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무렵의 시골 아이들(1951. 2. 6.)
NARA
우리 집은 금오산이 정면으로 빤히 바라보이는 구미면 원평동 장터마을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이웃에는 또래 사내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의 날마다 곧장 우리 집에서 오백 미터 정도 떨어진 방천 밑 큰 고모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사촌 형제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동네 빈터에서 주로 탄피 따먹기나 자치기 놀이를 했다. 우리 악동들이 한창 그런 놀이에 빠졌을 때 이따금 암퇘지가 '꽥 꽥' 멱따는 듯 소리를 질렀다.
"야! 돼지 빠꾸리하는 갑다."한 악동이 소리치고 가축병원으로 달려가면 나머지 녀석들도 잽싸게 따라갔다. 악동들이 헐레벌떡 가축병원 돼지우리에 이르면 종돈(種豚, 씨돼지) 바크서가 접붙이고자 찾아온 암퇘지를 구석으로 몬 뒤 한창 어르고 있었다. 씨돼지가 능란한 솜씨로 암퇘지를 어르면 곧 암퇘지의 멱따는 소리가 슬그머니 잦아졌다. 그러면 씨돼지 바크서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암퇘지를 올라타고는 꼬불꼬불한 낭심(수컷 생식기)을 꺼내 암퇘지 밑구멍에 잽싸게 집어넣었다. 그 장면은 마치 할디비(나선형 목공기구)로 널빤지를 뚫는 것과 비슷했다. 우리 악동들은 돼지우리 말뚝에 올망졸망 턱을 괴고는 침을 흘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았다.
"저 바크서 좆 봐라.""꼬불꼬불 나사처럼 아주 고약하게 생겼다.""꼭 할디비 같다.""저래 생겨야 밑구멍에 잘 들어갈 끼다."곧 씨돼지 바크서는 꼬불꼬불한 낭심을 암퇘지 밑구멍에 다 집어넣고는 입을 헤벌레 벌린 채 씩씩거렸다. 그럴 때면 암퇘지는 다시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저 암퇘지 진짜로 아파서 소릴 지를까, 좋아서 지를까?""지(저)보다 몸집이 억시기(억세게) 큰 놈이 마구잡이로 올라타니까 지 힘에 버거워 지르는 소릴 끼다.""꼬불꼬불한 할디비같은 좆으로 지 밑구멍을 막 후비며 들어오니까 지 밑구멍이 찢어지듯이 디기(몹시) 아파 지르는 소릴 끼다.""아이다(아니다). 지도 인자(이제) 시집간다고, 양놈 바크서 좆맛이 좋아서 지르는 소리다."악동들은 죄다 입방아를 찧으며 키득거렸다. 그럴 때면 돼지우리 안에서 접붙이는 일을 돌보던 준기 아저씨는 종돈 바크서 다루던 버드나무 회초리로 아이들을 쫓았다.
"야! 시끄러워. 너덜(너희들)은 보는 게 아냐. 저리 가디(가지)들 못해!"악동들은 그 말에도 못 들은 척 계속 히죽거리며 계속 입방아를 찧었다.
"그 씨돼지 팔자 한번 좋네. 접붙일 때마다 색시가 바뀐다 아이가.""저 팔자가 뭐가 좋노. 두고 봐라 지(제) 명대로 몬(못) 살 끼다." 돼지우리 한 모서리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곰배라는 여자아이가 눈을 흘긴 뒤 입을 삐쭉이며 한 마디를 했다. 그 말에 한 악동이 대꾸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저 가시나는 암퇘지를 편든다."그 말에 돼지우리를 둘러싼 악동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러자 곰배는 눈을 더욱 크게 흘기고 입을 잇달아 삐쭉거리며 돼지우리를 떠났다.
"
야, 저리 가디(가지)들 못해!"그 말에도 악동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가리 피도 마르디 않은 쪼쿠만 아새끼들이 발랑 까뎌(까져) 못하는 말이 없어 야!"준기 아저씨는 더 이상 참다못해 회초리로 돼지우리 말뚝에 턱을 괸 악동들의 머리나 어깨를 후리쳤다. 그제야 악동들이 회초리를 피하며 후다닥 자리를 떴다. 그 바람에 씨돼지도 놀라 암퇘지 등에서 후딱 내려왔다. 그러자 씨돼지 낭심에서는 허연 뜨물 같은 게 뚝 뚝 떨어졌다.
"아새끼들 등쌀에 돼지가 놀라 덥(접)이 제대로 붙여딘디 모르가서(모르겠어)."준기 아저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눈알을 부라린 채 돼지우리 안에서 회초리를 휘두르면서 바크서처럼 씩씩거렸다.
"인민군!""괴뢰군!"악동들은 준기 아저씨를 향해 소리치며 도망갔다. 그들은 신기한 구경꺼리를 다 보지 못하고 쫓겨난 아쉬움과 회초리에 맞은 분풀이로 뱉는 말이었다. 준기 아저씨는 그 말에 약이 바짝 올랐다.
"쌍노무 아새끼들!"준기 아저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고래고래 소리치며 돼지우리 밖으로 뛰쳐나와 바크서처럼 식식거리며 회초리를 들고 악동들의 뒤를 쫓았다.
"쌍노무 후레아새끼들! 야, 니들 게 섯디 못해!"(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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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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