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에게 매달린 밀류코바, 인상적이네

[리뷰] '보리스 에이프만' 안무작... 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

등록 2013.07.01 20:36수정 2013.07.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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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의 한 장면. ⓒ 박민희


천재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삶을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을까. 국립발레단은 지난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의 안무작 '차이콥스키 :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이하 차이콥스키)를 선보였다.

작품은 천재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삶을 그의 음악과 상징성 강한 안무로 무대에 불러올렸다.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은 창작의 고통과 동성애적 성향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했던 그의 삶과 죽음 사이를 '이성'과 '본능'의 대비를 통해 충실하고 기발하게 뒤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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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의 한 장면. ⓒ 박민희


강렬한 대비... 차이콥스키의 삶 입체적으로 그려내

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는 기존의 클래식발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녔다. 상징성 강한 무대 세트와 강렬한 조명, 틀에 얽매이지 않는 아크로바틱한 안무는 격정적이며 세련됐다.

안무는 찰나의 한숨조차 허락하지 않을 듯 긴밀하다. 차이콥스키와 차이콥스키의 내면은 서로를 의지하는 지렛대 형상의 동작이나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을 이루는 동작을 자주 취한다. 본능과 이성은 서로를 부둥켜안거나 밀어내며 그들의 혼란을 토로한다. 이성과 내면이 무반주로 춤을 추는 장면은 호흡만으로 빈틈없이 이뤄지는 작품의 명장면이다. 지휘봉을 차지하기 위해 밀고 당기는 두 무용수의 몸짓은 춤이 곧 음악이 되는 기묘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차이콥스키를 사랑했지만, 그의 성 정체성으로 불운한 끝을 맺고 마는 밀류코바의 안무도 인상적이다. 밀류코바는 손을 부르르 털거나 차이콥스키에게 매달리는 동작이 많다. 그의 내면에게는 거침없이 목을 조르기도 한다. 차이콥스키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향후 그녀가 겪게 될 정신적 고통, 차이콥스키의 내면을 속박하는 존재로서의 표현도 여럿 장치돼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레 '차이콥스키'에 등장하는 '대비 코드'는 다른 부분에서도 유기적으로 이용된다. 흑조와 백조의 군무 장면은 차이콥스키의 이상과 고뇌가 뒤엉키는 대목이다. 유장한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 추는 격렬한 백조와 흑조의 군무는 포식자의 광기에 몸을 떠는 초식동물의 발악처럼 공포스럽다.


무대와 조명은 차이콥스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최적화됐다. 미니멀한 무대는 몇 가지 소품과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처럼 축약된 도시로만 표현됐다. 조명은 하이라이트를 주로 사용했다. 조용하고 매섭게 인물 위로 떨어지는 조명은 관객이 인물의 기민한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발레 '차이콥스키'는 그의 음악만으로 구성됐다. 세기의 명곡을 듣는 재미도 근사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그의 발레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도 톡톡하다.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하는 드로셀마이어는 호두까기 인형을 왕자로 변신시킨다. 이후 차이콥스키가 왕자에게 키스하도록 그를 유혹한다. 그의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백조와 흑조도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흑조를 남성무용수들이 맡아 순백의 백조와 더욱 큰 대비를 이룬다. 이들은 모두 차이콥스키의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작용하며 관객이 작품의 깊이를 응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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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의 한 장면. ⓒ 박민희


연기와 기교 모두 갖춘 무용수들의 활약

발레 '차이콥스키'의 안무는 거의 곡예 수준이다. 무용수들은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함께 구르고 뛰는 고난이도의 동작을 쉴 새 없이 펼친다. 특히, 작품은 안무와 음악 사이의 교감도가 높아 잠시만 움직일 타이밍을 놓쳐도 동작을 놓치기 십상이다. 남성무용수들 간의 주고받는 호흡과 리프트도 많아 부상이 많은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용수들은 드라마발레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감정 연기까지 해야 한다.

차이콥스키 역을 맡은 수석무용수 이영철은 2009년 초연 당시 같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지난 초연보다 한층 더 깊어진 표현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거침없는 동작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파트너십, 강약을 조절하는 원숙한 감정표현은 객석의 시선을 무대 위로 빨아올리기에 충분했다.

차이콥스키 내면 역의 정영재는 악마적 카리스마를 아낌없이 발산했다. 그는 초연에 비해 한층 더 여유롭고 능수능란해진 연기와 탄력 있는 동작으로 캐릭터 솔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폰멕 부인 역의 유난희는 유연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귀부인의 사랑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밀류코바 역의 박슬기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그녀가 표현하는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가련함과 광기는 여느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자랑했다. 또한, 박슬기는 상대방의 동작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춤으로 보는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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