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가 쫓았던 이상은 무엇일까

[서평] 체 게바라가 쓴 맑스주의 입문서 <공부하는 혁명가>

등록 2013.06.28 15:59수정 2013.06.28 15:59
0
원고료로 응원
a  <공부하는 혁명가> 겉표지

<공부하는 혁명가> 겉표지 ⓒ 김병현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이다. 이념의 잣대를 벗어나, 그의 일생은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그 자체로 언행일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삶이었다. 열정으로 가득 찬 생을 살았다. 알량한 처세술로 개인의 영달을 쫓는 이들에게는 경종을 울린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그는, 젊은 시절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현실에 눈을 뜬다.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 혁명에 동참하고 여러 정부 요직을 거치지만, 다시 제3세계의 혁명 운동에 뛰어든다. 그러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정부군에게 생포된 후 사살된다. 철저하게 혁명가로 살았던 그의 삶은 차라리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1954년은 체에게 매우 중요한 해였다. 과테말라에서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아르벤스 정권이 물러나는 상황을 목격하며, 체는 반제국주의 의식과 함께 무장투쟁과 군사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혁명에서 미국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라고 여기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체의 인생은 평전과 자서전을 통해 널리 읽혔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행동했나.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에게 열광하지만, 정작 그가 품었던 이상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아는 그것이 체의 본모습일까. 우리가 '상품으로서 소비하는 그'와 '진짜 그' 사이에 간극은 없을까?

맑스주의자로서의 체 게바라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이 책 <공부하는 혁명가>를 통해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날을 예언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말이다. 내용도 그렇지만 책이 쓰인 시기도 그렇다. 체가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1967년이니 꼭 2년 전 쓰인 이 책은 그의 유언과도 같다. 사실상 생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게릴라전을 준비하며 자신의 생각을 구상했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체의 이미지는 몽상적이거나 급진적이다. 혁명과 게릴라라는 이미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체는 책을 읽거나 관념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듣고 본 현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 스스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여행했던 곳들의 환경 때문에 나는 가난, 굶주림 그리고 질병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치료할 수도 없었고 아이들은 계속되는 굶주림과 벌로 마비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해서 체가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는 다소 독특하다. 그에게 맑스주의는 영원한 진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반화하거나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입장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을 둔 보편적 적용을 끊임없이 추구하기도 했다. 이는 특히 제3세계 혁명의 관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가 정식화한 중요 명제들 중 하나는 쿠바에서 진행된 급진적 변화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고 어떻게 이 경험이 식민주의로부터 해방된 다른 저개발국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말했다. 이론에 대한 놀라운 이해와 실천적 경험 때문에 체는 독특한 관점에서 맑스에 접근했고 맑스의 위대함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맑스처럼 생각하고 맑스주의의 기계적 반복을 피할 수 있었다.(편집자의 말, 18쪽)

체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고 보면 그의 행동도 모두 자신이 품었던 굳건한 가치의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족 개량주의, 즉 선거를 통한 개량 노선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었다. 그가 혁명전쟁으로 게릴라전을 선호했던 이유다.

부르주아 국가의 군사적·관료적 장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혁명전쟁만이 길이라고 여겼다. 그의 앞에 놓였던 것은 혁명과 개량주의의 양자택일이었다. 개량주의로는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는 단계론적 혁명관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가진다. 책에서는 맑스의 평생 동지이자 친구였던 엥겔스가 장례식에서 맑스의 생애를 요약했던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맑스는 그 무엇이기에 앞서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그것에 의해 창조된 국가 제도들의 전복에 기여하는 것, 그가 최초로 부여한 고유의 처지와 욕구에 대한 이식과 해방의 조건들에 대한 의식을 가진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그의 삶의 진정한 소명이었습니다. 투쟁은 그의 본령이었습니다."(91쪽)

그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윤리적·인간주의적 가치가 자리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련의 노선이 성장률이나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철학이나 정치적 측면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체가 혁명을 통해 인간의 해방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이유도 휴머니즘의 발로였다. 그가 강조한 '새로운 인간(el hombre nuevo)'은 경쟁과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타주의적 헌신의 인간이다.

그가 실존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맑스와 엥겔스를 소개하는 것은 개인적 동기에서만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고 모든 혁명가에게 물질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발적 노동을 요구했던 체 게바라의 새로운 인간관이 맑스의 실존적 삶에 대한 관심의 근본 동기다(옮긴이의 해제, 152쪽).

그런 면에서 체의 맑스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다. 체는 맑스의 소중한 유산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그(맑스)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미쳤지만 그토록 헌신적인 투쟁과 불굴의 낙관적 메시지를 남긴, 그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역사에 의해 왜곡되고 돌로 된 우상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모범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구해내어서 그에게 인간의 차원을 부여해야 한다.(87쪽)

체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윤리에 충실한 인간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계획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지금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여러 가지 폐단을 보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허나 '민주화'마저 물신주의에 찌든 국가 주도하에 실행되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국가주의와 권위적 관료제에서 벗어나 국민의 의식에 기반을 둘 수는 없는 일일까.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체는 자신의 삶으로 본보기를 남겼다. 알고, 생각했다면, 다음은 행동이다.
덧붙이는 글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 지음,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3.05, 9천8백원

공부하는 혁명가 -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체 게바라 지음, 한형식 옮김,
오월의봄, 2013


#체 게바라 #공부하는 혁명가 #맑스 #오월의봄 #한형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집마다 붙은 집주인 변경 안내문, 지옥이 시작됐다 집집마다 붙은 집주인 변경 안내문, 지옥이 시작됐다
  2. 2 무능의 끝판왕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 무능의 끝판왕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
  3. 3 극우적 주장 득세하는 남자 고등학교 교실 풍경 극우적 주장 득세하는 남자 고등학교 교실 풍경
  4. 4 제주 해수욕장 '평상 갑질', 이 정도일줄 몰랐습니다 제주 해수욕장 '평상 갑질', 이 정도일줄 몰랐습니다
  5. 5 NYT "역사에 남을 이미지", SNS에선 "대선 끝났다" NYT "역사에 남을 이미지", SNS에선 "대선 끝났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