울창합니다. 수목한계선보다 내려왔기 때문에 사방이 푸른 물결로 일렁이는 것 같습니다. 날씨는 수시로 변하고 있어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구름 사이로 안나푸르나 연봉이 머리를 내밀기도 합니다.

a 체크 포스트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가사'에서

체크 포스트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가사'에서 ⓒ 신한범


가사(2010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체크 포스트와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체크 포스트에서는 트레커의 인적 사항을 기재하고 팀스(Tims) 카드에 도장을 찍어 줍니다. 좀솜에서 버스를 이용한 사람들도 이곳에서 하차하여 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버스에 대한 미련이 있어 물어 보니 두 시간 후에 따또파니에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고 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오렌지 향기를 즐기며

다나(1400m)에 도착하기 전, 엄청난 폭포를 만났습니다. 히말라야의 폭포들은 높이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해발 5000m를 전후하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이드에게 폭포의 이름을 묻자 모른다고 합니다. 자연의 가치도 나라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a 폭포 '다나'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있던 거대한 폭포 모습

폭포 '다나'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있던 거대한 폭포 모습 ⓒ 신한범


다나에 도착하자 도로 주위에 바나나와 오렌지가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는 사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형이 낮은 곳에서는 꽃과 과일이 흔하고, 높은 곳에서는 만년설을 볼 수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추위 때문에 침낭 위에 모포를 덮고 잤었는데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a 오렌지 나무 200루피를 주고 오렌지를 산 곳

오렌지 나무 200루피를 주고 오렌지를 산 곳 ⓒ 신한범


주인에게 200루피(약 2500원)를 지불하자 밭에 들어와서 맘껏 따라고 합니다. 소박하지만 넉넉한 네팔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두 손 가득 오렌지를 따서 나옵니다. 오랜만에 싱싱한 과일을 먹었습니다. 오후 내내 오렌지 껍질이 손톱에 껴서 사람을 향기롭게 하였습니다.

변덕스런 날씨가 비로 변하였습니다. 서둘러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고어텍스 자켓을 입었습니다. 네팔에 네 번째 오지만 비를 맞은 것은 처음입니다. 지금쯤 우리가 넘은 쏘롱라(5416m)에는 눈이 올 것 같습니다. 트레킹이 끝난 후 카트만두에서 만난 트레커는 마낭에서 폭설 때문에 쏘롱라를 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5416m를 넘고 200km를 걸어서

따또파니(1200m)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이 시발점인 불부레(840m)에서 출발하여  쏘롱라(5416m)를 넘어 또또파니까지 200km 정도 걸었습니다. 해발 840m에서 시작하여 5416m를 넘어 해발 1200m에 와 있습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도 두 주가 지났습니다. 내일 고라파니(2800m)를 오르면 이번 트레킹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편리한 것과 불편한 것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닙니다. 차량 이용이나 두 발로 걷는 것은 본인이 판단할 일입니다. 차량을 이용한 사람과 두 발로 걷는 사람은 같은 히말라야를 보고 있지만 느낌은 서로 다를 것 같습니다. 느낌은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몸 상태와 일정에 따라 판단하면 되겠지요.

a 숙소 타다파니 숙소

숙소 타다파니 숙소 ⓒ 신한범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물독에 빠진 생쥐같이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을 널었습니다. 양철 지붕에서 빗방울 소리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 있은 것으로 마음 편안합니다.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번 트레킹의 화두는 '단순하게'였습니다. 자고, 먹고, 걷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 트레킹을 준비하면서부터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트레킹은 휴대 전화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걷는 동안 내내 집 생각이 났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가장을 둔 가족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늘 허락하였습니다. 여행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집사람과 아이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저녁 무렵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따또파니'란 지명은 '따또'는 '따뜻한'을 '파니'는 '물'이란 의미입니다. 지명처럼 칼리간다키 강가에 노천 온천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민들과 트레커가 사이좋게 온천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도 더운물에 몸을 담그고 하늘과 산을 바라봅니다.

a 온천 칼리간다키 강 유역에 있는 온천 모습

온천 칼리간다키 강 유역에 있는 온천 모습 ⓒ 신한범


제가 묵은 숙소는 붉은 포인세티아와 오렌지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아담한 정원 옆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민 식당이 있습니다. 식당에는 연로하신 서양 여행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카드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야크스테이크를 주문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제 트레커가 아닌 여행자의 모습입니다. 세상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나 봅니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후, 우연히 다섯 사람이 모여 동행이 되었습니다. 트레킹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스쳐가는 바람처럼 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늘까지 네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헤어져야합니다. 저는 고라파니에서 하산할 것이며 다른 분들은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로 갈 것입니다.

10여일을 함께 트레킹을 하여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만나는 것 보다 헤어질 때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이별되었으면 합니다.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라운딩 #따또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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